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게임산업진흥법 시행과 과제(상)
오는 29일부터 새로 만든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산업진흥법)’이 시행되면, 한국 게임산업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법·제도적 새옷을 갈아 입게 된다.
산업 태동 이후 30년, 폭발적 성장기 10년을 거쳐 시행되는 이 법은 한국 게임산업이 오는 2010년 이후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산업으로 비상하기 위한 ‘활주로’로 평가된다. 그러면서 법 시행과 함께 법을 현실과 미래 환경에 맞게 얼마나 잘 손질해 가느냐도 법 안착의 관건이 될 것이란 목소리가 높다.
일단 하위 법령까지 심사가 사실상 마무리됐고, 앞으로 차관 회의와 국무회의 통과라는 공식적 일정만 남겨 놓고 있는 상황에서 관련업계는 이 법의 꽃인 ‘게임물등급위원회(게임등위)’의 구성 및 출범이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해서는 안된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
게임등위 출범 지연은 곧 심의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다시 연중 최대 성수기인 겨울시즌을 앞두고 밀려드는 신작 게임의 서비스·마케팅 대란으로 도미노처럼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산업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당장 게임산업 진흥을 위해 만들어진 법의 시행이 출발부터 업계 타격으로 이어진다면 정통성과 법 존립 가치는 크게 상처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게임등위는 이 법 첫 출발의 ‘첫단추’이자 얼굴인 셈”이라고 말했다.
◇변화된 산업환경 반영 미흡=지난 수년간 게임산업은 폭발적 성장을 거듭하면서 소비·수입 위주의 산업에서 개발·수출 중심의 체제로 급속히 발전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법은 제작·수출을 활성화시키는 근본적인 처방에는 아주 허약한 실정이다. 전체 매출의 50%가 해외시장에서 나오고 있음에도, 수출 지원을 위한 제도적 지원책·예산 규정 등은 빠져있다.
이와 함께 지방 클러스트 확대 등 창의적인 제작 시설 확충, 창업 관련 진입장벽 낮추기, 인력 문제 등에서도 초보적이고 평면적으로 접근한 조항 뿐이다. ‘제도개선에 힘쓴다’, ‘지원을 한다’ 등의 선언적 조항만으로 산업 경쟁력이 저절로 키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FTA와 연계돼 산업 경쟁력 저하 우려=한미FTA를 비롯해 FTA 확대는 국내 산업의 수출 확대로 이어져야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다.
하지만 FTA가 자칫 국내 산업에 대한 규제 수준을 경쟁국보다 높여, 전반적인 상대 경쟁력 하락을 초래하는 상황에 대해 업계는 깊이 우려하고 있다. 이번 시행되는 게임산업진흥법도 산업진흥법이면서도 여전히 경쟁국인 일본·미국·유럽 등에 비해 약하지만 여전히 규제 조항을 안고 있다.
더구나 ‘바다이야기’ 사태까지 얹혀져 법 시행 전부터 규제 강화 목소리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형식 규제(업종 허가·등록제)는 물론 내용 규제(사전심의·사후관리)까지 이 법 시행 뒤에도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요소는 여전히 남아 있다.
최승훈 게임산업협회 정책실장은 “FTA까지 더해져 근원적인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선 안된다”며 “규제 합리화를 통해 경쟁국과 대등한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도 법을 손질하는 중요한 방향이 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 관련 이슈 정비 필요=서비스·유통 환경이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면서 산업 고도화를 위해 소비자 문제를 체계적이고 깔끔하게 법제화하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이번 게임산업진흥법에 이 부분은 당위적 명제 이외에는 빠져있다.
전문가들은 1개 장 정도를 따로 떼내 소비자 문제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산업을 키우는 것에는 동의하겠지만, 소비자 보호·권리에 대한 규정은 없이 그냥 산업만 키우자고 하면 어떤 소비자가 동의하겠는가”라며 “소비자 이슈를 명시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 업체 마케팅팀장도 “소비자 관련 책임과 권리의 한계를 분명히 규정하는 것은 기업 활동에도 도움이 된다”며 “소비자가 산업에 없어서는 안되는 한 축인 만큼 조항 보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
◆ 사행성 유기기구 때문에 진흥법 훼손 될까 불안
게임산업진흥법이 시행하기도 전에 정치권에서 개정 논의가 들끓고 있다. 하지만, 건전한 개정 취지가 아니라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지면서 조성된 시류에 편승하려는 ‘흥행의도’가 다분히 담겨있다는 점이 문제다.
가장 핵심적 이슈는 ‘게임’이 아니라 ‘전자식 사행성 유기기구’인 바다이야기가 게임으로 규정돼 버젓이 정부 등급기관으로부터 등급을 부여받을 수 있었던 제도적 맹점이 새 법에 대한 개정에까지 은근슬쩍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9년 음반및비디오, 게임에관한법률(음비게법) 시행으로 사행성 유기기구가 게임물의 하부개념으로 들어오면서 ‘게임’이 됐지만 진정한 게임만을 다뤄야할 새 법에까지 사행성 유기기구가 게임 범주에 포함되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는 “법률적인 허점, 제도의 난맥상이 만들어낸 ‘바다이야기’의 망령이 새로운 게임산업진흥법까지 연결돼서는 안될 일”이라며 “구시대 유물과 단절하는 새 출발이 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업계도 자칫 건전한 게임산업에 마저 사행성 유기기구와 같은 일괄 규제가 가해지는 ‘미러 효과’가 발생하지나 않을지 극히 우려하고 있다.
한 중소업체 대표는 “지금 개발중인 게임에 대해서 조차 바다이야기와 한 통속 취급을 하는 세태가 가장 두렵고 힘든 존재”라며 “잔뜩 기대를 갖고 있던 게임산업진흥법 시행과 게임물등급위원회 출범이 사회관념이라는 난관에 봉착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직원 200여명을 거느린 중견업체 사장도 “진흥법이 시행된다고 모든 규제에서 벗어날 것이라고는 생각 안했지만, 오히려 규제가 늘어날 수도 있는 판국”이라며 “게임도 아닌 것이 일으킨 사회적 문제를 게임을 진흥시키겠다는 법에까지는 연결시키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털어놓았다.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보좌관은 “초반 과도한 여론 흐름에서는 벗어나 안정을 되찾고 있는 분위기”라며 “업계 여론 등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개정 작업을 좀더 세련되게 다듬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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