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4주년(4)]한국 표준을 세계 표준으로-기고: 최갑홍 기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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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표준과 국제표준화 전략, e잰틀맨의 조건과 표준화 

 기원전 230년경 진나라의 시황은 도량형과 화폐, 무기 등의 표준화를 통해 전국칠웅이 활거하던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특히 전차의 바퀴와 화살, 창 등 무기는 물론이고 이에 맞는 도로의 정비와 문자의 표준화를 통해 강력한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확립할 수 있었다.

 이 같은 현상은 유럽연합(EU)의 단일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유럽위원회에서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회원국이 지켜야 할 지침(표준)을 만들고 이를 자국의 법률안에 반영하는 방식의 새로운 접근방식을 채택, 유럽연합을 하나로 통일해 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계무역기구에서 채택한 무역에 관한 기술장벽 협정(TBT)의 핵심 수단도 바로 표준이다. 이미 국제표준이 존재하거나 만들어지고 있는 경우 회원국들은 또 다른 기술표준을 만들어서 무역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지하철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상탈출 표시나 위험표시도 표준으로 정해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제 표준의 기능과 역할이 국제적 차원에서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표준의 전통적인 역할은 제품의 호환성을 확보하고, 최저 품질을 보장하며, 복잡성을 단순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표준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의 삶 가까이에 와 있다.

 또 표준 제정 방식에서도 획기적인 변화가 있다. 종전에는 국가표준을 만들고 이를 국제회의를 통해서 국제표준으로 만들었으나, 이제는 국제표준이 먼저 만들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각 국이 자국 표준을 만들어 가고 있다. IT의 발전과 기술혁신으로 가속화된 글로벌화의 새로운 규범과 지침이 국제표준으로 제정되고 있는 것이다.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 시대가 왔다.

 그렇다면 글로벌 스탠더드 전략은 무엇인가. 표준의 제정과 활용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르는 것이다. 일본은 80년대부터 줄기차게 성능과 기술이 우수하면 국제표준으로 선택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국제표준이 성능과 기술 위주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자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국제표준으로 채택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른바 말하는 정보기술(IT) 이후에 바이오기술(BT)이고, 바이오기술 이후에 관계기술(RT)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표준화 활동에서 정확히 맞는 것이다. 관계기술을 통해서 상품화되는 것이 표준이기 때문이다.

 글로벌전략을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째 표준제정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곧 글로벌 스탠더드의 첫 걸음이다. 제정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보장되는 개방성, 투명성과 공개성 등 표준의 원칙을 지키는 게임을 해야 한다.

 둘째, 이해관계자와 시장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소비자는 안전하고 질 좋은 제품을 사기 위해서 표준이 필요하고, 기업은 원가를 절감하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표준이 필요하다. 정부는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표준을 활용한다. 시장은 신속한 표준제정을 바라고 있다. 시장과 연계를 강화하고 이해관계자의 참여 폭을 확대하는 것이 글로벌전략의 하나다.

 셋째, 전문성과 국제적 감각을 갖춘 표준전문가의 확보 전략이다. 하나의 표준을 만드는 데는 실무자회의, 전문가회의, 이해관계자 투표 등 수많은 회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 3년 이상의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전문성과 국제적 감각을 갖춘 인력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끝으로, 표준에 대한 인식이 국제수준이 돼야 한다. 표준은 특허, 디자인과 함께 차세대 소프트 인프라라고 일컫는다. 경쟁력 확보의 중요한 수단이 표준이 되리라는 것이다. 표준은 공공재적 성격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이해관계자의 요청을 반영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공정한 게임을 즐기기 위한 멋진 e잰틀맨이 되기 위해서는 국제 규범인 표준을 만들어 가는 국제표준화 활동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이 큰 힘이 될 것이다. 표준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정책적 배려가 지속돼야 한다.

 kaphong@moci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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