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시작됐다. 작년 9·19 공동성명 이후 15개월 만이며 진전 없이 끝난 5차 회담 이후 13개월 만의 일이다. 9·19 공동성명이 채택된 다음날 북한은 경수로를 먼저 제공해줘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9·19 공동성명의 합의를 뒤집었고, 미국은 방코델타아시아(BDA) 금융제재 카드로 맞선 이후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기도 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의 강경 대응방식을 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판돈을 최대한 키우고 상황을 유리하게 조성하는, 단수가 매우 높은 게임 전략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미시적으로는 그렇게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거시적 시각에서는 과연 그렇게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핵문제가 처음 불거진 1992년 10월 이후 지금까지 14년 동안 북한이 얻은 것이 무엇인가. 미국과 대결해 체제를 유지했다는 게 북한이 얻은 것인가. 사실은 핵문제로 미국과 대결하지 않았더라도 북한의 체제가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경제지향적인 개혁·개방으로 일찍 정책 전환을 했더라면 북한은 이미 경제적으로 상당한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베트남과 중국,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나 14년간 핵문제로 국제사회와 대결한 이후 북한은 경제적으로 봉쇄당하고 대외적으로도 고립당했다. 오히려 북한은 대테러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미국의 대외정책에 이용당한 측면이 많다. 이라크 전쟁, 이란 핵문제가 다급한 외교 현안인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핵문제나 미사일문제를 세계적 차원의 대테러전쟁이라는 명분 조성에 적절히 활용했다. 그래서 북핵문제는 미국의 코트로 던져졌다가 북한의 코트로 던져졌다가 하면서 시간만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 핵이 없으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해 체제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 현상유지를 국익으로 이해하고 있는 미국이 왜 북한을 공격해 이를 깨뜨리겠는가.
최근 김정일 위원장의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대외정책은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폐쇄주의에 입각한 대외정책과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설명해야 한다. 김일성 정권은 권력의 정당성을 항일무장투쟁을 했다는 점에서 찾았고, 항일무장투쟁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활용하기 위해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지속적으로 부각시켰다. 항일무장투쟁의 국가 이데올로기는 일본과의 적대정책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한 나머지 식민지배가 끝나고 전쟁이 종식된 다음에도 일본과의 적대정책을 지속했다. 또 일본과의 적대정책 때문에 항일무장투쟁이 지속적으로 통치 이데올로기로서 타당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남한이 40여년 전인 1965년 일본과의 국교 수교를 단행함으로써 일본으로부터 기계·원자재를 도입, 임가공 상품을 만들어 거대한 미국시장에 수출하는 국제분업구도로 고도경제성장을 실현한 것에 비하면 북한은 일본 및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남한의 고도성장의 혜택을 포기한 셈이다. 북한은 아직도 항일 및 반미주의로 정권을 유지하면서 국제적·경제적 고립을 감수하고 있다.
최근의 핵문제로 인한 미국 및 국제사회와의 대결은 김일성 정권 당시의 항일무장투쟁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근거로 내부통합의 정책을 지속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북한은 하루빨리 외부의 적을 내세워 내부통합을 유지할 것이 아니라 내부의 경제발전으로 내부통합을 유지하는 정책으로 바꾸어야 한다. 남한은 1965년에 일본과 수교를 맺어 경제발전에 드라이브를 걸어서 12대 세계강국으로 발전했는데 북한은 아직도 일제시대 때의 생존논리를 되풀이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많이 늦었지만 이번 6자회담에서 핵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국제고립에서 벗어나 경제적 번영의 길로 들어서는 전략적 선택을 하기를 기대해본다.
◆서재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suhjj@kinu.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