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부터 ‘학술대회 논문 마감을 연기하겠다’는 내용과 ‘학회 행사에 인원이 부족하니 학생들의 참가를 독려해달라’는 학회의 부탁 편지가 부쩍 늘었다. 이공계 학회들이 이처럼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대학원생 감소와 관련 산업으로부터의 소외 그리고 학회의 역할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부터 ‘학술대회 논문 마감 연기’ 요청이 늘어난 것은 일단 대학원생의 급격한 감소에 따른 것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전국 대학원생 수는 2002년을 고비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1999년에 6만6000명이던 이공계 대학원 학생 수는 2002년에 7만1800명으로 최고점에 다다랐다가 2003년부터 감소했다. 2003년에는 7만1600명, 2004년에는 6만9000명 그리고 2005년에는 6만8900명으로 줄었다.
논문을 쓰고 발표할 수 있는 대학원생이 줄어들다 보니 학술대회가 부실하게 운영될 수밖에 없다. 올 봄 모 대학에서 열린 춘계 학술대회장에 갔다가 어이없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넓은 발표장에 발표자와 대학원생 6명이 앉아서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처럼 학술대회가 부실해지는 원인에는 학회의 난립도 있다. 학술진흥재단에 등록된 학회는 무려 2300개(2005년 기준)에 이른다. 우리 4년제 대학과 대학원 교수 수를 대략 5만4000명이라고 볼 때 교수 25명당 1개 학회가 있다고 보면 된다. 현재 등록된 이공계통 학회는 453개(2005년)에 육박하며 신규학회 창립이 계속되고 있다. 자연계와 공학계의 대학원생은 계속 줄고 있지만 학회는 반대로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지역별로 쪼개지고 영역별로 세분화되다 보니 학술대회가 점차 부실해지고 영세화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이공계통 학회 453개 중에서 등록회원 1000명 이상인 학회는 53개에 지나지 않는다.
학회가 부실화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주로 의존하는 산업체의 지원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충성도가 높은 회원의 회비에 기대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의 학회와는 달리 우리 학회는 산업체의 지원금과 찬조에 많은 부분을 의존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학회를 통한 광고활동이나 지원이 별 소득이 없음을 깨닫게 된 기업체가 지원을 줄이면서 운영에 적신호가 켜졌다.
산업화 초기 시절, 학회는 많은 사회적 공헌을 했다. 해외 선진기술을 익힌 교수와 국가 연구소 연구원이 모인 학회는 중요한 정보기술의 보물창고였다. 학회는 선진기술이 발표되고 전수되는 전수기관이자 인력양성 지원기관이었다. 그러나 산업체의 연구능력이 향상되고, 인터넷으로 고급 정보에 접근하기 쉬워지면서 선진기술 전수기능이 약화됐다.
그동안 대한민국 과학발전에 기여한 학회의 공헌은 모두 인정한다. 대학다운 대학이 없던 이 땅에 과학과 기술을 이해시키고, 인력을 길러내는 역할도 했고 연구개발의 성과를 나누는 장으로서 역할도 수행했다. 학회는 아이디어를 발표할 수 있는 지식시장이었다. 기초과학이든 응용공학이든 학회가 없이는 학문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이유기도 했다. 중요한 정보원으로서 학회의 역할이 줄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학회만큼 풍성하고 왕성한 정보원과 지식 시장이 있는 기관이 없다는 점에서 학회의 활성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학회의 주요 구성원인 대학원생이 격감하고 있고 연구원의 의사전달이 이전의 책자와 학술 대외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제 학회의 인수합병(M&A)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점이 됐다.
M&A를 통해 체계적인 회원관리가 가능한 국제적인 규모의 학회를 만들 시점이다. 현재와 같이 마음 맞는 교수 몇명과 대학생만 있으면 설립하던 영세한 학회를 통합해 체계적으로 학술대회와 논문을 관리할 수 있는 대형 학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 하루빨리 M&A를 통해 학회의 생존을 모색하는 일이 필요하다.
◇최종욱 상명대학교 소프트웨어대학 교수 juchoi@s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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