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열전]이상네트웍스 "B2B업계의 지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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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2B 업계 이마트를 꿈꾼다.’

 B2B 분야의 유일한 상장기업, 전자보증의 개척자, 기존 시장에 편입되기보다는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기업. 이상네트웍스(대표 조원표) 앞에 흔히 붙는 수식어다. 철강 B2B로 시작해 목재·제지 등 각종 원자재 B2B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이상네트웍스는 설립 7년 만에 B2B 업계 리더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 설립된 이상네트웍스는 지난해 매출 137억원, 순익 17억원을 거둬들였다. B2B 분야에서 중요한 지표인 거래규모는 지난해 2조1000억원을 넘어서 업계 최대다. B2B 분야에서는 아이마켓·서브원 등과 같은 주도기업이 있지만 소모성자재(MRO)로 출발한데다 대기업 계열사를 주주사로 확보하고 있어 이상네트웍스와는 출발이 다르다.

 특히 2000년 전후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업종 B2B들이 닷컴 붐이 꺼지면서 대부분 사업을 접거나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상네트웍스의 모델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B2B 업체로는 처음으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 B2B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물론 이상네트웍스의 사업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사업 초기 비즈니스 모델 오류로 적자가 지속됐고 직원의 60%를 정리해고하는 아픔도 겪었다.

 조원표 사장은 회고한다. “2000년 설립 당시 글로벌 B2B라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출발했습니다. 50억원을 투입해 해외에 두 군데나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13개국어 동시 번역 시스템을 갖추는 등 글로벌 비즈니스의 모양새를 갖추었죠. 하지만 중대한 오류가 있었습니다. 결제시스템이 없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난센스죠” 결국 이듬해 3월 글로벌 사업을 포기하고 국내 B2B로 방향을 선회했다.

 설립 후 2년 동안 7억원의 적자를 본 이상네트웍스는 사무실을 시화공단으로 옮기고 32명의 직원을 13명으로 줄이는 뼈아픈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하지만 역전의 기회는 찾아왔다. 지금도 B2B 거래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신용보증기금의 전자보증 모델을 만들어낸 것이다. 2001년 당시 조 사장은 옥션의 성공이 신용카드로 인해 가능했다고 판단, B2B에서도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나섰고 그렇게 생겨난 것이 전자보증이다. 특히 거래규모가 크고 외상·후불이 관행인 기업 간 거래에서 전자보증이 없었다면 아직도 B2B e마켓의 성공은 요원했을지도 모른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전자보증이 마련됐지만 대기업도 아닌 벤처기업을 믿고 거래하겠다는 철강 업체는 없었다. 하지만 대기업 공급사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 조 사장은 1년 동안 INI스틸을 찾아다닌 끝에 승낙을 얻어냈다. 그때가 2002년 9월이다. 대기업 공급사를 확보하니 제품을 사겠다는 수요 업체도 금방 불어났으며 이는 다시 공급 업체 확대로 이어졌다. 선순환 구조가 갖춰진 것이다. 이상네트웍스는 2002년 바로 흑자 전환했다.

 이상네트웍스는 올해 270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올 4분기에는 분기 매출 100억원 달성이라는 목표도 세워놓았다.

 금속으로 시작해 목재·제지 등으로 거래 품목을 늘리고 있으며 공급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단순 중개 서비스에서 탈피해 부가가치가 높은 공동구매로 수익구조 내실을 다지고 있다. 금속가구조합 등 다양한 분야의 단체·커뮤니티와 협력 체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도 이를 위해서다. 최근에는 산자부 인큐베이터e무역상사와 KOTRA의 e벤더 사업자로 지정되는 등 사업 초기 고배를 마셨던 글로벌 비즈니스도 새롭게 모색하고 있다.

 이상네트웍스의 미래 비전은 B2B 분야의 이마트가 되는 것이다. 철강으로 시작했지만 수요 기반이 갖춰지면서 목재·제지 등으로 자연스럽게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금은 원자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미래에는 B2B 분야의 모든 물품을 취급하는 이마트 같은 기업이 되려고 합니다.”

 꿈을 향한 조 사장의 도전이 시작됐다.

