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기업]최준근 한국HP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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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팅 업계에서 한국HP의 일거수 일투족은 항상 세간의 관심사다. 그만큼 HP가 국내 IT시장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회사 규모에서 브랜드 인지도·매출·사업 분야까지 어떤 조건을 내걸어도 HP는 항상 IT 기업 상위 레벨에서 빠지지 않는다. IBM과 함께 자타가 인정하는 국내 대표 글로벌 기업인 셈이다.

 한국HP가 이런 명성에 걸맞게 다시 한번 글로벌 기업의 확실한 ‘맏형’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최준근 한국HP 사장(54)이 ‘글로벌IT 기업 CEO 포럼 의장’으로 정식 추대된 것. 최 사장은 신박제 필립스코리아 전임 회장의 바톤을 이어받아 앞으로 2년 동안 CEO 포럼을 이끌 예정이다. 바깥 활동보다는 HP 내부 사업을 주로 챙겨 ‘은둔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최 사장은 본의 아니게 대외 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됐다.

 “CEO 모임 전날 신박제 회장에게서 전화를 받을 정도로 ‘떠밀려서’ 의장을 맡게 됐어요. 아직 세부 사업 계획이 나오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포럼 성격을 감안해 글로벌 기업의 위상을 높이는 쪽이 주된 방향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침체한 IT경기를 이끄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과 이를 뒷받침할 정책 조언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글로벌 IT기업 CEO 포럼은 지난 2004년 정통부 주도로 정식 출범했다. IT 코리아의 글로벌화를 적극 지원하고 연구 개발(R&D)센터와 투자 유치를 위한 민·관 협력 체제를 구축하자는 배경에서 설립됐다. 회원 사만도 HP·IBM·인텔·선·마이크로소프트과 같은 컴퓨팅 기업에서 퀄컴·텍사스인스트루먼트·시스코·모토로라 등 통신업체, 야후와 같은 인터넷 업체 등 IT 전 분야에 걸쳐 30여개에 이른다.

 “포럼 초기 사업은 주로 투자 유치가 목적이었습니다. 정부와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이 협력해 상당한 실적을 올린 것도 사실입니다. 2기 포럼은 이를 바탕으로 IT를 통한 우리 경제의 고부가가치, 고효율의 선진 경제를 구축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 역점을 둘 계획입니다.”

 최 사장은 “이전 포럼 사업이 주로 R&D 센터를 유치하는 데 무게 중심을 두었다면 지금부터는 유치한 센터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기반 여건을 갖추고 당면 과제인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두 팔을 걷어붙이겠다”며 정통부와 함께 세부 사업을 조율중이라고 말했다.

 “사실 글로벌 혹은 외국 기업의 목소리를 모을 수많은 공식·비공식적인 단체와 모임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운영은 그리 활발하지 못했습니다. CEO포럼은 정부에서도 관심이 높은 만큼 실질적인 글로벌 IT기업의 대표 창구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최 사장은 특히 정부와 글로벌IT기업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국내에 글로벌 기업이 진출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토종과 외국 기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글로벌 기업을 재단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글로벌 기업 역시 국내 IT 산업을 키우는 데 크게 일조했지만, 기여한 만큼 인정을 못 받고 있습니다. 아직도 직·간접적으로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보이지 않는 규제도 있는 게 현실입니다. 국내와 글로벌 기업이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정책 제언과 건의를 통해 올바른 민·관 협력 채널의 모습을 보여 주겠습니다.”

 한국HP가 글로벌 IT기업의 맏형이듯 최준근 사장도 연배·경력 모든 면에서 IT업계의 대선배다. 최 사장을 이야기할 때 빼 놓지 않는 게 ‘장수 CEO’라는 타이틀이다. 최 사장은 지난 77년 삼성에 입사해 84년 삼성과 HP의 합작 법인 ‘삼성HP’로 옮겨 94년 41세의 나이로 글로벌 기업인 한국HP 사장에 올랐다. HP 입사로는 20년, CEO로는 10년을 훌쩍 넘긴 셈이다.

 이 기간 동안 한국HP는 괄목 성장했다. 연평균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지금은 매출 2조 원을 바라보는 기업으로 우뚝 올라섰다. 한국HP는 ‘최준근 작품’이란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최 사장은 국내에 HP가 확실하게 자리를 잡는 데 기여했다.

 10년 넘게 한국HP를 이끈 최 사장은 경영 철학도 그만큼 경륜이 묻어 있다.

 “CEO는 기본적으로 회사 경영 목표와 철학을 이해하고 몸소 실천해야 합니다. 직원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올 수 있도록 기다릴줄 아는 끈기도 필요합니다. 여기에 직원과 고객도 놀랄 정도의 프로페셔널리즘을 갖춰야 합니다.”

 최 사장은 “내가 했던 일이 후임자 혹은 뒷사람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신념이 결국 지금의 HP를 만들었다”며 “남은 재임 기간 동안 최고의 인재가 들어오고 싶어하는 회사, 고객이 가장 좋아하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또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은퇴 후에는 고향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내비쳤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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