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모래바람 뚫고 `IT오아시스`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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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 파예탁 상가에서 삼성 제품을 구경하고 있는 이란 여성들 및 상가 전경.

  오만 무스카트 공항에서 자동차로 10여분을 달리다보면 사막과 산악이 뒤엉킨 한가운데 예상치 못한 첨단 건물들을 만나게 된다. 오만이 IT산업 육성을 위해 전략적으로 조성하고 있는 IT집적단지인 KOM(Knowledge Oasis Muscat). KOM은 지멘스·시스코·NCR·오라클화웨이 등 35개 글로벌 기업의 콜센터 및 R&D센터는 물론 2개의 IT대학과 벤처기업 인큐베이팅 센터인 TKM이 들어선 오만 IT의 요람이다.

2003년 9월 문을 연 KOM에는 현재까지 약 1800만달러가 투입됐으며 앞으로 5400만달러를 추가 투자해 KOM7까지 7개 이상의 첨단 빌딩이 조성될 예정이다. 무하마드 하메드 KOM 총괄디렉터는 “KOM은 각종 연구개발 및 마케팅, 시장 조사 등 IT기반 역할이 모두 집적된 곳”이라며 “앞으로 KOM을 국가 IT의 핵심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만에 KOM이 있다면 이집트에는 스마트빌리지가 있다. 카이로 시내 중심가에서 20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스마트빌리지는 2003년부터 조성하고 있는 IT집적단지다. 2007년말까지 450만 에이커에 총 67개 사무동을 완공한다는 목표로 건설 중인 스마트빌리지에는 현재 HP·MS·알카텔·에릭슨·지멘스 등 다국적 기업이 10여개 입주해 있다. 이집트 정보통신부도 아예 이곳으로 관사를 옮겼다. 지금까지 1750만달러가 투입됐으며 앞으로 3억달러 가량을 추가 투자해 중동 최대 IT집적 단지로 만든다는 것이 이집트 정부의 야심찬 계획이다.

KOM과 스마트빌리지는 중동 국가의 IT산업 육성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수십년동안 석유와 가스 등 자원산업으로 먹고 살았던 중동 국가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산업구조 고도화, 고용창출의 주요 수단으로 IT를 꼽고 있다.

◇이란, 과거의 영광 IT로 재현한다=이란은 7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우리보다 잘사는 풍족한 나라였으나 79년 회교혁명, 이란-이라크 전쟁, 미국의 경제제재 등으로 20년 이상 답보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의 1인당 GNP가 2만달러를 넘을 정도로 성장한 반면 이란의 1인당 GNP는 2500달러대에 머무르고 있다. 석유, 가스 등 자원은 풍부하지만 사회보장을 위한 막대한 지출, 높은 청년 실업률, 빈부격차 등으로 전형적인 후진국 경제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란은 이 같은 경제정체의 해법을 IT에서 찾고 있다. IT진흥기관 세나레이의 파르비즈 나세리 CEO는 “2000년대 초부터 IT산업 육성에 대한 이란 정부의 의지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인터넷, SW, 통신 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지원책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 정부는 SW개발업체에는 5만달러까지 창업자금을 무상 제공하고 R&D에는 200만달러까지 무상 지원하는 파격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이 같은 지원책에 따라 이란에는 약 2000여개의 SW업체가 활동중이다.

이란의 컴퓨터 보급률은 올해 10%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인터넷 사용자 650만명, 휴대폰 사용자 850만명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란 정부는 제4차 경제개발계획이 종료되는 2010년에는 휴대폰 가입자 2500만명, 인터넷 가입자를 2000만명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워 성장 잠재성이 크다. 테헤란에서 삼성전자의 휴대폰 영업을 총괄하는 안정희 과장은 “현재 가입률 10%에 그치고 있는 이란 시장은 매년 30%씩 성장하고 있으며 향후 5년은 상황이 더 좋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특히 정치 상황 변동에 따라 폭발적인 수요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올해부터 노키아를 따돌리고 안정적인 1위로 올라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란은 특히 전국 곳곳에 광케이블망을 깔아 통신·네트워크 인프라면에서는 중동 국가 가운데 으뜸이다. 이란 정보통신부는 지금까지 약 7억3000만달러를 쏟아부어 56Mbps급 광케이블망을 곳곳에 구축했으며 중동 최대 인공위성 통신센터를 테헤란 북쪽 35Km 지점에 둬 48개국과 직접 연결, 182개국과 간접연결하고 있다.

