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기업]최문기 ETRI 원장 "ETRI 르네상스 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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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8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졸업할 당시 동기생 모두가 외면했던 통신기술연구소(ETRI 전신)에 들어가 6개월 만에 통신 분야의 가능성을 보고 ‘말뚝’을 선언했던 28세의 모범 청년이 우여곡절 끝에 ETRI 원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금의환향한 주인공은 최문기 한국정보통신대 IT 경영학부 교수(56). IMF 여파로 20년간이나 소중한 꿈을 키워가던 ETRI를 포기하고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지 꼭 8년 만이다.

“주변 사정으로 인해 정든 연구원을 떠나야 했을 때는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내가 선택했고, 평생을 보내고자 마음먹었던 ETRI에 대한 애착이 그만큼 컸던 셈이지요.”

최 원장의 회고담이다.

최 원장은 “그동안 ETRI가 우리나라 IT산업의 중심 축이자 최고 연구기관으로 기여해왔지만 최근 들어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는 말로 앞으로 해나갈 일의 방향을 내비쳤다.

◇사람을 키워야 성공한다=신임 최 원장의 지론 가운데 하나가 전문인력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시동을 잘 걸어 놓으면 나머지는 저절로 돌아가도록 돼 있으니 ‘사람’에 공을 들이는 전략이야말로 경영의 가장 기본이라는 인식이다.

“사람 키운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ETRI나 정보통신대 재직시절 첫 논문만 지도해주면 나머지는 저절로 굴러갑니다. 한 명이 두 명으로, 두 명이 네 명으로…. 교육의 영향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최 원장은 “당시에는 통신을 아는 사람이 없었고 KIST 전산실에서 전자데이터처리시스템(EDPS)을 다루던 인력이 전부였다”며 “양승택 선임부장(현 동명대 총장·전 정통부 장관)이 ‘사람 키워야 한다’며 유학 프로그램을 만들어 당시 전경표 박사(현 ETRI 근무)와 1호로 5년간 유학을 다녀왔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당시 해외 출장도 많이들 갔고 인원은 얼마 안 됐지만 세계 표준 기고서가 연간 50편씩이나 쏟아졌다는 것. 지금 기술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당시 인터넷 프로토콜 만드는 데도 큰 영향 줬다는 것이 신임 최 원장의 기억이다.

◇국내 통신망의 산증인=지난 78년 처음 ETRI에 들어와 알게 됐던 통신 분야는 서울대와 KAIST에서 각각 전산학과 산업공학을 전공했던 신임 최 원장에게는 생소한 분야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KAIST 졸업 동기 8명 모두 가기를 꺼리던 통신기술연구소에 들어가면서 대학교수의 꿈을 접어야 했던 28세의 젊은이에게는 시련이었다.

“처음 ETRI에 들어가 의무 근무연한(3년)을 1년으로 해달라고 경상현 부소장(전 정통부 장관)에게 청했더니 2년간 일단 열심히 일해보라며 퇴짜를 놓았습니다. 그런 뒤 6개월간 밤낮없이 ‘통신’ 공부를 하면서 미래는 통신시대라는 것을 깨달았죠. 그게 ETRI에 말뚝을 선언한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최 원장은 통신 분야 개척자로서 5년간 특진을 두 번이나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우리나라 중장기 통신망 계획을 수립했고 통신망 구조실장과 초고속 정보통신부장, 통신 시스템연구단장 등을 거치며 국가 G7기술계획으로 총 6850억이 투입되는초고속정보통신기술인 ‘ HAN/B-ISDN’의 사업화를 주도했다.

“월급이 24만원이던 시절 데이터 통신을 하기 위해 KAIST 슈퍼컴 3090을 하루 200만원씩 주고 터미널을 이용해 썼습니다. 모뎀 속도가 2.4Kbps였으니 지금과 비교하면 웃음이 나오지요.”

◇ETRI ‘르네상스’ 시대로=최 원장이 내세운 것이 올해 30주년을 계기로 ETRI가 향후 30년을 구가할 ‘ETRI 르네상스’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CDMA와 전전자교환기(TDX) 등 굵직굵직한 ‘대박기술’로 IT코리아의 주춧돌을 놓았던 ETRI의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IT R&D의 리더로서 새롭게 자리 매김하도록 할 계획이다.

ETRI 전 분야의 학제 간 융합이 절실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최 원장은 특히 CT사업에도 큰 관심을 드러냈다. CT야말로 미래 한국을 먹여 살릴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를 위해 ICU나 KAIST, 대덕연구개발특구와 협력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달려갈 태세다.

“ETRI는 조직이 크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가 지속적으로 유입되지 않으면 금방 굳어버릴 수 있습니다.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놀 때 노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최 원장은 “내가 원장이 되면 다칠 사람이 많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ETRI의 줄서기 병폐를 잘 알고 있으며 나를 잘못 알고 하는 말”이라면서 “서로를 다독이며 열심히 자발적으로 일하자는 것이 소신”이라고 말했다.

‘남에게 해 되는 일 안 하고 의리 빼면 쓰러진다’는 최 원장이 ETRI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 @etnews.co.kr

최문기 ETRI 원장 이력

△1966∼1969 경북고 △1969∼1974 서울대 공학사△1976∼1978 KAIST 산업공학 석사 △1978 통신기술연구소 입소(ETRI 전신) △1984∼1989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주립대 네트워크 전공 박사 △1989∼1998 ETRI 통신시스템연구단 실장·부장·단장 △1999∼2001 한국정보통신대(ICU) 연구기획처장 △2000∼2001 ICU 학부설립 추진단장 △2001 ICU 총장 대행 △2004∼2005 ICU 교학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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