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속으로 떠나는 여행]#26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아저씨는 주인공 피터 파커에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말한다.

이 말을 그대로 따르기 위함인지, 수퍼 파워 미국은 전세계 모든 나라를 가리지 않고 ‘세계의 경찰’이라며 활동하고 있지만(그 이면에 꿍꿍이가 있건 없건) 미국처럼 거대한 국가도 아니고, 강대한 권력을 갖고 있지도 않은 일개인에 있어 ‘큰 책임’을 짊어지고 따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스파이더맨’으로서 책임을 지키기 위해서 피터 파커는 강의에 빠지기 일쑤인가 하면 아르바이트에서 잘리고, 심지어는 사랑하는 그녀마저 놓치기에 이르니까.

‘수퍼맨’을 비롯해 모든 초인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감춰야 하는 것은 물론, 이중 생활 속에 실제로는 많은 오해를 사기도 한다. 대개는 밤에 활동하는 그들의 특성상 피로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며, 백만장자인 ‘배트맨’조차 이중 생활의 고뇌 속에 괴로워하고 사랑하는 상대를 번번히 떠나 보내야 하니 더 할 필요가 있을까?

사람들은 초인들의 활약 앞에 환호하고 기뻐하지만, 초인이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그대로 엄청난 비난과 욕설이 쏟아 붓는다.

‘인크레더블스’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조한 미스터 인크레더블은 그 사람을 다치게 했다며 소송을 당하고, 결국 초인으로서 활동 자체가 금지되고 만다. 단지 그로서는 ‘큰 책임’을 완수하고자 했을 뿐인데 말이다.“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하지만, 큰 책임을 따르기 위해 슈퍼 영웅들은 많은 희생을 치르며 고생해야 한다. 영웅이란 찬사는 받을지 몰라도 결코 이익은 되지 못하는 그런 것이다. “옳은 일을 위해서는 꿈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 바로 수퍼 영웅들의 운명이니까.

생각해 보자. 여러분이 세상을 구했다. 그런데 자동차가 부서졌으니 물어내라는 말이나 듣고, 밤 중에 악당과 싸우고 있는데 아기가 깼다고 욕이나 먹는다면…. 가끔은 그런 세상 맘대로 부셔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난 제다이가 되어 우주 평화를 지키겠어요”라던 아나킨 소년이 검은 투구를 쓴 공포의 대왕으로 변신하고 한 때 위대한 현자로 활약했던 갠달프 아저씨가 매그니토로 변신(^^)해 세상을 뒤집으려 하는 것처럼 힘으로 세상을 마음대로 하려는 그들을 바로 우리는 수퍼 악당이라 부른다.

모든 도구는 양날의 검과 같아, 초인의 힘 역시 좋게도 나쁘게도 쓸 수 있다. ‘바벨 2세’의 악당 요미와 바벨 2세의 경우가 바로 대표적인 사례. 두 사람은 모두 바벨탑(을 세운 외계인)의 피를 이은 후손으로서 강력한 초능력을 갖고 있지만, 바벨 2세가 요미로부터 지구를 구하려는 것과 달리, 요미는 그 힘과 지식을 이용해 세계를 정복하려고 한다(아쉽게도(?) 요미의 힘이 항상 바벨 2세보다 부족해서 엉망진창으로 깨지기는 하지만…).

슈퍼 악당. 그것은 어떤 면에서 진정한 힘의 표출이며, 일반인으로부터 받는 차별에 대한 반감에서 탄생되기도 한다. 인종 차별로 인해 전쟁이 발생하듯, 힘을 가진 자(혹은 우리와 다른 자)에 대한 차별이 결국 분노를 이끌어 내고 수퍼 영웅을 악당으로 변모시키곤 하는 것이다.‘인크레더블스’의 마지막에서 갑자기 지하에서 튀어나온 악당 언더마이너는 “내 밑에는 아무도 없고 모두가 나를 깔본다”며 파괴를 선언하고, 영화 ‘엑스맨 2’에서 본래 자비우스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던 존(파이로)은, 불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다는 욕망과 가족에게 조차 차별 받는 상황에 분노해 결국 매그니토 진영으로 떠나 버리고 만다(그와 그의 친구였던 바비(아이스맨)의 대결은 곧 개봉할 ‘엑스맨 3’의 중심 내용이기도 하다).

콤플렉스, 혹은 차별은 반감을 가져온다는 것은 ‘로보트 태권V’의 악당 카프 박사나, ‘배트맨 2’의 악당 펭귄을 봐도 느낄 수 있다. 그야말로 무섭거나 나쁘다는 생각보다는 ‘불쌍하다는 느낌’ 밖에는 들지 않는 이들은, 외모라는 문제 하나로 인해 비뚤어져 버리고 마니까 말이다.

