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HD방송` 약속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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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곤 한국전산원장

 

 최근 방송위원회는 지상파 4사에 한 달간 기존 디지털TV 채널(6㎒)에서 3∼6개의 채널을 방송하는 멀티모드 서비스(MMS) 시범방송을 허용했다. 이른바 지상파 방송사도 ‘다채널 방송’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월드컵 특수를 계기로 디지털TV 활성화와 유료방송의 혜택을 못 보는 계층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토록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추진한 것 같다.

 이번 서비스가 시행되자 TV 화질 저하와 화면 깨짐 현상 등에 대해 시청자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 월드컵 경기 시청을 위해 디지털TV를 구입하는 등 선명한 화질을 기대한 시청자는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고선명(HD) 방송을 포기하는 무책임한 처사’라며 인터넷 포털게시판과 영상동호회 등을 통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케이블TV방송협회와 케이블기술인연합회도 정통부와 방송위를 상대로 “기술 발달로 늘어난 지상파채널을 기존 지상파 사업자에게만 허용하는 것은 특혜”라며 행정소송을 검토중이다.

 내가 보기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지난 2000년 12월 방송위는 ‘지상파TV 방송의 디지털 전환을 위한 종합계획’에서 지상파 디지털은 궁극적으로 HD TV를 지향하며 HD TV 외의 나머지 여유대역은 부가서비스로 활용키로 했다. 이후 디지털TV 전송방식을 놓고 4년에 걸친 논쟁을 한 끝에 2004년 7월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내 미국방식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미국방식을 채택한 것은 풀 HD 방식의 기술적 우수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화질이 열화된 간이형 HD급에다 다채널까지 한다고 하니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도대체 어떤 경로로 이 같은 정책이 결정됐는지, 왜 정책이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다. 국민에게 적절한 설명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적어도 이 정도의 정책변경을 하려면 시청자와 사전에 충분한 논의를 하고 이들의 동의를 받았어야 했다. 방송위에서는 시험방송이라고는 하지만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왜 실제 방송중인 채널을 가지고, 게다가 월드컵으로 온 국민이 축제 분위기로 열광하는 이때 시험방송을 해야 하는가.

 많은 국민이 정부가 미국방식의 풀 HD 서비스를 할 것으로 믿고 수상기를 구입했다. MMS 본방송을 강행한다면 디지털 TV를 구입한 130만 이상의 가구가 수상기를 수리받아야 한다. 이 불편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멀티 채널 운영을 위해 정보전송량을 줄이면 화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당초 국민에게 약속했던 HD 방송이 아니다. 유럽방식에서 적용하는 간이형 HD방송에 불과하다. HD와 표준화질(SD)의 차이는 피카소의 그림을 원본으로 보는 것과 복사본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엄청난 차이다. 12가지 물감과 24가지 물감으로 그린 작품이 색감에서 같을 리 없다. HD TV의 도입은 고감도·고감각을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무궁한 심미안을 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흑백TV에서 컬러TV로 바뀌면서 우리는 새로운 색감의 문화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시청자 불만이 집중 제기되자 방송위는 지난 16일 MMS를 축소 시행키로 결정했다. 하지만 HD방송을 갈망하고 있는 많은 국민의 기대를 만족시켜 줄 만한 수준은 아니다. HD TV를 통해 국민 개개인의 색감과 미적 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면 문화예술 분야는 물론이고 국가경쟁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방송위는 HD방송을 갈망하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주기 바란다.

 ckkim@nc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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