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방융합, 새로운 10년을 준비한다]제6부:세계는 이미 빠르게 변하고 있다(9)

◆미국(하)-FCC

국내에서 통신과 방송 관련 정책 및 법규를 담당하는 기관은 국회를 비롯해 정통부·문화부·산자부·방송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등 다양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등장하고 있는 융합서비스들은 특정 부처의 소관영역이라고 구분하기 모호한 경우가 많아 종종 부처간 세력다툼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IPTV를 둘러싼 논쟁,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의 기업결합 등이 그 예다. 이러한 부처간 논쟁과 갈등은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때문에 각 부처의 역할 정립 및 협력관계 수립은 향후 방송통신융합추진위를 중심으로 한 융합시대 대비전략을 만드는데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전망이다.

우리보다 앞서 통신과 방송에 대한 규제기구를 통합한 FCC는 유관기관과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FCC와 공익사업위원회(PUC)=미국은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규제가 이원화돼 있는 연방주의 국가다. 이에 따라 연방차원의 통신과 방송 규제정책은 FCC가 담당하고, 주 차원의 규제정책은 PUC(Public Utilities Commission)가 맡고 있다. 즉 큰 틀에서 FCC가 규제정책을 수립하면, 그 틀 안에서 PUC가 주 정부의 특성에 맞게 지역화된 정책을 만들고 관리하는 형태다.

PUC는 주 차원의 통신과 방송정책 수립 및 규제를 기본적으로 맡고 있으며, 사업구역 지정과 케이블TV 허가, 요금 규제와 규정 위반사업자 제재 등의 권한을 가진다. 주요 규제 내용을 살펴보면 △시내 통신사업 전입허가 △요금 규제 △시내전화 사업자 영업활동 규제 △케이블TV 사업자 허가 및 규제 등 주 안에서 일어나는 지역서비스임을 알 수 있다.

◇법무부 및 연방통신위원회=미국에서 미디어 기업 간의 인수합병(M&A)은 FCC의 텔레커뮤니케이션법에 앞서 반독점법에 의거해 법무부와 연방통신위원회가 일차적으로 관장한다. 지난 96년 텔레커뮤니케이션법 개정 과정에서 통신사업자간 합병을 FCC가 승인하는 경우 독점금지법의 적용을 면제받도록 한 통신법의 조항을 폐지하면서 사실상 법무부가 FCC로부터 통신사업자의 합병심사권을 반환받은 것이다. 현재는 텔레커뮤니케이션법과 반독점법이 상충할 경우 법원은 반독점법에 우위를 둔 판결을 내린다.

이에 따라 통신 및 미디어 기업의 합병시에는 법무부와 연방통신위원회(FTC)가 반경쟁·불공정행위 등을 조사해 승인 결정을 내리고, 이로부터 1개월 후 FCC가 공익심사를 실시해 최종 결정을 내린다.

◇의회 및 법원과의 관계=의회는 통신과 방송관련 법률의 제정 권한 뿐만 아니라 △FCC 위원의 추천 및 지명동의 △FCC에 대한 예산배정 및 심의 △FCC 규칙 검토 등 FCC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중요한 사항들을 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상원의 과학운수위원회·통신소위원회, 하원의 에너지상무위원회·정보통신소위원회가 FCC를 감독하고 지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FCC는 각 위원회가 지시하는 바에 따라 연차보고서 제출, 보고서 작성, 공청회 출석 등의 이행 의무를 진다.

법원은 통신과 방송에 관련한 소송을 통해 FCC의 활동에 대해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활동에 제동을 걸기도 한다. 법원은 FCC의 규칙들에 대해 집행정지나 기각 판결을 내릴 수 있으며, FCC 결정에 대한 재심사 명령을 할 수 있다. 또 방송면허와 관련한 FCC의 결정에 대해 미국 12개 고등항소법원에 이의신청도 할 수 있다. 지난 2005년에 미국 법원은 FCC의 방송통신 소유권 관련 규칙에 대해 객관적 자료 및 근거 미비를 이유로 기각한 바 있다.

◆ 미국의 융합서비스 현황

FCC를 비롯한 미국 정부 및 규제기관의 기본 철학은 규제완화에 있다. 즉 규제가 민간기업의 창의적인 기술개발과 이에 따른 산업발전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는 기조다. 미국 의회가 추진하는 연방통신법 개정방향도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정책에 힘입어 미국에서는 이미 다양한 융합서비스들이 시도되고 있다.