물론, 불황으로 실직한 이들이 모여서 세상에 복수하겠다며 초인을 만들어 마을을 점령하려는 조그마한 악의 집단도 존재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수퍼 악당이 모두 차별이나 콤플렉스에 의해서 탄생하는 것일까? 물론, ‘엑스맨’을 비롯해 많은 작품에 그런 연출이 준비돼 있지만, 최근엔 의외로 많은 작품에서 악당의 정당성을 선언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배트맨’ 시리즈의 최신작, ‘배트맨 비긴즈’에 등장하는 ‘라스 알굴’. 배트맨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존재인데다, 로마 이전부터 시작된 거대한 조직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수퍼 악당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그는 타락한 고담시를 징벌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스파이더맨 2’에서 핵융합을 연구하다 실험 실패로 인해 ‘닥터 옥(터퍼스)’으로 변해 버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은행을 터는 옥타비우스 박사나, 역시 실험 실패로 냉동 인간이 된 채 자신의 아내를 살리기 위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배트맨 4 : 배트맨과 로빈’의 미스터 프리즈 역시 그런 존재.

어떤 점에서 불량 청소년이라 할 수 있는 차별 받은 초인과는 달리, 나름대로 어떤 이상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좀 더 멋진 존재들이지만, 결국 하는 일은 매 한가지. 역시 범죄가 돼 버리는 것이 문제일까?그런 점에서 보면, ‘수퍼맨 2’의 수퍼 악당들은 매우 순진하고 순수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차별을 당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뭔가 이상을 가진 것도 아니다. 단지 ‘파괴 그 자체’, ‘사악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

그런 만큼 그들은 강하고 위대하다. 불프로그의 게임 ‘던젼 키퍼’에 등장하는 마왕처럼(물론 ‘수퍼맨 2’의 악당들은 상당히 바보 같았지만)말이다.

그런 점에서 비록 초인은 아닐지라도 진정한 의미에서 수퍼 악당들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수퍼맨’ 시리즈의 영원한 숙적 렉스 루터. ‘배트맨’의 가장 막강한 적수 조커, 그리고 ‘스파이더맨’ 최강의 악당 중 하나라 불릴 수 있는 그린 고블린, 그리고 바벨 2세의 적인 요미 같은 이들이 아닐까?

(물론, 그린 고블린은 초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그들은 세상에 삐쳐서 악당이 된 것도 아니고, 뭔가 정의를 추구하겠다며 악을 행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순수하게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와 만족을 위하여 모든 실력을 다하여 수퍼 영웅들과 대결한다.)

승리를 위해서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어떤 비겁한 수단도, 그리고 어떤 사악한 방법도 그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악 그 자체이며, 슈퍼 영웅에 대치되는 존재들이기에….

그리고, 그들이 존재하기에 슈퍼 영웅은 더욱 더 부각된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다스 베이더가 없다면, 루크의 모험담이 전혀 빛을 발할 수 없듯. 빛은 그림자가 있기에 더욱 더 뚜렷하게 그 광채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둠(악당)은 깊고 어두울수록(순수하고 강력할수록?) 매력을 더해가며 그만큼 많은 팬을 이끌게 된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존재 의미이자,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SF 칼럼리스트. 게임아카데미에서 SF 소재론을 강의 중이며, 띵 소프트에서 스토리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스페이스 판타지(http:www.joysf.com)란 팬 페이지로 유명하다.

선이 있으면 악이 있는 법. 수퍼 악당들의 활약이 지금 시작된다.

매그니토. 한때 정의를 추구하던 그는 핍박 받는 초인들을 위하여 일어섰다.

그 순진하던 소년이 이렇게 변해 버리는 불합리한 세계. 부수고 싶지 않나?

닥터 옥. JJ의 네이밍 센스를 찬사할만한 이름이지만 슬픈 악당이기도 하다.

‘수퍼맨 2’. 한때 사랑을 위해 힘을 포기하기도 했던 수퍼맨은 세악당들에 맞서게 된다.

언더마이너의 등장.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 그와의 대결은 게임으로 즐길 수 있다.

‘태권 V’의 악역 카프 박사. 끝까지 불쌍하다는 느낌 뿐이었기에 악역으로서의 매력이 부족했다.

BF 단이 하는 일은 결국 파괴 아니오? -자이언트 로보 속의 공명 군사는 말한다.

미스터 프리즈.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나오긴 했지만, 작품엔 별 도움이 안 됐다.

라스알굴. 스승이라 생각했던 그는 강력한 적수였다.

실업자 집단으로 이루어진 악의 조직, 발키르. 모양은 초라해도 꽤 그럴듯한 악의 조직이다. ‘레벨 저스티스’.

악은 옳은 것이다! 진정한 악당이라면 이 정도 각오는 가져야지.

케빈 스페이시에 의해서 리메이크된 렉스 루터. 진정한 악당의 면모를 보여줄까?

스파이더맨 최강의 숙적 그린 고블린. 그는 3편에서 다시 등장한다.

‘형사 가제트’의 닥터 크로. 마지막까지 얼굴을 보이지 않았던 그야 말로 진정한 악당의 귀감이다.

수퍼 악당. 그들이 없다면, 영웅은 결코 부각될 수 없다.

<전홍식기자 pyodogi@sfw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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