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한국 호소 외면…유치 전략 다시 짜야

인텔 한국R&D센터 철수 확정 파장

 인텔의 글로벌 구조조정 한파에 한국거점이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5일 인텔코리아 관계자는 “미국 본사 차원에서 인텔코리아 산하 R&D센터를 폐쇄키로 확정했다”고 말했다. 인텔 측은 “인텔코리아 R&D센터와 관련해 한국 정통부·경기도·ETRI 등 관련기관과의 협의를 모두 마무리하고 문을 닫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인텔은 지난해 11월 말까지만 해도 한국 정부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한국R&D센터를 ‘축소’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나 다시 철수 쪽으로 돌아섰다. 한국R&D센터 실무적·법적 절차가 마무리되는 내달에, 센터 설립 후 2년 10개월간의 짧은 한국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다. 인텔의 한국R&D센터 철수 결정은 그동안 정부가 각종 혜택을 제공하며 유치에 열을 올린 1호 외국기업 R&D센터라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해외 R&D센터 유치’ 전략이 근본에서부터 재검토가 불가피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원점에서 재검토해야=회사 측은 또 “이는 인텔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글로벌 차원의 구조조정 일환이며, 이 같은 노력은 한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텔의 전 세계 모든 비즈니스 그룹이 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텔은 중국 상하이에 ‘아시아·태평양 R&D센터’ 설립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결국 인텔이 글로벌 구조조정을 통한 ‘선택과 집중’ 대상에서,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며 구애하는 한국은 안중에도 없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마지막 순간까지 정통부는 ‘한국 R&D센터 철수는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유치기업과의 협상에서도 씻을 수 없는 난맥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한국 R&D센터 폐쇄 배경=가장 큰 배경은 역시 글로벌 차원의 구조조정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한국의 세계 IT업계에서의 위상과 국내 R&D 여건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한 외국계 R&D센터 관계자는 “이번 철수는 글로벌기업의 본사가 한국 IT산업과 시장의 위상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며 “특히 유치에만 급급하고 잘 관리가 안 되는 것도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정보통신업계 관계자는 “인텔의 R&D 전략은 최소한 4∼5년의 중장기적인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나 한국에서는 1∼2년의 단기간 내에 결과물이 나올 것에 집중했던 게 사실”이라며 “이는 애초부터 한국을 R&D 기반 거점으로 삼았다기보다는 단기적으로 제품 개발을 편리한 여건에서 하는 정도로 생각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인텔은 이번 한국R&D거점 철수에 따른 후속 조치로 한국의 PC OEM과의 협력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울트라모바일(UM) PC를 집중 개발하는 부서를 신설해 단기적인 제품 개발에 한국의 연구성과를 반영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국 IT산업 위상 직시해야=인텔은 지난해까지 2회에 걸쳐 치른 인텔개발자포럼(IDF)코리아도 중단키로 했으며, 지난해부터 진행돼온 인텔코리아의 인력 구조조정도 올해 계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인텔코리아 측은 “전 세계적 구조조정 여파를 한국이 비켜가지 못했을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웃나라인 대만·중국의 IDF는 존속되고 특히 중국에는 대규모 R&D센터까지 신설하는 상황을 감안할 때 인텔의 글로벌 구조조정에서 한국거점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인텔사태에서 드러난 다국적 기업들의 한국 IT산업 및 시장에 대한 인식이다. 국내 IT업계 한 전문가는 “지금까지 해외기업의 R&D센터 유치 정책은 우리의 득실을 따지기보다는 보여주기에 치중해 ‘껍데기’만 가득하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번 인텔의 결정이 바로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며 “이는 한국 해외기업R&D센터 유치 정책을 우리 현실에 맞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처음부터 다시 입안해야 하는 과제를 던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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