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여성프로게이머 설땅이 없다

‘e스포츠판은 남성들만의 전유물인가?’ e스포츠가 태동한 지 6년이 넘었음에도 불구, 여성 프로게이머들이 설땅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이렇다할 리그조차 없는 데다, 남성 선수들과 적지않은 실력차를 드러내며 이벤트 대회를 제외하곤 본선에서 여성 선수들을 보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

특히 대표적인 ‘스타크래프트’가 e스포츠를 대표하는 종목임에도 여성 프로게이머들이 갈곳을 잃고 무대를 속속 떠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전문가들은 “e스포츠 활성화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여성 리그 활성화의 묘안을 찾아야할 때”라고 강조한다.

  

“남성의 전유물이라던 복싱 조차 여자 대회가 붐업을 이루고 있는 상황인데, e스포츠에 변변한 여성리그 하나 없다는게 말이 됩니까?” 대부분의 오프라인 스포츠는 여성리그가 남성리그 못지않기 인기를 누리며 활성화돼있다.

구기종목은 물론 최근엔 각종 격투기에도 여성들의 참여가 활발하다. 미셀위·소렌스탐 등 골프에선 성대결도 자주 열려 화제를 모은다. 게임과 자주 비교되는 바둑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리그가 남자 프로들 중심으로 이루어져있지만, 여자들이 당당히 남성들과 자웅을 겨루고 있으며, 여성리그도 활성화돼 있다.

물론 e스포츠계에도 지난 2004년 성대결이 연출돼 주목을 받은바 있다. 임요환 이후 제 2의 e스포츠 아이콘으로 떠오를 것으로 기대되는 SOUL의 서지수가 여성 프로게이머로는 처음으로 MBC게임 마이너리그 본선에 진출해 박신영과 성대결을 벌인 것. 아쉽게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e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성대결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여기서 한발자욱도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은 ‘이벤트용’으로 전락했을뿐 e스포츠협회 공인 대회에 발을 붙이기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여성들의 e스포츠계 진출의 물꼬를 트지 못한 채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11개 프로게임팀에 소속된 선수도 이종미(KOR), 김영미(삼성), 서지수(SOUL) 등 단 3명에 불과하다. 한국e스포츠협회에 등록된 여성 선수도 전체 144명 중 단 4명뿐이다. 프로게이머를 목표로 수 천, 수 만명이 베틀넷을 전전하고 있는 남성들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 8명 리그 구성 조차 힘들어

현재 여성 스타크래프트 게임대회는 겜TV가 주최하는 스카이라이프배 여성부 스타리그가 유일하다. 이 리그는 지난 해 4차례 연속으로 개최돼 여성프로게이머들에게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지난 해 마지막 대회에 참가한 여성프로게이머는 고작 8명. e스포츠의 여성 선수층이 엷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오는 5월 계획하고 있는 새로운 시즌에는 더욱 사정이 악화될 전망이다. 겜TV측은 “8명은 돼야 리그를 가질 수 있는데, 8강을 확보하는 것 조차 불투명해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 여성리그를 캐치프라이즈로 내건 겜TV측이 이번 대회를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이는 여성 프로게이머들의 선수층이 지나치게 엷은 것에서 기인한다. 최근 여성게이머가 늘면서 ‘스타크래프트’ 부문에서도 여성 유저들이 급증하고 있지만, 스타크래프트 리그에 진입하는 여성들은 태부족이다. 자연히 경쟁이 덜 치열하다보니 경기력이 떨어지고, 남성과의 실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렇다할 리그가 없고 메이저 방송이 여성리그를 외면하다보니, 선수들이 부족해 리그가 활성화가 안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 e스포츠계를 떠나는 선수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새로 e스포츠계에 진입하기는 커녕 있는 선수들도 e스포츠계를 떠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게임이 직업인 프로게이머임에도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김영미 선수는 “불과 1~ 2년 사이에 연봉이 공개 되고 e스포츠의 발전에 따른 대기업의 참여로 전체적인 선수들의 대우와 수익이 늘었지만, 이전 활동 당시에는 대부분 대회 상금이나 이벤트 수입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정기적인 수익은 되지 못했던것이 사실이다”며 “이 때문에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게임을 포기하는 여성 프로게이머들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종미 선수도 “여성 프로게이머들은 일정한 수입이 없어 많은 여성 게이머들이 e스포츠계에서 멀어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에따라 금전적인 문제로 겸업을 하고 있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김영미선수는 e스포츠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엠게임에서 게임마스터로 활동하며 게임의 전반적인 기획 및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이종미선수는 상지영서대학에서 게임프로듀싱에 관한 강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게임에 관련된 일을 하는 선수는 그나마 다행인 편. 금전적인 문제로 전혀 다른 분야로 직종으로 전환, e스포츠에서 완전히 멀어진 선수들도 많다. 그렇지 않아도 두텁지 못한 여성선수층을 더욱 엷어지고 있는 것이다.