◆3無정책

 이상네트웍스에는 세 가지 없는 것이 있다. 남녀 차별이 없고, 학력 차별이 없고, 나이 차별이 없다. 군대 다녀온 것도 안 쳐준다. 대학원 나온 것도 안 먹힌다. 차별이 하나둘씩 없어지기는 하지만 이 세 가지를 모두 없앤 기업은 드물다. 해당자는 좀 억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 사장의 원칙은 확고하다. “군대 갔다 오고 대학원 나왔으면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습니까. 실력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들어와서 능력으로 인정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평가만 공정하면 됩니다.”

 그래서 이상네트웍스에는 젊은 팀장과 나이든 팀원, 고속 승진한 여직원 등을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다. 스물 아홉살인 박지인 부장은 3무 정책이 효과를 발휘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대신 평가 툴을 공정하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있는 평가가 돼야만 조직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달부터는 아침 7시 출근제를 시행한다. 대신 무조건 저녁 6시 퇴근이다. 저녁 7시에는 아예 셔터를 내려버린다. 어차피 밤 늦게까지 야근할 바에는 차라리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아침 시간에 능률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집에 절대 일거리를 갖고 가지 못할 뿐더러 다른 기업과의 미팅이나 공동작업도 절대 못하게 한다.

 조 사장이 직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은 헝그리 정신과 파이팅이다. 벤처기업이 대기업과 다르듯이 벤처기업 직원도 대기업 직원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 그렇다고 직원을 마른 행주 짜듯이 쥐어짜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벤처기업은 똘똘 뭉쳐도 성공하기 힘든데 하물며 그렇지 않으면 생존이 가능하겠냐”며 “투명한 경영, 공정한 평가, 가족을 대하는 듯한 세심한 배려 등이 조직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끄는 사람들

 이상네트웍스의 ‘선장’ 격인 조원표 사장(39)의 이력은 독특하다. 철강 전문가, IT 전문가도 아니다. 2000년 회사 설립 이전까지 기자로 살았다. 97년에는 한국기자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동아일보에서 ‘잘나가는’ 기자 중 하나였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 체제에서는 시대를 이끌어가는 주역은 기업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전직을 감행했다. 그래서인지 조 사장은 ‘성을 쌓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는 명언을 가슴에 담고 산다. 유비쿼터스 시대 벤처기업의 나아갈 길도 이 문구에 있음을 절감하고 있다.

 조 사장은 며칠 전 늦둥이 딸을 낳았다. 지난해 코스닥 상장 기념으로 가진 아이가 태어났으니 복덩이 중에 복덩이다. 아이디어 뱅크 조 사장의 에너지가 또 무한대로 충전될 모양이다.

 조 사장과 함께 이상네트웍스를 이끄는 쌍두마차는 COO 역을 맡고 있는 김봉수 상무(39). 한양대 재료공학과 석사 출신으로 이상네트웍스의 대주주인 황금에스티에서 철강 영업으로 잔뼈가 굵은 철강 전문가다. 여기에다 IT도 제대로 아는 전문가다. 98년 IT 개발 기술을 독학해 철강 업계를 잘 알면서도 프로그램 개발 능력까지 갖춘 만능맨이다.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신윤호 박사(36)는 이상네트웍스의 차세대 비즈니스 모델과 신기술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포항공대에서 학부를 마치고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딴 철강 전문가. 최근에는 웹2.0에 기반을 둔 B2B e마켓플레이스 신기술을 준비중이다.

 이상네트웍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EC사업부를 맡고 있는 박지인 부장(29). 박 부장은 B2B 업계에서도 유명한 인물이 됐다. 여성 인력이 드문 철강 업계에서 수많은 남성에게 전자상거래를 전파하고 다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대학을 졸업한 2000년에 이상네트웍스에 입사해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가장 빠르게 승진한 사례다.

 IT사업부를 맡고 있는 김기민 부장은 미국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유학파. 이상네트웍스의 IT 개발과 모든 프로젝트의 구현을 담당하고 있다. CTO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김 부장은 조용하지만 꼼꼼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조인혜기자@전자신문, ih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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