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스타크 선수 설 땅이 없다

한국 e스포츠의 비 ‘스타크래프트’ 종목 선수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특히 국제적으로 명성을 드높이던 선수들이 하나 둘 e스포츠판을 떠나고 있어 ‘스타크래프트’를 제외한 한국 e스포츠 선수들의 경기력이 전반적으로 후퇴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심각하다.

실제로 지난 9월 상하이에서 열린 한·중 대항전 인터내셔널 e스포츠 페스티벌(IEF)에서 한국은 ‘스타크래프트’를 제외한 두 종목(워크래프트 3, 카운터스트라이크)에서 완패를 당하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e스포츠에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전문가들은 “지난 IEF에서 중국에 패한 것은 한국 최고의 ‘카운터 스트라이크’ 팀인 루나틱하이가 참가하지 못한 것이 패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루나틱하이는 한국대표로 선발됐지만 팀 리더인 오정탁이 개인사정으로 팀에서 탈퇴해 대회 참가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

현재 루나틱하이는 새로운 멤버 영입을 위한 휴지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퇴를 선언한 오정탁은 “‘스타크래프트’처럼 활성화 된 국내무대가 마련돼 있지 않아 불확실한 선수생활을 계속할 수 없었다”고 은퇴 이유를 밝혔다.지난 1월 이후 프로게이머는 100명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스타크래프트’와 새롭게 공인된 종목에 집중돼 있다. 비 스타크 종목 선수들의 실상을 대변해 주는 대목이다.

또 남아있는 비 스타크 선수들 중에도 후원을 받고 있는 선수가 많지 않아 현재 프로게이머로서의 잔류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선수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프로게이머들이 한창 전성기를 구가 할 시기인 20대 중반에 게임을 접고 다른 분야를 찾아 떠나고 있다. 특히 국제 대회의 단골 종목으로 자리잡은 ‘워크래프트 3’ 경우 프로게이머 숫자가 오히려 줄어들어 올 들어 50명 정도 불어난 ‘스타크래프트’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워3’와 함께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카스’는 그나마 상황이 좀 나은 편. 한국 게임 시장에 FPS 장르 활성화를 발판으로 많은 대회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협회의 황규찬 FPS 심판은 “FPS 장르의 경우 비슷한 엔진과 조작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같은 장르의 다른 종목으로 이동이 수월한 편”이라며 “이 때문에 ‘카스’ 선수들은 타 종목보다 선택의 폭이 조금은 넓은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개발사나 퍼블리셔가 후원하는 형태의 대회라서 이벤트성으로 끝날 확률이 높다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비 스타크 프로게이머들이 이렇듯 하나 둘 e스포츠계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비 스타크 종목의 한 선수는 이와 관련 “한 동안 대회가 없어 연습만 하고 있다”며 “요즘 들어서는 대회도 없는데 연습은 해서 뭐하나라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팀 탈퇴를 선언한 루나틱하이의 오정탁도 “현재 프로게이머에 대한 미련은 조금도 없다”면서도 “ ‘스타크래프트’와 비슷한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었다면 프로게이머로서 더 오래 활동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프로게이머로서 뜻을 두고 있어도 안정적으로 경기에만 집중할 환경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도 대한민국 프로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뚜렷한 하향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프로게이머로 활동하고 싶은 선수들의 경우에도 마땅한 스폰서를 얻지 못해 ‘나 홀로 게이머’를 하거나 운이 좋아 해외 스폰을 받는다 해도 적당한 연습 환경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비 스타크 선수들이 하나 둘 떠나는 것은 곧 종주국 한국의 위상이 점차 사라지는 것과 같다”며 “물론 한국 관중들이 즐겨보는 종목이 중요하지만 e스포츠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 국제적으로 위상이 드높은 종목의 선수들에게라도 안정적인 훈련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관계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타 종목의 리그를 활성화 시키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8월 종목다변화 소위원회가 구성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 진행 중인 소위원회는 한국 시장에서 어느 정도 유저풀이 구성되어 있는 종목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다 그 진행 속도가 느려 시급한 현안을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 프로게이머 출신의 한 관계자는 “소위원회가 구성되었다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다소 늦은 감이 있다”며 “소위원회 활동과 함께 다른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기업팀에서 비 스타크 종목 선수들을 영입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국내리그가 없더라도 선수를 영입해 활동비와 장소를 제공하는 등 최소한의 지원을 하는 것이 한국 e스포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홍보효과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팀을 창단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리그가 활성화 되어 있지 않은 종목을 지원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해 일부 전문가들은 국제대회를 적극 유치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국제 대회를 국내에 유치해 새로운 종목의 붐업의 장으로 활용하고 이를 통해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무대를 만들고 나서 팬과 기업의 이목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설명이다‘스타크래프트’에 편향된 한국 e스포츠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지난 8월 구성된 종목다변화 소위원회가 2007년부터 ‘피파온라인’을 정규리그화 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어 주목된다.

현재 11개 게임단이 이 같은 사안에 대해 전반적으로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위원회 최성근 위원장(팬택 이엑스)은 이와 관련 “현재 9개 구단은 찬성하고 있고 나머지 두 개 구단 만이 판단을 잠시 보류한 상태다”며 “리그가 시작되기 전 11개 구단이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소위원회는 10월 중 이러한 내용의 합의서를 채택하고 다음 달인 11월에 협회와 네오위즈 간 MOU를 체결하고 내년 초 주관방송사를 결정, 3월 중으로 제 1회 대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또 이에 앞서 내년 1월 중 ‘피파온라인’ 선수 드래프트를 실시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소위원회는 이와 함게 리그 활성화 소위원회를 따로 구성해 현 스타크래프트 리그와 함께 앞으로 정식리그화 되는 종목의 활성화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명근기자 dionys@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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