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이야기’ 사태가 관련 기관간의 ‘책임공방’에서 개인비리 쪽으로 옮아가며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러나 상품권 인증제와 영등위 심의 등을 둘러싼 개인 로비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점차 사태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자칫 특정인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으로 사태가 마무리돼 정작 중요한 근본 원인 해결과 후속 대책 마련이 소홀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는 것. 이번 ‘바다이야기’ 파문의 본질은 과연 무엇이고, 또 앞으로 어떻게하면 제2, 제3의 바다이야기 사태를 원천봉쇄할 수 있을 지 긴급 진단한다.
‘바다이야기’를 둘러싼 온갖 비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이번 사태는 또하나의 ‘게이트’로 확대되느냐의 기로에 섰다. 정부와 여당, 그리고 대통령의 잇따른 ‘사죄’에도 불구, 파문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때마침 정기 국정 감사를 앞두고 있어 이번 사태는 자연스럽게 국감으로 무대를 옮겨 치열한 정치공방과 책임공방으로 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사태의 본질이 호도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아케이드업계 한 관계자는 “초점이 자꾸 정치 논쟁과 개인비리에 맞춰진다면 불씨가 남아 언젠가 되살아나고 말 것”이라며 “마치 의사가 수술대에서 악성 종양은 떼어내지 않은 채 살을 꿰매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비리 해결도 중요하지만, 이같은 희대의 도박기계가 어떻게 전국 방방곡곡을 싹쓸이했으며, 그러는 동안 우리는 또 무엇을 했는지 그 원인을 샅샅히 되짚어봐야 한다”며 “지금 이 시점에서 시급한 것은 재발 방지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 지 고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한명숙 국무총리는 지난 29일 ‘바다이야기’ 파문과 관련, “사행성 게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제도적 허점과 악용 소지에 미리 대비하지 못한 점을 정부를 대표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국민앞에 머리숙여 사과했다.
그로부터 꼭 이틀후인 31일엔 44억원에 달하는 예비비를 투입, 사행성 게임에 대한 집중 단속에 나설 것임을 천명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같은날 노무현대통령도 KBS와의 기자회견에서 정책실패에 대한 사과와 대책 수립을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사후약방문’ 식의 안이한 처방전으로는 도박게임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지 몰라도 불씨는 남을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된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병의 원인을 알아야 치료 방법을 찾아낼 수 있듯 이번 사태의 대안은 먼저 철저한 원인 분석에서 찾아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바다이야기’ 사태의 불씨는 일단 문화부에서 찾아야할 것 같다.
사태 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나오지만, 누가뭐래도 주무부처인데다가 도박게임에 대한 사전 심의에서 사후관리에 이르는 일련의 정책을 입안하는 곳이 다름아닌 문화부이기 때문이다. 도박게임 활성화에 기름 역할을한 상품권과 인증제도 역시 문화부 작품(?)이다. 물론 설령 음지에 있던 사행성게임을 양성화하겠다는 당초 의도가 좋았다손 치더라도 상처가 곪아 터진데 대한 1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도박게임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해 사전에 범 부처적인 종합 관리 및 감시 시스템을 갖춰야함에도 불구, 이를 섣불리 양성화한 것도 본질적인 ‘불씨’를 제공했다. 범 부처 공조는 커녕 부처이기주의와 밥그릇싸움에 치중했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 온갖 비리의 원인을 제공한 불투명한 인·허가 시스템과 일관성없는 정책도 사태를 더욱 확대 재생산 시켰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전 영등위원이었던 A씨는 “사실상 ‘도박칩’ 역할을 한 상품권 발행 규모가 무려 30조원에 달하고, 이로인해 몇몇 지정업체가 수십, 수백억원의 이익을 챙겨가는 동안 누구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우리 사회의 ‘도박 불감증’의 소산물”이라고 했다. 그는 “범부처적인 관리 및 감시시스템만 잘 가동되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감시자 역할만 했더라도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일”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이번 사태의 본질적 원인을 문화부의 정책적 독단과 전 국민적 감시스템의 부재에서 찾는다면, 그 대안을 수립하는 일은 의외로 쉬울 수가 있다. 무엇보다 우선 범부처적인 종합 관리·감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상투적이고 연례행사에 그치는 검·경의 특별 단속만으로는 근원적 해결 방법이 못된다.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사행성 게임을 이땅에서 완전히 축출할 것이 아니라면, 주무부처인 문화부를 축으로 전 부처가 참여하는 상설 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사후관리 역시 대대적인 인력확충을 통해 모든 업소에 대한 상시 관리체제를 구축하고, 불법 개·변조를 통해 사실상의 도박을 조장할 경우 ‘일벌백계’로 다스려야한다.
이같은 대책이 지속적으로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정책 자문과 제도 개선을 위한 민간 전문가 풀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번 ‘바다이야기’ 사태에서 명백히 드러났듯 문화부는 각종 사행성 게임 관련, 대책 입안 과정에서 외부 인력풀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업계 한 관계자는 “IT기술의 접목으로 법이나 제도가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 정부가 새로운 ‘테크노크라트’ 발굴은 물론 민간 전문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조차 인색했던게 사실”이라며 “온갖 편법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도박장의 현실을 감안할때 민간 전문가들을 대거 관련 정책 입안 및 제도 개선에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바다이야기’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정부와 여당이 강력한 근절 대책 수립을 공언하면서 본질이 흐려지고 있는 또하나의 문제가 청소년 대상의 건전한 아케이드게임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크린경마-바다이야기-황금성으로 이어지는 사행성 게임의 잇따른 히트와 PC방의 등장으로 전체 이용가로 분류되는 청소년 대상의 아케이드 게임은 사실상 멸종위기에 빠졌는데, 이번 사태로 결정타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아케이드게임산업은 온라인, 콘솔, 모바일과 함께 게임산업의 4대 축중 하나란 점에서 이번 기회에 재도약을 위한 새로운 육성 패러다임을 짜야한다는 목소리를 높인다. ‘바다이야기류’와 같은 광의의 아케이드로 분류되지만, 본질적으로 뿌리가 다른 데다 세계적으로 봐도 시장성과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 중국이 온라인게임과 함께 건전한 아케이드게임산업 육성에 당과 정부가 합심해 본격적인 정책 지원에 나선 것이 이를 증명한다.
건전한 아케이드게임을 근간으로 노래방, 볼링장 등 모든 레포츠 시설을 상호 연계한 ‘복합게임장’을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복합게임장은 올해 제정된 ‘게임산업진흥법’에 새로 명문화돼있어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바다이야기’같은 도박게임을 밀어내고 오프라인의 새로운 가족단위 놀이문화로 충분히 육성 가능하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아케이드게임 개발업체의 한 관계자는 “현 인프라 아래에선 개발사가 아무리 건전하고 좋은 게임을 만들고 싶어도 손익을 맞추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며 “건전한 아케이드게임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과 배려, 그리고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도를 개선하는 일이 도박게임을 근절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후폭풍을 잠재우고 건전한 아케이드 게임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고사 직전에 내몰린 아케이드산업에 대한 새로운 로드맵과 액션 플랜을 짜는 일에도 우리모두가 지혜를 모아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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