◇휴대이동방송=미국은 90년대 초부터 디지털오디오서비스용 DAB(Digital Audio Broadcasting) 연구를 시작했다. 미국은 월드스페이스가 세계 최초로 위성DAB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XM 위성라디오, 시리어스 라디오 등의 사업자들이 있다. FCC는 비디오 신호를 포함한 본격적인 DMB 서비스에 대해서는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고, 정해진 표준이나 규칙도 없다.

미국에서는 DMB 보다 퀄컴이 주도하는 미디어플로 방식의 휴대이동방송이 먼저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퀄컴은 미디어플로 본방송을 올해 말부터 실시할 예정이며, 이를 위해 UHF 55번의 주파수를 확보했다. 퀄컴은 이미 올해 초에 열린 NAB 전시회와 CTIA 전시회에서 라스베이거스 전역에 실제 방송타워를 설치하고, 6개사가 개발한 미디어플로폰으로 시험방송을 선보이며 기술적인 준비가 끝났음을 보여준 바 있다.

한편 크라운캐슬은 DVB-H 방식의 휴대이동방송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IPTV=미국은 지난 96년 텔레커뮤니케이션법 개정을 통해 통신과 방송의 상호시장 진출을 가능하게 했다. 현재 케이블TV 사업자들은 방송과 인터넷, 전화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를 통해 통신역역에 진출했으며, 통신사업자들도 자체 IPTV 사업 진출 및 위성방송과의 번들링 서비스 등을 통해 방송영역에 진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SBC 커뮤니케이션즈로, SBC는 지난 2004년 11월 IPTV 사업 진출을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의 TV플랫폼을 도입키로 하고 10년간 4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또 40억달러를 투자해 광케이블 망으로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2007년까지 1800명의 가입자들에게 IPTV와 초고속인터넷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또 미국 최대 통신업체 AT&T는 올 초 텍사스주에서 IPTV서비스를 시작했고, 버라이즌커뮤니케이션도 지난해 9월 텍사스와 버지니아, 플로리다 등에서 ‘피오스’라는 브랜드로 광네트워크 기반의 IPTV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양방향 데이터방송=디지털방송과 아날로그 방송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가 시청자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양방향 데이터방송이다. 기존의 방송프로그램 외에 시청자의 요구에 따라 뉴스·전자상거래·게임·생활정보 등 다양한 정보 제공이 가능하며, 시청자의 응답을 실시간으로 접수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CBS를 중심으로 ABC, NBC 등 지상파 방송사업자들이 ACAP 기반의 양방향 데이터방송 서비스 제공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전자프로그램가이드(EPG), PPV, 주문형서비스 등이 제공되고 있다.

이러한 양방향 서비스를 위해서는 시청자의 요구를 방송사에 전달하는 리턴채널 확보가 필수적이다. 케이블TV 사업자의 경우 케이블망을 리턴채널로 활용할 수 있지만, 지상파 방송사나 위성방송 사업자의 경우는 인터넷서비스사업자와의 제휴 등을 통한 별도 리턴채널을 확보해야 한다.

양방향 데이터방송에 대해서는 현재 별도의 규제가 없으며, 서비스 역시 디지털방송의 보급이 느려 크게 활성화되지는 못한 상태다.

◆텔레커뮤니케이션법 개정 의미

96년 개정된 텔레커뮤니케이션법은 통신·방송 산업의 방향을 바꾼 중요한 사건이었다. 실제로 34년 커뮤니케이션법 제정 이후 62년 만의 대폭 개정작업이었다. 개정 이유는 신자유주의 확산에 따라 탈규제와 시장경쟁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특히 미디어환경이 급변하고 있고, 융합적인 특성이 등장하면서 미디어 시장에서의 업체간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텔레커뮤니케이션법의 정책목표는 지역독점 시장을 형성하고 있던 지역전화사업에 경쟁을 도입하고, 케이블TV와 과점 상태였던 장거리 전화사업에도 경쟁체제를 도입해 서비스 질을 개선하고 요금 등 소비자 복지 증진에 있었다.

법 개정의 또 한가지 핵심은 미디어 소유규제 완화다. 이를 통해 자본력을 갖춘 통신사업자 위주의 대규모 M&A가 촉발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 AT&T 산하 케이블 MSO인 TCI와 미디어원의 합병 등이다.

당시 미국 시장에서는 통신사업자의 자본 규모가 방송사업자에 비해 7배 이상으로 분석됐으며, 때문에 M&A로 대표되는 융합국면에서도 통신사업자가 주도권을 가졌다.

현재 국내 미디어 시장 환경도 통신사업자가 방송사업자의 자본력에 비해 월등한 수준이어서 미국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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