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이 문화유산에 새 숨결을 불어넣는다.’
최근 국내 최대인 12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막을 내린 영화 ‘왕의 남자’는 또 다른 화제거리를 낳았다. 조선시대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왕의 남자는 당시 궁궐이었던 경복궁를 주무대로 해 경복궁 촬영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이 영화 촬영을 위한 장소 임대를 불허해 제작은 난관에 봉착했다. 그렇지만 경복궁을 배경으로 한 씬은 ‘왕의남자’의 명장면으로 꼽혔다. 그렇다면 왕의 남자의 경복궁 장면은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을까.
왕의 남자가 경복궁을 영화속에 담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경복궁을 가상공간에 구현한 `디지털 한양`과 ‘조선 후기 궁궐 의례와 공간’이라는 디지털콘텐츠가 있었기 때문이다.
왕의 남자 제작진이 활용한 디지털콘텐츠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2002년부터 500억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추진한 ‘문화원형 디지털화’ 사업을 통해 디지털로 새 생명을 얻은 문화 유산 중 일부이다.
문화원형 디지털화 사업은 우리나라 전통문화 원형을 디지털 기술로 되살려 문화콘텐츠의 창작 소재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왕의 남자 이외에도 문화원형 디지털화 사업에 의해 만들어진 디지털 문화재는 활용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한국특별전’에서는 우리 옛 책의 표지문양에 쓰인 ‘능화문양’을 이용해 한국 부스를 장식,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또 조선시대 검안기록과 ‘증수무원록’ 등 법의학 관련자료를 집대성한 자료는 MBC 드라마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을 만들어냈다.
한산대첩의 학익진 모형, 고구려 아차산성 보루, 안학궁 전경과 개화기 신여성 교육 등의 그래픽 자료 26건은 국사편찬위원회가 만든 고등학교 국정 국사교과서 부록에 수록됐다.
이처럼 최근 유무형 문화재를 보존 및 복원하는 디지털 문화유산·원형기술이 각광을 받고 있다. 디지털 문화유산·원형기술은 컴퓨터그래픽, 3차원 가상현실, 홀로그램 등과 같은 미디어를 동원하여 문화재를 본래 모습대로 디지털로 보존하거나 복원하는 기술을 말한다. 이 기술은 문화공간내에 존재하는 유형의 문화재와 문화주체의 경험과 기억속에 존재하는 무형의 문화재를 디지털을 통해 가시화된 원형으로 재창조하게 된다. 문화재를 보존·복원해야 하는 것은 문화재가 인류사의 연속성을 유지시켜주는 살아있는 자료이고 영구히 보존해야 할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문화재는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유실되거나 훼손되기 쉽다. 때문에 훼손될 수 있는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훼손·유실된 문화유산을 가상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디지털 보존 및 복원기술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기존 아날로그 복식 재현의 경우 복원한 복식원형을 훼손없이 보관하기 어렵지만 디지털로 복원한 복식은 복식보관의 부담을 덜어준다. 또한 디지털 문화유산·원형기술은 단순한 보존 및 복원에 그치지 않고 현대 사회의 소비자 니즈 및 취향에 적합한 형태의 문화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옛 문화원형을 3D로 제작할 경우 3D애니메이션의 제작시 모델링에 적용하는 등 문화콘텐츠로서 산업적 활용도가 높다. 문화콘텐츠 제작업체 입장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디지털 문화원형 및 유산을 활용함으로써 제작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잇점이 있다. 만약 왕의 남자가 전부 세트를 제작하거나 기존 디지털콘텐츠를 활용하지 않고 처음부터 3D로 세트를 제작, 영화를 촬영했을 경우 엄청난 제작비가 들었을 것이다.
