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경쟁은 올해도 IT·전자산업계에 사활을 건 승부수가 될 전망이다. 공짜 휴대폰, 10만원대 노트북PC, 1원 입찰 같은 왜곡된 가격 정책으로 서로 상처를 내자는 얘기가 아니다.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만 시장의 주력 제품으로 부상할 수 있고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다. 나아가 수익성을 확보하고 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가치 사슬을 만드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가격은 잘못 사용하면 많은 부작용을 가져오는 양날 칼과 같은 위험한 경쟁 수단이다. 하지만 프리미엄 브랜드를 가진 기업들도 가격 리더십을 갖추지 않고서는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 특히 고객들이 가격에 민감해지는 불황기나 저성장기에는 더욱 그렇다.
생산성을 혁신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고객에게 가격적 혜택을 줄 수 있는 기업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을 이룰 수 있다.
◇가격 인하, 끝은 어딘가=IT·전자제조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이 내다보는 올해의 가격 전망은 ‘예측 불허’다. 신기술로 개발한 제품이 1년이 채 안돼 가격이 반토막나기 십상이었고 심지어는 소형 제품이 대형 제품의 가격을 뛰어넘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삼성전자 직원들은 1주일에 가격이 1% 떨어진다고 보고 가격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전세계적인 IT·전자업계의 가격경쟁은 치열하다. 삼성이 세계최초로 제품을 만들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표적 예가 바로 LCD 패널과 LCD TV·모니터들이다. 대화면, 가격인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LCD 시장에서는 시장의 주력 상품이 된 제품들과 그렇지 못한 제품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40인치 LCD 패널이 42인치 패널보다 비싼 가격을 유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82인치 풀HD LCD TV까지 등장하게 될 올해도 가격 인하 경쟁은 이어질 전망이다. LCD 모니터 역시‘윈도비스타’에 맞춘 22인치 와이드급 이상의 제품군도 현재의 50만원대에서 20만원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력 제품이든 뭐든 원가 이하의 부품 가격대로 떨어질 IT·전자제품도 부지기수로 출현할 것으로 보인다.
레인콤 사태로 이어졌던 MP3플레이어의 가격 파괴는 한자릿수인 만원대로 하락하는 한편, 동영상 재생 기능까지 갖춘 MP4플레이어도 2GB 용량 제품을 7만원 이하로 파는 저가 경쟁이 끝없이 이어질 전망이다. 수익성 악화의 길로 들어선 PC는 초고속인터넷업체들의 보조금을 받는 10만원대 데스크톱에 이어 리눅스 운용체계(OS)와 HDD 용량을 줄인 10만원대 노트북도 출현할 것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대중화의 길을 걷고 있는 DSLR 카메라는 500달러대를 무너뜨릴 것으로 보이며, 글로벌 중저가 제품 소싱이라는 이통사의 압력에 못이겨 100달러짜리 휴대폰도 잇따라 등장할 예정이다.
◇수익성 탈출구를 찾아라=가격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프리미엄 브랜드, 규모의 생산, 품질혁신, 차별화라는 말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IT제조업체들을 압박하는 키워드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가전 시장에서는 프리미엄 제품을 발굴하는 것으로 전체 수익성을 높일 수밖에 없다. 휴대폰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글로벌 플레이어들은 국가별로 평균 판매가가 다르지만 각 시장에서 프리미엄 제품군으로 승부를 거는 한편, 제값 받는 마케팅을 펼치겠다는 전략이다.
레인콤·디지털큐브·코원 등은 MP3플레이어, 내비게이션, PMP 등을 통합하는 컨버전스 제품군으로 수익성을 제고할 계획이다.
PC업체들은 비교적 수익성이 높은 서브 노트북 등으로 주력 모델을 전환하고 TV와 일체형 PC들을 개발, 가전시장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하기로 했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 담당자는“IMF 당시 저가 제품을 출시했던 오류를 되풀이하면 안된다”면서 “품질은 유지하면서 원가를 혁신하고 특화하는 전략을 업계가 공히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지연기자@전자신문, jyjung@
◆부품 시장 현황
휴대폰, TV 등 완제품 가격인하 경쟁은 부품 가격하락을 촉발할 전망이다.
보다 싼 제품을 유통하기 위해서는 제조원가 경쟁력 확보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주요 부품업체들은 이미 지난해 극심한 판가하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올해도 부품업체들은 판가하락 폭에 맞춰 얼마나 제조원가를 줄이느냐에 따라 생존여부가 좌우되는 살벌한 ‘가격전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올해 가격경쟁이 가장 치열할 곳은 디스플레이 패널시장이다. 평판TV 시장의 대중화를 위한 TV업체들의 가격인하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평판TV 시장 주도권을 놓고 LCD와 PDP 패널업계가 출혈경쟁도 감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LCD TV패널의 경우 이미 지난해 40인치대가 연초 가격대비 40%, 32인치가 30%나 급락했다. 40인치대 PDP 패널도 30% 가량 판가를 낮추며 가격인하 경쟁에 맞불을 놓았다.
