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이야기’ 사태의 불똥이 이젠 온라인게임 쪽으로 옮겨붙어 논란이 일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웹보드게임을 비롯한 일부 사행성이 강한 갬블게임도 규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는 탓이다.
게임업계는 이에대해 “‘바다이야기’와 같은 도박기기와 웹보드게임을 같은 잣대로 비교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처사”라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이제 이번 사태의 책임과 불법 및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처벌은 사법당국의 몫으로 넘어간 만큼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과 책임공방은 자제해야 한다”면서 “대신에 건전 게임문화를 조성하고 차세대 성장동력인 게임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또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 지 고민해야할 때”라고 강조한다.
‘바다이야기’ 사태는 일파만파로 확산되며 그동안 관련 기관 및 업계는 물론 게임업계 전체에 결코 작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직접 이해 당사자인 성인 오락기기 제조업체와 일선 사업장 업주들은 생사의 기로에서 단체 행동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온라인게임 등 일반 게임업계도 이미지에 오점을 남기는 등 후유증이 심각하다.
이들 성인오락기기가 사실상 도박기계들임에도 불구, ‘게임’이란 꼬리표를 달아 같은 범주로 취급받고 있는 탓이다. 특히 게임산업 진흥과 건전 게임문화 조성의 중차대한 역할을 맡고 있는 관련 정책시스템 라인이 송두리째 흔들리면서 향후 더 큰 후유증이 예상된다.게임 관련 모든 정책의 중심인 문화관광부를 필두로 정책 자문 및 실무 집행 기관인 한국게임산업개발원, 등급 심사와 사후관리를 총괄하는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 등 게임분야의 3대 핵심 기관은 이번 사태로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완전 정상 가동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게임 관련 법 제·개정과 관련 정책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을 동시에 맡고 있는 국회(문화관광위원회)도 의혹의 표적이 되고 있어 적지않은 후유증이 불가피할 지경이다.
여기에 게임업계의 최대 숙원으로 올해 새로 제정된 ‘게임산업진흥법’ 태동에 맞춰 ‘포스트 영등위’ 기구로 다음달 발족을 앞둔 ‘게임물등급위원회’(게임등위) 출범 일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최근엔 300여개 시민·종교단체로 구성된 ‘도박산업규제 및 개선을 위한 전국네트워크’가 ‘게임등위’ 운영규정(안) 및 등급분류 심의규정(안)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이유로 설립 자체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쯤되면 그야말로 대한민국 게임산업 진흥 시스템이 완전 초토화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처럼 정부의 게임산업 지원 시스템은 붕괴 직전에 몰려있다. 문제는 그로 인한 여파가 이들 기관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관련 산업과 업계에 더욱 심각한 후폭풍을 동반할 수 밖에 없다. 이미 게임 판매 및 서비스의 1차 ‘통과의례’인 사전 등급심사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으면서 기업들이 서비스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으며, 크고 작은 게임 관련 행사와 중요한 정책에 유무형의 손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온라인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게임산업 지원 부처와 관련 기관이 집중 포화를 맞아 앞으로 게임 비즈니스에 어떤 파장을 몰고올 지 예측하기 어렵다”며 “많은 업체들이 개발 및 서비스 계획 수립에 애를 먹을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바다이야기’ 사태로 인한 후폭풍을 최소화하고 하루빨리 정상모드로 돌아와야한다는 목소리가 게임업계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후폭풍을 이대로 방치하거나 되레 사태의 본질을 외면한 채 화살을 게임업계 전반으로 돌릴 경우 어렵게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온라인게임 산업의 성장에도 급제동이 걸릴 것이란 우려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설령 상황이 이처럼 암울하다고해서 잘못된 관행, 잘못된 법·제도를 그대로 덮고 넘어간다면, 훗날 더 큰 화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더더욱 안된다.
전문가들은 “거시적으로 보면 이번 사태를 수습하고 후폭풍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게임산업 육성과 보다 건전한 게임문화 조성을 위한 정부의 정책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재정비하고,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라며 “이런점에서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 게임산업 진흥과 건전한 문화조성과 관련된 정책 시스템 전반에 대대적인 수술과 확실한 처방전을 내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현재 개정 작업이 추진중인 ‘게임산업진흥법’과 하위법인 시행령, 시행규칙부터 제로베이스에서 세밀한 재검토가 이루어져야한다. 설령 법 발효 시점이 다소 늦춰지는 일이 있더라도 차제에 제대로된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는 얘기다. ‘게임등위’ 역시 조기 발족보다 중요한게 제대로된 조직과 운용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바다이야기’와 같은 성인오락기기와 건전한 아케이드게임, 그리고 일반 게임을 완전 분리할 수 있는 용어의 정의부터 다시 내릴 필요도 있다. 특히 슬롯머신이나 빠친코와 같은 성인용 갬블기기들은 아예 게임법상에서 제외시켜 특별관리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 다시는 도박기기에 의해 게임산업 전체가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한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문화부가 내놓은 ‘2006년게임백서’를 봐도 도박기기들이 아케이드게임이란 명목으로 삽입돼 게임산업 규모를 크게 왜곡시키고 있다”며 “설사 산업 규모가 대폭 줄어드는 한이 있더라도 산업분류 체계를 재정립헤야한다”고 주장했다.게임업계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깊게 반성해야 한다는 자성론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바다이야기’류와 근본적으로 뿌리와 이용자 성향이 다르고 정도의 차이가 클지 몰라도 온라인·모바일 등 플랫폼을 망라해 게임 시장 전반의 사행성 문제가 위험수위에 오른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폭력성, 선정성, 중독성 등 게임의 아킬레스건인 여러 부정적 요소들도 날이 갈수록 강도가 높아져 언제든 사회적인 이슈로 급부상해 업계의 발목을 잡고늘어지는 악순환을 되풀이할지도 모를 일이다.
역기능을 최소화하는 문제와 함께 이번 기회에 또하나 중요하게 고려돼야할 것이 게임의 순기능을 강조하는 일이다. 사실 게임은 차세대 성장 엔진이라는 산업적 가치는 차치하고서라도 21세기 정보화시대의 대표적인 디지털 문화콘텐츠로서 적지않은 순기능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역기능에 가려 많이 왜곡돼온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게임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제고하는 일은 정부 예산을 대폭 늘려서라도 시급히 개선돼야할 문제”라며 “이 부분에 관한한 주무부처인 문화부와 관련기관, 그리고 업계가 힘을 합쳐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이번 ‘바다이야기 사태’가 어떻게 결론나든 상관없이 결코 잊어선 안되는 것이 누가뭐라해도 게임이 우리 경제의 확실한 미래 ‘먹거리’중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즉, 게임의 역기능 차원과는 별도로 게임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범 정부차원의 정책 우선 순위에서 결코 밀려나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전문가들은 “‘비온뒤에 땅이 굳고’,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이번 ‘바다이야기’ 사태를 단지 파문으로 끝나게하지 말고 2010년 세계 3대 게임강국 구현을 목표로하는 대한민국 게임산업의 백년대계를 다시 짜는 계기로 만들어야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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