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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 출발이다.’
14년의 역사와 함께 업계 매출순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현대정보기술이 중대 전환점을 맞고 있다. 현대그룹에서 독립된 이후 최근 3년여 동안 회사의 주인은 두 번이나 바뀌었다. 여기에 최근 밝혀진 수년간의 분식회계 사실은 대내외 환경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회사를 지켜보는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현대정보기술이 최근의 부실을 털고 새 출발에 나서야만 하는 이유다.
정해년 현대정보기술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추스르고, 다시 경주 트랙에 올라선다. 기수는 백전노장 이영희 사장(56)이다. 대주주는 회사의 기사회생을 위해 이영희 사장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이 사장은 이를 장고(長考) 끝에 받아들였다.
“솔직히 많이 망설였습니다. 5년 전 퇴직할 때에 비해 회사 상황이 나빠졌고, 밖에서 회사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지켜보며 많은 단점을 봐왔던 터라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았습니다.”
이 사장은 1983년 현대전자에 입사한 후 2002년 현대정보기술을 떠날 때까지 거의 20년간 한 우물만을 파온 그야말로 ‘현대맨’이다. 또 누구보다 속속들이 회사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 현대정보기술에 갖는 애정도 남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사장직을 수락할 수 없었던 것은 환골탈태의 노력이 필요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해 속도를 붙이는 일은 쉽다. 하지만 누구라도 그러하듯 뒷걸음치는 말에 올라타 다시 달리게 하고 거기에 이미 가속도가 붙어 있는 다른 말들까지 추격해야 하는 벅찬 역할을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현대출신 OB들이 많은 힘을 줬어요. 앞장서면 뒤에서 든든한 배경이 돼 줄테니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회사를 바로 세워달라는 주문과 함께 많은 격려를 보내 줬죠.”
회사를 떠나 만 4년간 e컨설팅 대표이사, 정보통신부 정부통합전산센터추진단장·기술지원단장 등을 거치며 어느새 이순(耳順)을 바라보게 된 이 사장은 산업 정글을 뒤로 하고 초야에 묻혀 음풍농월(吟風弄月)하길 꿈꿨다. 하지만 난세는 장수를 불렀다.
1997년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처음 실시한 지자체장 및 국회의원 동시선거 선거관리시스템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업계와 언론이 ‘불가능’과 ‘선거대란’을 예견했음에도 이 사장은 그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완벽한 성공을 이뤄냈다. 같은 해 7월 국내 시스템통합(SI) 프로젝트 사상 최대였던 규모 1070억원, 연 인원 16만명이 투입된 정보통신부 우체국금융 프로젝트 또한 주위에서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지만 성공리에 완수했다.
1999년 국내 SI 수출 1호이자 불비한 여건에 따른 공사 지연으로 공기 내 완수가 불가능했던 베트남 중앙은행 지급결재시스템 프로젝트도, 민간인 출신으로 공무원들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이론상으론 불가능했던 정부통합전산센터 구축 및 이전 프로젝트도 그 앞에선 충분히 완수해 낼 수 있는 ‘일개 프로젝트’에 불과했다.
현대정보기술은 임전무퇴, 임전필승의 장수 이영희가 필요했다.
“6개월 내에 가능성을 제시할 겁니다. 직원들에겐 예전의 영광 회복과 지속 발전의 가능성을, 주주에겐 흑자경영의 가능성을 보여줄 겁니다. 가능한 일이고 또 자신있습니다.”
이 사장은 직원과 주주 모두에게 ‘6개월’이라는 카드를 제시했다. 인생의 모든 것을 건 도박이다. 주변인은 물론 IT에 문외한인 처에게서까지 이 사장이 “길게 잡지 않고 왜 그리 짧게 잡았느냐?”란 말을 들었을 만큼 실로 짧은 기간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긴 시간을 담보로 잡을 수 없다는 점을 이 사장은 잘 알고 있다. 서로가 기다려 줄 수 있는 최장의 시간이라는 것을.
6개월 즉, 올 상반기 동안 그는 세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한다. 회사의 신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흑자기조’, 대외사업 활성화의 원동력인 품질 중심의 ‘고객만족’, 직원들의 사기진작과 미래 일꾼 확보의 밑거름이 될 ‘작업환경 개선’ 등이 이 사장이 말하는 세 마리 토끼다.
“이미 회사는 바뀌고 있습니다. 현 상황에선 중요하고 어려운 일을 함께 할 전문선수들이 필요합니다. 필요한 전문가를 채용하고 있고, 프로젝트 베이스로 인재를 모으고 있습니다. 회사 밖에서도 많은 전문가들이 협조영업, 협조수행의 형태로 속속 참여하면서 힘을 실어주고 있어요.”
이밖에도 이 사장이 역량을 집중키로 한 해외시장 추가 개척 분야에서도 가시적인 성과가 그려지고 있어 조만간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3개월 후면 공개가 가능하다는 게 이 사장의 설명이다. 이를 통해 해외사업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빛 좋은 개살구란 기존의 인식도 허물겠다는 각오다.
이 사장에겐 약속한 6개월의 시간을 허트루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아침 5시 잠을 깬 후엔 어김없이 진행 중인 일과 해야 할 일을 꼼꼼히 점검하는 습관이 생겼다. 주말 시간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즐겨하던 골프와도 담을 쌓았다. 대신 생각을 정리하고 건강도 챙길 수 있는 등산이 새 취미가 됐다. OB, 회사 중역, 팀장들과 생각도 교환하고, 결의도 다질 겸 1, 2주에 한 번씩은 인근의 산에 오를 계획이다.
그에겐 회사의 정상화 기틀마련을 물론이고, 회사의 CEO가 아닌 전산 1세대로서 후배들을 위해 이루고 싶은 포부가 있다.
“과잉경쟁으로 레드오션화한 소프트웨어 업계에 동업자 정신, 상생 정신을 일으켜 건강한 발전적 토양을 마련하는 것과 국력신장 및 산업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모범적 수출모델 제시하는 것, 안정적 수익구조 마련과 그에 따른 보상으로 전산 후배들이 선호하는 분야가 될 수 있도록 일조하는 것입니다.”
이 사장은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좋아한다. 선택한 길에 대해선 결코 후회하지 않는 그와 퍽 닮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최정훈기자@전자신문, jhchoi@
◆이영희 사장은
△1952년 2월 16일 부산 생 △1976년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졸 △1979년 현대건설 전산담당 △1983년 현대전자 SW 및 워크스테이션 개발부장 △1998년 현대정보기술 상무이사 △2002년 현대정보기술 정보서비스사업본부장 전무이사 △2003년 e컨설팅 대표이사 △2004년 정통부 SW·SI산업 경쟁력강화 TF △2005년 정통부 정부통합전산센터추진단장 △2006년 12월 현대정보기술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