특히 최근 디지털 보존과 복원은 단순히 아카이빙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문화유산이 존재했던 현장 속으로 되돌아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통로가 되고 있다. 전통문화의 원형이 디지털로 재탄생하면서 우리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디지털 문화 유산·원형기술은 과거의 유물과 사회 환경을 완벽히 재현해 가볼 수 없는 곳도 갈 수 있게 만드는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영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3차원 고고학(Virtual Archaeology)’이란 용어로 디지털 복원이 진행되어 왔으며 대영 박물관에서 파르테논 신전을 재현했다. 일본에서는 당나라 승려 간진이 만든 도쇼다이지(唐招提寺)를 재현해내는 등 세계 각국이 자국의 문화재 혹은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데 한창 열을 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0년 9월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경주를 디지털로 복원한 ‘통일신라 서라벌’을 선보여 세계 디지털 복원역사에 한 획을 그은 바 있다. 또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2000년부터 종합정보시스템 구축의 일환으로 보관 유물에 대한 3D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원본 훼손시 저장된 데이터에 따라 손쉽게 복원할 수 있을 뿐더러 가상서비스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에 문화유산의 디지털화 작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의 경우 원본 유물의 훼손을 고려해 관람시간이나 요일의 제한을 두고 개방하고 있다. 공기·빛·열에 의한 원본의 파손을 우려해 관람을 제한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유물을 레이저로 투사해 각 부분의 수치나 굴곡데이터를 추출, 디지털콘텐츠화한다면 완벽한 입체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유물과 관련한 세부정보를 추가하여 콘텐츠화한다면 문화적 정보가 축적되고 이에 대한 가치도 훨씬 높아지게 된다. 유물을 디지털 정보로 바꾸고 세계의 박물관을 초고속 회선으로 연결해 하나의 가상 박물관처럼 융합한다면 시공간을 넘나드는 입체적인 박물관을 만들 수 있다.
이처럼 문화유산·원형의 디지털화는 우리 문화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함과 동시에 각기 발전해 왔던 문화분야 교류와 활성화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해외의 주요 문화재의 디지털 보존 및 복원시장에 진출할 수 있어 디지털 문화유산·원형기술은 더욱 각광을 받게 될 전망이다.
권상희기자@전자신문, shkwon@
◆디지털 문화유산은 여기서 찾으세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운영하고 있는 문화콘텐츠닷컴(http://www.culturecontent.com)은 ‘문화원형 디지털화사업’를 통해 만들어진 디지털화된 문화유산·문화원형을 전시,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개발된 141개 과제가 의식주·건축·의례/신앙·교통/통신·군사/외교 등 9개 분야로 나누어져 정리되어 있다. 2D 그래픽이나 3D애니메이션, 플래시나 동영상으로 만들어놓은 파일을 구매할 수 있으며 무료로 활용할 수 있는 파일도 있다.총 40만 건의 파일이 구축되어 있는데 방송영상·애니메이션·만화 캐릭터·디자인 등 문화산업 전반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여러가지 제약으로 인해 그동안 문화산업에 많이 활용되지 못한 점을 감안, 적극적인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문화원형 창작소재를 타 장르로 확산하기 위한 ‘문화원형 창작소재 활용 문화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은 그 일환이다. 또 포털사이트 다음과 제휴를 맺고 ‘문화원형백과사전’(http://culturedic.daum.net/dictionary_main.asp)에 문화원형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등 일반인에게 관련 콘텐츠 알리기에 적극적이다.
◆디지털 문화유산·원형 기술 동향
문화유산·원형의 디지털화 분야에서는 고정밀 기술들이 개발되어 측정의 생산성과 정밀도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비접촉 측정기술로부터 얻어진 초기의 문화원형 포인트 데이터를 3차원 형상 모델 데이터로 변환, 합성 및 편집하기 위한 기술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선도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또 무형 문화재를 위한 동작 측정기술은 현재 자기장을 이용하거나 두대 이상의 카메라 영상을 이용해 관절의 3차원 좌표를 추출하는 기술이 상용화되어 있다.
마커를 사용하지 않고도 동작의 3차원 정보가 측정가능한 마커프리 기술 및 관절이 없는 유연체의 3차원 동작도 측정이 가능한 기술도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또 복원에 필요한 재질 분석, 연대 측정, 제작 기법 분석 등 인문학적, 사회학적 지식 및 체계적 연구와 경험이 디지털화, 지식베이스로 구축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인문·사회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정성적 표현을 정량화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문화원형의 데이터베이스로부터 문화원형의 특징요소 추출, 모델링 검색 등 차세대 디지털박물관 구축사업에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응용기술 개발도 일본 등 선진국에서 본격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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