올해도 이같은 추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특히 삼성전자, LG필립스LCD 등 주요 패널업체들의 대형 LCD TV 패널 생산라인인 7세대 생산량이 작년보다 10∼20% 늘어나면서 공급과잉 우려도 커져 시장에서 판가하락 압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품목별로는 지난해 40인치대에서 올해는 50인치대 초대형 패널의 가격인하도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샤프가 50인치대 LCD TV시장을 겨냥한 8세대 생산라인을 본격 가동하고, 마쓰시타·LG전자·삼성SDI 등 PDP 패널업체들도 50인치 PDP 패널 양산비중을 기존 25%에서 40%까지 확대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휴대폰 부품도 마찬가지다. 윈도비스타, 휴대가전 등의 보급에 따라 D램, 낸드플래시의 폭발적인 수요가 예상되면서 이들 부품은 생산량 확대를 통한 제조원가 인하가 불가피하다. 또 휴대폰 부품의 경우 최근 저가폰 개발 바람이 불면서 보다 저렴한 부품 공급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LCD총괄 관계자는 “완제품 업체와 시장에서 가격인하 요구가 커지면서 수익확보에 비상이 걸릴 전망”이라면서 “제조원가 경쟁력 확보가 첫 번째 과제지만, 경쟁업체에 없는 프리미엄 제품 개발, 전략적 거래처 확보 등 가격급락에 따른 마케팅 전략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장지영기자@전자신문, jyajang@
◆통신시장 현황
올해도 유무선 통신분야에서 요금인하 추세는 불가피하다. 이통사간 3G서비스 본격화에 따른 치열한 마케팅 경쟁에 예상되는 데다 유무선 결합판매 허용에 따른 저렴한 통신상품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우선 무선분야에서는 무선인터넷 요금 인하를 시작으로 SMS 요금 인하도 점쳐지며 지난해 선보였던 실속형 요금제나 파격요금제가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새해 들어 SK텔레콤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SK텔레콤은 무선인터넷 종량요금을 △텍스트의 경우 6.5→4.55원으로 △소용량 멀티미디어는 2.5→1.75원으로 △대용량 멀티미디어는 1.3→0.9원으로 각각 낮췄다. 청소년의 통신요금 경감을 위해 기존 요금제보다 30% 저렴한 월 1만8000원의 ‘팅 데이터프리’ 정액요금제도 출시했다. 또 해외로밍 발신 SMS 가격을 기존 460원에서 국가별로 150원, 300원으로 인하했다.
KTF와 LG텔레콤도 SK텔레콤에 이어 조만간 무선인터넷 요금인하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하폭이나 방식은 고민중이다. SMS 요금인하는 이통 3사 모두 곤혹스러워하는 부분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인하효과를 제공하지 않으면 소비자단체의 반발은 물론 인하를 권고한 정통부도 입장이 난처해지는 만큼 묘안찾기에 나섰다. 지난해 실속형요금제와 기분존 상품으로 이통시장에 파란을 몰고온 LG텔레콤은 올해도 후발주자로 치고나갈 수 있는 다양한 요금제를 고민하고 있다. KTF와 SK텔레콤은 HSDPA 3G서비스를 두고 1위 달성과 1위 수성을 외치는만큼 요금제에서도 한판 붙을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들에게는 인하효과가 그만큼 돌아가게 된다.
유선분야에서는 국제전화 및 초고속인터넷 요금의 지속적인 하락과 함께 △VOIP 확산 △실속형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 출시 등이 잇따를 전망이다. 지배적사업자의 결합상품 허용이 가격경쟁을 더욱 촉발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초고속인터넷의 경우 다양한 결합상품에 기본 내장돼 인하효과가 한층 커지게 됐다. 업계에서는 초고속+유선전화, 초고속+유선전화+이동전화, 초고속+VOD+와이브로 등 다양한 패키지를 고민하고 있으며 가격인하폭도 적게는 5%에서 많게는 20∼30%까지 공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외에 국제전화 분야에서는 휴대폰 요금으로 무료 국제전화가 가능한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왑텔레콤의 ‘1600-0030’ 서비스는 등록절차는 물론 가입비, 월정액 없이 이동→유선(ML)요금으로 무료 국제전화를 걸 수 있다. 선불카드형 국제전화서비스와 함께 국제전화 가격경쟁 수위가 더욱 높아지게 됐다.
조인혜기자@전자신문, ih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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