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속으로 떠나는 여행]#23

언제부터인가 매주 토요일 밤이면 많은 이들이 TV를 보고 한숨을 쉬곤 한다. 바로 로또라고 불리는 작은 종이 쪽지 때문이다. 45개 숫자 중 6개를 맞추는 지극히 간단한 일이지만, 이로 인해 사람들은 울고 웃고, 심지어 싸움까지 벌이기도 한다.

“로또 번호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곤 하지만, 이 세상 어떤 점쟁이도 로또 번호를 맞추는 데는 신통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가능한 상상 과학의 세계. 미래를 내다보는 일 쯤은 바로 타임머신이라는 도구만 있다면 아무 문제도 아니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날아가듯 시간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면? ‘타임머신’은 바로 이런 상상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수 천 년 전의 과거에서 수 십 만 년 뒤의 미래에 이르기까지. 공룡 시대에서 우주 시대까지 우리가 원하는 언제로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기계. 만일 그런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우주전쟁’, ‘투명인간’ 등으로 유명한 H.G 웰즈의 소설, ‘타임머신’에서 주인공은 수 만 년 뒤의 미래로 날아가 문명이 멸망한 후의 세계를 체험하지만, 사실 타임머신이 있을 때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지나간 시간. 바로 과거로의 여행이다.

이를테면, 과거로 날아가 소크라테스를 만나거나 세종대왕을 알현할 수도 있고, 공룡과 친구가 되거나 맘모스를 사냥하는 것이다. 게다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과거로 여행하는 일은 그 자체로 지금 현재…, 다시 말해 역사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웨스트우드의 걸작 게임 ‘적색경보’를 생각해 보자. 이 작품의 오프닝에서 과거로 날아간 아인슈타인은 히틀러를 만나 다른 세계로 보내 버린다. 그 결과, 히틀러의 제3제국은 세워지지 않았다. 당연히 2차대전도 일어나지 않고 아우슈비츠에서 수백만의 유태인이 학살되는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타임머신의 기능은 이렇듯 놀라운 효과를 낳는다. 세계의 운명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나라, 한 마을, 혹은 개인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결과 말이다.

가령, 우산 없이 나갔는데 비가 내린다면 어떻게 할까? 역시 타임머신 만 있다면 어떤 걱정도 필요없다. 바로 외출하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과거의 자기 가방에 우산을 넣어두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로 돌아가서 가방을 열면, 오호 이런 일이, 원래 없었던 우산이 갑자기 나타난다! 상당히 기묘한 체험이 되겠지만, 타임머신이 있다면 이런 일은 일상 다반사다.

영화 ‘백투더퓨처’를 생각해 보자. 주인공 마티의 가족은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 직장에서 쫓겨난 형은 백수 생활을 하고 있고, 옛날부터 왕따였던 아버지는 학창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히던 악동에게 지금도 놀림 받고 있다. 어두침침하고 난장판인 집안. 그러나, 천재 과학자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마티의 과거 여행은 그 상황을 완전히 바꿔 놓고 만다.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뀐 아버지는 마을의 명사가 되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SF 소설을 출간하고, 마치 오늘 청소한 것처럼 깨끗한 집에선 큰 회사에 다니는 형이 양복을 빼입고 밖으로 걸어 나온다. 아버지를 괴롭히던 악동이 하인처럼 일하는가 하면, 차고에는 마티 자신이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자동차가 선물로 도착해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꿈과 같은 현실이 아닌가?하지만, 역사를 바꾸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결과 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백투더퓨처’만 해도 주인공의 어머니가 과거로 간 주인공에게 반하는 바람에 주인공은 소멸해 버릴 위기에 처하게 되고, 한번은 미래에서 가져온 ‘스포츠 연감’이 악동의 손에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도박으로 갑부가 된 악동에 의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해 버린다.

‘적색경보’에서 아인슈타인은 히틀러를 없애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려 하지만, 그 대신 스탈린의 붉은 군대가 세상을 지배하고, 그렇게 바뀐 세계는 결국 인류 최초의 살인자라는 카인(케인)이 득세하고 타이베리안이라는 외계의 물질에 의해 오염된 세계가 돼버린다.

