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우리 귀에 익숙하게 들려오는 단어 중 하나가 ‘컨버전스’다. 컨버전스(convergence)란 사전적으로 집합점이란 뜻을 가지며, 한 점으로 모인다는 의미가 확장돼 ‘융합’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IT 업계에서도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형태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디지털 컨버전스가 대세다.
디지털 컨버전스 상품 중에서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휴대전화다. 처음에 단순 통화 기능으로 시작한 휴대전화는 디지털 카메라·MP3P·게임기·PDP 기능이 더해져 새로운 상품으로 거듭났고, 이제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통한 DMB폰으로 ‘손 안의 TV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더욱이 초고속 휴대인터넷시스템인 와이브로(WiBro)가 상용화되면 지금보다 더 진화된 형태의 단말기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컨버전스 상품 개발이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은 좀더 새롭고 편리한 것, 더욱 다양한 것을 추구하는 세계 시장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의 가전전시회 ‘2006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의 최대 화두 역시 디지털 ‘컨버전스’였다.
특히 우리나라는 디지털 TV와 이동통신 기기 부문에서 강세를 보이며 디지털 한류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대형 LCD TV에 MP3P 등의 미디어 플레이어를 접목한 디지털 TV, 다양한 기능을 탑재한 위성·지상파 DMB폰 등은 높은 기술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우리 기업의 대표적인 주력 상품이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디지털 디바이스(하드웨어)와 콘텐츠(소프트웨어)의 만남을 통한 진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우수한 하드웨어는 양질의 소프트웨어가 뒷받침해 줄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IT 컨버전스는 서로 다른 분야의 ‘융합’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민족 전통의 비빔밥 문화와 매우 유사하다. 비빔밥은 밥과 콩나물·시금치·도라지·고사리 등 형형색색의 나물과 황포묵·쇠고기·계란 등이 한데 어우러져 시각을 자극하는데다, 여러 가지 영양소가 어우러져 영양 면에서도 손색이 없다. 또 대표적인 한 그릇 음식으로 편리성에서도 으뜸이다. 이같이 비빔밥에는 편리함과 다양함을 동시에 추구하는 우리 선조의 지혜가 담겨 있다.
그동안 전통 음식 비빔밥에도 많은 진화가 있었다. 우선 디지털 디바이스에 견줄 수 있는 비빔밥을 담은 용기부터 살펴보면 놋그릇에 담긴 전통비빔밥, 뜨끈한 돌솥에 담은 돌솥비빔밥, 서민의 정서가 깃든 양푼이 비빔밥, 바쁜 현대인의 생활방식을 반영한 1회 용기 냉동 즉석비빔밥과 지퍼백에 담긴 동결건조 즉석비빔밥이 탄생했다. 또 콘텐츠에 견줄 수 있는 비빔밥의 내용물도 전통 재료로 만든 전주비빔밥을 선두로 콩나물비빔밥, 열무비빔밥, 웰빙 열풍을 타고 등장한 새싹비빔밥, 해초비빔밥 등 주재료에 따라 다양한 비빔밥이 속속 등장해 왔다.
이렇게 꾸준한 진화를 통해 비빔밥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꼭 한번 맛보고 싶은 음식으로 손꼽히며 외국으로 진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것에 미뤄 짐작건데, 현재 개발해 내고 있는 다양한 디지털 디바이스와 콘텐츠에 녹아 있는 아이디어와 기술력의 근원은 우리 선조로부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지혜에서 출발한 듯하다.
최근 미국 등 선진국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컨버전스는 우리에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아 도약할 수 있는 기회와, 변화에 뒤떨어져 도태될 수 있는 위기를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편리함과 다양함 그리고 지혜가 깃든 전통 음식 비빔밥의 진화처럼 꾸준히 기술 개발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나라는 IT 컨버전스 분야에서도 세계에서 일등국가가 될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송관호 한국인터넷진흥원장 khsong@ni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