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포럼]한국 애니메이션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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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오랫동안 세계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해외 주요 업체들의 안정적인 제작기지 역할을 수행해 왔다. 혹자는 오랜 하도급으로 국내 창작이 퇴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는 애니메이션 산업의 구조적 특징과 국내 업계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잘못된 지적이다.

 어떠한 산업이든 시장 적응은 기업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애니메이션은 전통적으로 대규모 자본이 투자되는 고위험 고수익(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형 산업이다. 뛰어난 제작기술을 보유했더라도 투자 손실을 감당할 수 없으면 참여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세계 애니메이션 산업은 거대 자본을 가진 미국 메이저 배급사가 주도해왔고 현재 TV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세계 최강의 지위에 오른 일본도 수십 년간 열악한 제작환경에서 적자를 모면하기 위해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유럽은 정부·공공 기금이 애니메이션 산업의 주요 재원으로 활용된다. 이들보다 자본력이 취약한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가 생존하기 위한 선택은 하도급 제작 영역밖에 없었다. 반면에 이에 힘입어 애니메이션은 90년대 후반까지 한국 영상 콘텐츠 분야 수출의 90% 이상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제 한국 애니메이션은 하도급에서 창작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창작은 배급과 다양한 콘텐츠 비즈니스로 수익을 창출해야 하므로 제작 인력 외에도 기획·마케팅 분야 전문가가 필요하다. 한국은 이 같은 인력을 양성할 기회가 없었던 탓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지만 최근 세계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3∼4년 전만 해도 해외시장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은 소위 ‘아니메(anime)’로 불리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아류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세계 최대 프로그램 마켓 ‘밉’에서 이제 한국관은 가장 많은 해외 바이어가 찾는 곳 중 하나다. 어느새 해외 메이저들도 한국을 하도급 제작공장이 아닌 공동제작 혹은 프로그램을 구매하기 위한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열악한 국내 산업환경을 생각해보면 이 같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성장은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일본은 연간 신규 애니메이션 타이틀을 TV용(30분물 26부작 기준) 170여편, 극장용 30여편, 비디오용(OVA) 200편 이상을 쏟아낸다. 이런 일본도 9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유럽과 미국 시장에 본격 진출할 수 있었다.

 반면에 한국은 2∼3년 전까지만 해도 1년에 10편 미만의 TV용 애니메이션과 1∼2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왔다. 그나마 2005년 국산 애니메이션 총량제가 시행되면서 제작물량이 증가했지만 연간 20여 타이틀이 제작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일본과는 비교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을 감안할 때 한국 애니메이션의 선전은 기대 이상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종합적인 경쟁력은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2위며, 전 세계에서도 10위권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중국과 인도가 국가 차원에서 애니메이션 산업 투자를 늘리며 한국으로부터 세계 애니메이션 공장의 지위를 넘겨받았지만 창작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는 아직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 제작부문의 우수한 인적 자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그동안 가장 취약한 부문으로 지적돼 왔던 기획과 마케팅 노하우도 축적하고 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이 세계 애니메이션 산업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쌓여 있다.

 무엇보다 시장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문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 이러한 인력은 풍부한 현장 경험을 통해 양성되기에 우선 국내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콘텐츠를 구매하려는 바이어에게 콘텐츠 제작 국가에서의 사업성과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렇듯 국내산업 기반이 좀더 강화된다면 몇년 안에 한국은 세계 애니메이션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 애니메이션 선진국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은 90년대 후반까지 지켜왔던 문화 콘텐츠 수출 주역으로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최종일 아이코닉스엔터테인먼트 대표 jichoi@iconix.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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