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시키는 일이나 잘 해야지요. 눈치 보는 게 하루 이틀 된 일도 아닌데요.”
중소 디스플레이 장비 전문업체 모 임원이 내뱉은 자조 섞인 말이다. 이 회사는 몇몇 대기업과 공동으로 기술 개발을 약속하고 그게 주주와 투자자에게 좋은 정보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을 공개하는 건 불가능했다. 몇몇 대기업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자신들과의 공동 기술개발 착수 사실 자체를 당분간 공개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임원은 엄명을 어겼다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불을 보듯 뻔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주요 고객인 대기업과 약속을 했지만 입맛은 씁쓸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지 자괴감도 들었다고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역학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같은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이 임원은 중소기업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대기업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푸념한다. 특히 실적을 공개할 때가 되면 실적이 좋으냐 나쁘냐보다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주요 고객인 대기업으로부터 혹시 ‘장사 잘했네’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가 하락 압력으로 이어지고 장기적으로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주주와 투자자는 당연 뒷전일 수밖에 없다. 이제 막 시작한 기술개발이 소기의 성과를 도출한다 할지라도 결과는 뻔하다는 걸 이 임원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예견하고 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스포트라이트는 대기업의 몫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불만을 제기할 수도 없다. 기술개발 과정에서 습득한 그 나름의 노하우를 활용하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다른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시도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회사의 말 못하는 시름과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마땅히 하소연할 데도 없다. 상생이 사회적 화두로 등장하고 모범적인 상생 모델이 확산되고 있지만 이 회사가 체감하는 대기업과의 상생 온도는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이 같은 사례가 이 회사만 느끼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유일무이한 것은 아닐 듯싶다.
디지털산업부·김원배기자@전자신문, adolf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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