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병역특례 과연 형평성이 있는가

 국방부와 병무청이 과학올림피아드 금메달 수상자에게 주려는 병역특례에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과연 그럴까? 한번 따져볼 일이다.

 조선시대에도 노부모를 봉양해야만 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예외없이 군역을 면제해 줬다. 군역 면제의 기준과 철학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어느 국가나 왕조든 정책의 으뜸은 민초들의 민생고 해결이었다. 가문과 대를 잇는 유교전통이 강했던 조선이었기에 또 다른 민생고 해결 차원에서 독자(獨子)에게도 같은 혜택이 주어졌다.

 면제 혜택이 주어진 또 다른 대상은 이른바 국가 지도층인 양반의 자제들이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철저한 신분사회여서 언뜻 보기에는 특권층인 양반들이 스스로에게 특혜를 주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 원칙을 숭상하는 게 유교 사상인만큼 실제로는 인재 양성이 근본 배경이다. 양반의 자제는 문과든 무과든 과거에 급제해 공무를 보는 게 숙명이었다. 어차피 장차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 할 동량(棟梁)인만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조선시대의 예로 보건대 군역 면제의 기준은 한마디로 민생고 해결과 인재 양성이라는 두 가지 원칙이 있었던 셈이다. 지금도 병역특례에서는 동일한 원칙이 유지되고 있다. 민생고 해결 차원의 두 가지 면제 대상은 동일하다. 나머지 인재양성 측면의 특례는 시대상황이 변했기 때문에 유사한 제도로 변화됐다. 민주사회에서는 아무리 전도 양양한 국가 동량이더라도 이들에게 신분사회에서나 가능한 면제 혜택을 줄 수는 없다. 대신 공익근무라는 제도로 이를 계승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면제 대상이 아니라 공익근무요원 제도의 대상이다. 현재 공익근무요원의 혜택이 주어지는 대상으로는 예체능 분야에서 국위를 선양한 젊은이들과 산업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이공계 인재들이다. 여기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예체능 분야는 ‘결과에 따른 보상’ 차원이고 이공계 분야는 ‘앞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원인론적·의무적 차원이라는 점이다. △유네스코 산하 국제음악경연대회 2위 이상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육 5년 이상 이수자 △응씨배·후지쯔배 바둑대회 2위 이상 입상자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아경기 대회 1위 입상자 △월드컵 축구 16위 입상자들에게는 금전적·신분적 보상 외에 병역특례라는 추가 혜택이 주어진다. 또 혜택에 따른 추가 의무도 없다. 반면에 이공계 젊은이들에게 의무를 전제로 한 병역특례가 유일하게 주어지는 보상이다. 그것도 병역의무 기간보다 긴 기간 산업계나 연구계에서 국가발전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국방부와 병무청이 형평성을 이유로 과학올림피아드 금메달 수상자에게 특례를 줄 수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예체능 분야 특례와 견주어 ‘형평성’에 어긋난다. 과학올림피아드 금메달 수상자도 국위 선양에 따른 결과론적 보상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의무적으로’ 산업계와 연구계에서 3년간 연구활동을 해야만 특례를 주겠다는 정책이다. 예체능 분야에 비해 금전적·신분적 보상도 적고 추가 의무까지 져야 한다.

 지금은 기술 혁신 시대다. 기술 혁신 없이는 국가의 장래마저 불투명하다. 참여정부가 지난 2003년 ‘제2의 과학기술 입국’을 선언한 것은 이 같은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었다. 과학·기술 혁신을 주도할 젊은 인재들을 양성하는 것은 장차 민생고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으뜸 정책이자 이공계 기피를 타파하겠다고 선언한 참여정부의 의무이기도 하다. 국방부와 병무청이 예체능 분야에 비해 불평등한 과학기술 및 이공계 병력특례 제도를 개선하지는 못할 망정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반대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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