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첨단 기술의 해외유출을 막자

디스플레이 전문업체인 오리온PDP의 경영권이 중국 가전업체인 창훙(長虹)그룹에 넘어간다고 한다. 팬택의 워크아웃 신청에 이어 터져나온 오리온PDP의 해외 매각 소식이 세밑 국내 전자산업계의 기상도를 어둡게 하고 있다. 사실 오리온PDP가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다. 지난해 270억원 매출에 16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으니 결코 내세울 만한 실적이 아니다. 하지만 이 업체가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차지하는 상징적인 의미는 결코 폄하될 수 없다. 오리온PDP는 지난 95년 국내 처음으로 PDP를 국산화했고 현재 100여개의 국내외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에 경영권을 인수한 중국 기업도 바로 이 점을 노렸을 것이다.

 이번 지분 매각을 지난 2002년 11월 중국 비오이그룹의 하이디스 인수와 연관지어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른바 기술 유출 논란이다. 이런 시각의 밑바탕에는 첨단 국산 IT를 또 한번 중국기업에 헐값으로 넘기는 것 아니냐는 안타까움이 투영돼 있다. 중국 비오이그룹에 인수됐던 하이디스는 지난 2003년 매출 7965억원에 영업이익 961억원을 기록했으나 작년에는 매출 4649억원에 영업손실 1099억원을 기록,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비오이그룹은 비오이하이디스의 회생 방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LCD 패널 특허권을 넘길 것을 요구했다. 결국 비오이하이디스는 지난 9월 비오이그룹에 넘어간 지 3년 만에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말았다. 비오이하이디스는 첨단 기술만 비오이그룹측에 넘겨준 채 빈 껍데기만 남은 꼴이 됐다. 이번 오리온PDP의 지분 매각을 보면서 비오이하이디스의 전철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LCD에 이어 PDP산업에서마저 기술유출에 의한 부메랑으로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을 저하하고 중국 업체의 기술력만 높여주는 꼴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기술유출은 엔지니어 한두 사람이 설계도를 몰래 갖고 나가 경쟁업체에 넘겨주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M&A라는 합법적인 과정을 통해 공개적으로 기술을 가져가고 있다. 현재 매각 추진 중인 대우일렉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결국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IT산업의 미래는 없다. 지금의 어려움 때문에 기업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지만 그 결과가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다면 단순히 한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행히 정부가 기술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산업기술유출방지법을 제정해 내년 4월 시행에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법률의 제정과 시행이 능사가 아니다. 지분인수 등을 통해 첨단기업이 해외로 매각될 경우 어떻게 기술 유출을 방지할 것인지 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포함돼야 할 것이다.

 또 매각 과정에서는 정작 손을 놓고 있다가 해외 기업에 매각이 결정되면 그제야 기술유출, 경쟁력 저하 운운하면서 부산을 떠는 것도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첨단 기술의 해외 유출이나 기업의 해외 매각에 앞서 국내 업체 간에 자연스럽게 M&A가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정부나 업계가 묘안을 짜내야 할 것이다.

 최근 디스플레이 시장은 급변기를 맞고 있다. 특히 대만업체들의 공세가 무섭다. 언제 우리를 추월할지 모른다. 이미 생산량 면에서는 우리를 앞섰다고 한다. 게다가 디스플레이 제조장비의 표준화가 진전되면서 국가 간 그리고 업체 간 품질 및 수율의 차이가 현격하게 줄어드는 추세다. 공정개선이나 대규모 투자 등을 통해 디스플레이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우리가 갖고 있는 첨단기술이 경쟁국에 넘어가지 않도록 쉽게 보이지 않는 제도적 장치를 두겹 세겹 만들어가는 게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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