자신에게 좋은 결과를 낳기 위해 역사를 바꾸려는 것은 때때로 더 큰 불행을 가져오기도 한다. 영화 ‘나비효과’에서 잃어버린 기억 속의 과거를 바꾼 결과 미래는 더욱 더 끔찍한 상황으로 변해 버리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영화 ‘프리퀀시’에서도 과거와 연락하게 된 주인공이 아버지를 구해내는데 성공하지만, 그로 인해 원래 죽었어야 할 연쇄살인범이 살아나고 어머니가 살해돼 미래는 더욱 암울하게 바뀌고 만다).

그리고 한편으론 역사를 바꾸려다 도리어 그 역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미래 세계를 지배하는 컴퓨터는 저항군의 지도자인 존 코너의 어머니인 사라 코너를 제거하기 위해 암살 로봇 터미네이터를 보낸다. 그러나, 이 터미네이터를 막기 위해 보내진 보디가드가 그녀와 맺어지게 되고, 그 결과 존 코너가 태어나는 상황은 “어떤 상황에서도 미래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듯 해 인상적이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이때 과거에 남겨진 터미네이터의 부품에서 인류를 지배하는 컴퓨터가 탄생한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닭과 달걀. 어느 쪽이 먼저인지를 도저히 알 수 없는 복잡한 구조라고 해야 할까?

(그에 반해 속편에서는 새로 보내진 터미네이터의 도움을 받아 부품을 파괴함으로서 컴퓨터의 인류 지배는 수포로 돌아가는 듯 했지만, 3편에서 다시금 컴퓨터가 세상을 지배함으로서 일시적으로 바뀌었던 역사는 다시 원상 복귀되고 만다).역사가 바뀌건 아니건, ‘시간 여행’은 그 자체로 세상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북경에 나비가 날면, 뉴욕에 태풍이 오듯’ 아주 작은 변화에서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SF 세계에는 ‘시간 여행자’를 감시하고 체포하는 ‘시간 경찰’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영화 ‘타임캅’ 등에서 등장하는 ‘시간 경찰’들은 과거로 가서 역사를 바꾸려 하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혹은 생물을 밀렵하는 등 ‘역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폴 앤더슨의 소설 ‘타임 패트롤’은 이런 시간 경찰의 활약상을 매우 다채롭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시간 여행 방법을 발견한 미래 인류에 의해 발탁된 그들은, 역사를 바꾸려는 범죄자를 찾아 제거하고 역사를 원상 복귀시킨다.

그런데, 이 작품 속에 상당히 흥미 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타임 패트롤의 활동이 단순히 범죄자를 체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때로는 미래인의 명령에 따라 역사를 ‘미래인의 취향에 맞게’ 바꾸기도 한다는 점이다(실례로, 이 작품에서는 원나라 때 몽고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지만, 타임패트롤이 그들의 배를 파괴함으로서 결국 원나라가 아메리카에 원정대를 보내 정복하는 사건은 발생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한 명의 시간 여행자가 우리의 운명을 마음대로 바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쩌면 타임 패트롤이 그들과 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아는가, 사실은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지만 누군가에 의해 신라가 통일한 것으로 바뀌었을지….SF 칼럼리스트. 게임아카데미에서 SF 소재론을 강의 중이며, 띵 소프트에서 스토리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스페이스 판타지(http:www.joysf.com)란 팬 페이지로 유명하다.

<그림설명>

- 타임머신을 타고 즐거운 여행.

- 타임머신. 미래의 세계로 모험을 떠난다.

- 과거의 자신을 만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 서부시대에서 펼쳐지는 모험극. 타임머신 여행은 정말로 신나게 전개된다.

- 완전히 바뀐 세계. 그것이 시간 여행의 결과라는 것을 누가 알까?

- 붉은 군대의 진격. 스탈린은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

- 타임머신을 악용한 악당은 갑부가 돼 세상에 군림한다.

- 하나를 바꾸면 모든 게 바뀐다? 역사를 바꾸려는 행동은 모두 나쁜 결과를 낳는다.

- ‘터미네이터’ 액션 영화로 알려져 있지만, 완성도 높은 SF 작품이기도 하다.

- 조심하라. 누군가 역사를 바꾸려 할지 모른다.

- 시간 경찰. 그들은 아무도 모르게 사건을 해결한다.

- 타임 패트롤. 시간 여행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 과거를 좋게 바꾸려다 더 나쁜 역사를 낳을 수도 있다.

- 나폴레옹의 연설을 직접 듣고 싶다고? 타임머신에게 맡겨라!

- 이순신 영웅 만들기? 역사는 이렇게 바뀌어 간다.

<전홍식기자 pyodogi@sfw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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