이 밖에도 이란은 2008년까지 전자정부 프로젝트를 완료한다는 계획 아래 행정망 인터넷화, 시민 포털사이트 구축, 사무자동화 등의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이집트, 2012년에는 IT선진국으로=이집트 관청들이 모여있는 카이로 헬리오폴리스에 위치한 행정개발부. 차도르를 쓴 여직원과 남자 직원이 컴퓨터로 작업하고, 서류를 들고 이리저리 다니며 쉴새없이 바삐 움직인다. 이집트 전자정부 업무를 총괄하는 행정개발부는 2001년 e정부 기본계획이 나온 이후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부처 가운데 하나이다. 집무실에서 만난 아흐맛 다르위시 장관은 “이집트는 2011년까지 정보화 10년 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고 있다”며 “오라클·MS·HP 등 다국적 기업이 이미 e정부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집트 정부는 전자정부 프로젝트를 비롯해 연간 4억달러를 쓰는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육성에도 나서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이집트 정보화 비전을 △인프라 구축 △e액세스 △연구조사 및 VC자본 육성 △능력 개발 △법·제도 개선 △산업화 △ICT애플리케이션 △국제·지역간 협력 8개 카테고리와 32개 과제로 나눠 육성하고 있다. 여기에는 프리인터넷, IT클럽과 같은 일반 시민들을 위한 서비스부터 전자정부, e비즈니스, e헬스 등과 같은 애플리케이션 개발과 확산까지 포괄하고 있다.

가나 호와이디 정보통신부 대외협력담당자는 “정보통신부 나지프 장관이 지난 2004년 수상으로 올라선 것은 IT산업에 대한 이집트 정부의 시각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며 “2012년이 되면 우리는 중동의 IT강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이집트는 현재 휴대폰 사용자수가 1400만명에 이르며 인터넷 사용자도 2004년 이후 계속 늘어 300만명에 이르고 있다. 인터넷 접속에서는 아직 전화선 모뎀 위주지만 ADSL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지난 5년 동안 카이로에서 비즈니스를 총괄한 이종범 삼성전자 지사장은 “지난 89년 지점을 설립한 이래 연 평균 20% 가까이 성장하고 있다”며 “폭발적으로 크는 시장은 아니지만 7000만 인구와 정부의 강력한 IT산업 의지 등으로 잠재성은 크다”고 내다봤다.

◇ 오만, 중동·아프리카의 IT거점으로=“두바이, 두바이 하지만 인프라나 여러 면에서 거품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오만은 인력의 우수성과 중동과 아프리카를 잇는 지정학적 여건 등으로 걸프국가연합(GCC)의 외교주도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지난해 3월 부임해 1년 동안 오만을 겪어본 이상민 주오만대사는 한국에 오만의 잠재적 가치가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며 오만을 새롭게 인식할 것을 주문했다.

이 대사의 말대로 오만은 예상과 달리 IT에 대한 비전, 자금, 실행인력 등 3박자를 갖추고 ‘디지털 오만’ 구축에 나서고 있다. 경제개발 비전인 ‘비전2020’과 가트너에 의뢰해 2002년 수립한 ‘e오만’ 전략은 모든 오만 IT정책의 근간이 되고 있다.

오만은 국가경제부를 중심으로 국가 IT전략위원회를 구성했고 ITTS가 실행기관으로써 책임을 맡는다. 실리콘, 천연가스 등 다른 자원이 풍부하지만 석유매장량이 30년 분량밖에 남아있지 않고 국가 핵심산업을 오만인이 꾸려가는 오만화(Omanization)를 위해서는 IT산업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확고하다.

살림 술탄 ITTS원장은 “오만은 젊은층 인구비율이 75%를 넘는다. 고용률을 높이고 산업을 고도화하기 위해서는 첨단 IT산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만은 정부 네트워크, 보안아키텍처, e정부 게이트웨이, e페이먼트 게이트웨이, 정부 재해복구(DR)센터 등 5대 인프라 과제와 원스톱 샵, 교육 포털, 국가기록시스템 등 6대 e서비스 구현에 나서고 있다.

