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통신·방송융합추진위원회가 마침내 출범했다. 당초 예정보다 두 달여 지연됐지만 더 늦어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통신·방송융합추진위원회는 분권형 실세 총리로 불렸던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통신과 방송계의 숙원을 해결하기 위해 구성을 추진해온 산하 기구였다. 정보통신 강국이면서도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라는 거대 규제 기관의 힘겨루기 때문에 통신·방송 융합이라는 세계적인 추세에 뒤처지고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였다. 하지만 이후 양대 기관과 통신과 방송계의 여전한 견해 차이,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급작스러운 낙마, 3기 방송위원 선임문제 등이 겹치면서 유야무야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마저 불러일으켰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이제라도 통·방융합추진위원회가 출범한 것은 정말 다행이다. 어렵사리 꾸려진 위원회와 국무총리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통신·방송융합의 본질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통·방융합추진위원회의 역할은 기술과 시장에서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는 통신과 방송의 융합을 효과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하루 빨리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러나 위원회가 이 역할에만 매달릴 경우 실패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통·방융합추진위원회의 본연의 역할은 융합서비스를 시장친화적인 환경으로 만드는 것이다. 즉 사업자들이 효율적인 융합서비스를 할 수 있게 하고, 수용자 역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을 가꾸는 것이 위원회의 사명이다.
따지고 보면 통·방융합추진위원회가 만들어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수년간 통신·방송 융합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합의점을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정통부, 방송위원회라는 거대 규제 기관은 각각 통신과 방송의 규제권을 한치도 놓지 않으려 했다. 방송과 통신업계 역시 사활이 걸린 문제라며 목소리를 높여 서로 유리한 주장만 되풀이해 왔다.
추진위원회의 가장 큰 당면과제는 이처럼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문제들에 대해 위원회 내부는 물론이고 관련 기관과 업계를 아우를 수 있는 합의점을 도출해 내는 것이다. 여기서 원칙이 중요하다. 위원회가 원칙없이 흔들릴 경우 자칫 이해집단들에 휘둘려 규제만 양산해낼 공산이 크다. 이미 방송업계는 통신업계가 아무런 제재 없이 IPTV를 제공한다며 규제 강화를 주장하고 있고, 통신업계는 방송위원회의 간섭이 심하다며 불만이다. 초성운 KISDI 통방정책연구실장은 “자칫하면 지상파방송, 통신사업자,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제조업체까지 대상으로 하는 규제기구만 비대해지는 개악을 초래할 수 있다”며 원칙없는 통신·방송융합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사실 추진위원회의 주요 의결 사항으로 꼽히고 있는 통신위원회와 방송위원회 간, 방송법과 통신법의 통폐합 여부는 어쩌면 부차적일 수 있다. 우리보다 앞서 통신·방송융합 관련 규제 기관과 관련 법을 정비한 미국·일본·영국 등의 제도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미국은 규제기구를 연방통신위원회(FCC)로 일원화해 혼선을 줄인 점이 특징이다. FCC는 전통적인 통신·방송 부문 및 IPTV 등 신규 서비스까지 총괄하고 있다. 일본은 통신 분야는 전기통신사업법으로, 방송 분야는 방송법에 따라 각각 규제하는 이원적인 법체계를 적용하고 있지만 규제기구는 총무성으로 일원화했다. 중요한 것은 제도와 환경이 조금씩 다른 이들 나라도 통신·방송융합서비스를 활성화하기 위해 가능한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친화적 환경을 제공하는 데에는 한결같다는 점이다.
통·방융합추진위원회에 거는 기대가 큰 만큼 위원들과 한 총리는 통신·방송융합서비스의 제도화라는 본역의 역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시장친화적 규제 완화로 이를 활성화하는 데 만전을 기해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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