 

# 1차 대안은 여성리그 활성화

전문가들은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1차적인 방안으로 여성 리그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영미 선수는 “점점 여성 리그가 줄어 기회가 줄고 역할이 하나 둘 없어질 때마다 여성프로게이머의 수도 줄고 남아있는 선수들도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며 “이러한 것들이 연습 부진 등으로 이어져 남녀 성별간의 격차는 더욱 심화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선, 여성 프로게이머들은 스스로에게 더욱 매질을 가해야 할 것이며, 방송사 역시 많은 관심으로 도움을 주어야만 그 성장의 폭이 커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SOUL의 서지수 선수도 “여성 대회의 활성화가 중요하다”면서도 “여성 프로게이머들도 환경 탓만 하지 말고 좀 더 노력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KOR의 이종미 선수는 “여성리그가 활성화돼 좋은 실력을 가진 여성프로게이머들이 게임을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여성 선수들 스스로도 남자들과의 실력차를 줄이기 위한 피나는 연습을 해야한다는 지적도 많다. 서지수 선수는 “실력차이는 연습량의 정도에서 나오는 것일 뿐”이라며 “꾸준한 연습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칸의 김영미 선수도 “실력 차는 미묘한 것으로 결과는 언제든지 뒤 빠뀔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여성선수들이 활동할 대회가 없어지면 더욱 벌어질 것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모와 실력을 갖춘 여성 선수들이 많아 리그가 활성화되면 임요환 못지않은 여자 스타가 탄생할 가능성이 없지않다”면서 “정체기에 접어든 e스포츠를 재도약 시키는 차원에서라도 여성리그 활성화에 여성 프로게이머 양성을 위해 e스포츠계 전체가 대안을 짜내야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만약 여성 프로리그가 활성화 된다면 어떤 선수가 가장 큰 인기를 끌까. 이 질문에 대다수 사람들은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서지수 선수를 꼽을 것이다.

‘남성 프로게임계에 임요환이 있다면, 여자 프로게임계는 서지수가 있다.’ 서지수는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2년 국내 유일의 여성 스타크래프트 대회인 겜TV ‘여성 스타리그’ 1차전에 출전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뛰어난 외모로 데뷔와 동시에 유명세를 탄 서지수 선수는 2003년 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남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e스포츠에 거센 ‘여풍’을 일으키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외모만큼이나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2005년 열렸던 겜TV ‘여성 스타리그’를 4차례 모두 휩쓸기도 했다. 아쉽게 몇번 패배의 쓴잔을 마셨지만 이제는 꿈의 무대가 된 프로리그에서도 모습을 드러내며 명실공히 최고 여성프로게이머로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서지수는 요즘 여성 리그보다 개인리그 메이저 대회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당당히 실력으로 ‘성차별’을 극복하겠다는 것. 다른 여성프로게이머들이 ‘투잡’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서지수는 오로지 프로게이머로서의 역할에 올인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나는 아직 20대 초반”이라며 “임요환 선수처럼 앞으로도 꾸준히 게임만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올 해 프로리그에서도 팀내 주전선수가 되고 싶다”는 당찬 포부도 밝혔다.

<김명근기자 dionys@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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