물론 오만 자체만 보면 먹을 것이 없는 시장이다. 오만 인구는 불과 230만명. PC나 인터넷 보급률은 20% 안팎으로 낮은 편이고 휴대폰 시장은 55%가 넘는 가입률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시야를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으로 넓히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오만에서 생산된 제품은 사우디·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카타르·바레인 등 GCC 6개국에 무관세 수출이 가능하다. 또 아랍어, 영어 등 3∼4개를 구사하는 우수한 인력들이 많아 아랍어 제품 개발이나 마케팅 등에서도 이점이 많다.

무하마드 KOM 총괄 디렉터는 “KOM에 입주한 지멘스 등 다국적 기업은 오만을 거점으로 중동·아프리카 진출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도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KOM에 입주한 싱가포르 기업인 인포컴의 관계자는 오만을 중심으로 중동지역에서 게임 퍼블리싱 사업을 구상하고 있으며 한국산 게임을 아랍어로 현지 서비스하는 사업모델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인혜기자@전자신문, ihcho@

◆테헤란 파예탁 商街

지난달 29일 땅거미가 질 무렵 테헤란 시내의 파예탁 상가. 최근 신흥 전자상가로 떠오르고 있는 이 건물에는 모니터·휴대폰·MP3P와 같은 IT제품을 사러 나온 젊은 사람들로 활기가 가득하다. 20대 직장여성인 파르누시와 소하도 연신 진열대를 들여다보며 뭔가를 열심히 궁리한다. “삼성 MP3P를 구매하려구요. 집에 삼성 휴대폰과 DVD 콤보제품이 있는데 가격과 품질 모두 아주 만족스러워요.” 파르누시의 말에 친구인 소하도 “LG DVD플레이어를 갖고 있는데 수명이 길어서 좋다”고 맞장구친다.

그녀들에게 제품을 보여주는 매장 매니저 파크누시는 “5년 전부터 한국제품을 취급하고 있는데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귀띔한다. 이 매장에서 삼성 모니터와 MP3P가 하루에 100여대씩 팔려나가고 있는데 1년 전에 비해 두 배나 늘어난 것이다.

이란에서는 한국산 가전·컴퓨터 기기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모니터는 90% 이상 삼성·LG가 장악하고 있고 휴대폰은 삼성이 노키아에 이어 2위를 달린다. 격차가 점점 줄고 있어 올해는 노키아를 따라잡는 것이 목표라는 게 삼성전자 이란사무소 관계자의 말이다.

한국산 IT제품의 인기는 비단 이란뿐만 아니라 다른 중동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집트에서도 삼성 모니터는 점유율 43%를 자랑하고 있고 오만에서는 LG에어컨이 최고의 인기상품이자 고급상품이다.

이종범 삼성전자 이집트 지사장은 “해마다 20∼30%씩 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두바이에서 2개월째 생활하고 있는 박승진 피보텍 두바이 법인장은 “한국산 IT제품은 두바이를 거점으로 전 중동지역으로 뻗어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중동 지역 나라마다 특성이 있는 만큼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란에서는 저가 제품이 인기를 못 끈다. 중국 하이얼이나 화웨이가 유일하게 고전하는 곳이 이란이다. 과거 잘살았던 경험 때문에 고급·대형제품을 선호하는 게 이란 시장의 특성이라는 것이 배창헌 테헤란 무역관장의 말이다. 이집트는 또 다르다. 브랜드는 좋아하지만 철저하게 가격 위주다. 중국 제품이 석권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계약을 해도 다시 가격을 깎는 것이 관행일 정도로 이집트에서 비즈니스 하는 것은 만만하지 않다.

그러나 한번 관계를 맺으면 의리있게 밀어주는 것도 이집트 상거래의 특성이다. 오만은 그야말로 정교한 비즈니스만이 통한다. 우리나라 IT가 앞섰다고 대충 한물 간 기술이나 제품으로 성과를 보려고 하면 100전100패 한다는 것이 현지인들의 조언이다.

조인혜기자@전자신문, ih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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