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다행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1시간 남짓 떨어진 써니 베일 넷앱 본사. 만나는 직원마다 날씨 이야기로 인사를 건넸다. 넷앱 방문 전 며칠 동안 우울한 날씨가 연속이었기 때문. 다행히 방문 수 일 동안 넷앱 본사와 조립 공장· 데이터센터를 다녀 왔지만 언제 먹구름이 끼었냐는 듯이 청명한 하늘 표정이 막 활기를 되찾은 실리콘밸리를 닮았다. 넷앱은 실리콘밸리 IT거품에서 붕괴, 부활로 이르는지난 5년의 축소판과 같은 기업이다.
◇ 악몽의 ‘2001년’ = 넷앱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2001년을 얘기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2001년 넷앱 매출은 10억 달러에서 8억 달러로 줄었고 순익은 무려 7400만 달러에서 300만 달러로 폭락했다. “2000년 넷앱은 전년 대비 2배 이상(124%)의 고도성장을 달성했습니다. 그 다음해는 손익 분기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 로드 매튜 마케팅 담당 이사는 2001년 변화는 너무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넷앱은 네트워크에 스토리지를 붙여 파일을 공유하는 NAS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때마침 인터넷 광풍이 일면서 NAS 제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그러니 닷컴 버블 붕괴는 곧 이 시장을 독식해 온 넷앱의 매출 감소를 의미했다.
위기에 몰린 넷앱의 선택은 뜻밖에 신규 시장이었다. “당시 논란이 많았습니만, 넷앱은 공격 경영을 선택했습니다” 댄 워먼호벤 CEO의 말이다.
이더넷 망이 아닌 전용 네트워크(파이버 채널)로 스토리지를 공유하는 SAN 시장에 뛰어들기로 한 것. 여기에다 에너지· 금융·보험· 제조· 생명공학으로 고객도 다변화했다. IBM· 오라클· SAP 등 굴지의 회사와 제휴를 맺고 중국· 한국· 동유럽· 러시아 등으로 해외 물량도 늘렸다. 매튜 이사는 “2001년은 넷앱 최대의 위기의 순간이자, 오늘의 넷앱을 있게 한 ‘터닝 포인트’가 였다”고 말했다.
◇ 성장에 따른 ‘행복한 비명’ = 닷컴 버블 붕괴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온 실리콘밸리는 다시 활기가 넘쳐났다. 터널을 함께 빠져나온 넷앱은 실리콘밸리가 시스템 분야에서 건져 올린 하나의 ‘진주’였다. 비슷한 시기에 창업한 업체 대부분 상장을 못했거나 제대로 빛을 보기 전에 합병됐다. SAN과 NAS 비율은 1대 2에서 2대 1로 역전됐고 대형 기업의 매출 비중도 50%에 이른다. 위기의 순간 선택한 공격 경영이 통했던 것.
이제 넷앱은 성장을 고민하고 있다. 올해만 1500명의 신입 사원을 채용할 계획이다. 입사 2년 미만의 신입 사원 비중이 전체 인력의 30%에 육박할 정도다. 본사 공장도 바쁘게 돌아간다. 공장 안내를 맡은 비말 파텔 씨는 “이곳과 스코틀랜드 외에 아마도 상하이에도 새로 공장을 지을 예정”이라며 “제품 조립과 공급 주기도 더 줄이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매출이 늘면서 마케팅 인력도 크게 늘고 있다. 폴 올브라이트 글로벌 마케팅 부문 수석 부사장으로 1분기 내내 전세계 지사를 돌면서 넷앱이 대대적인 마케팅 공세에 나설 것임을 알렸다. 넷앱 기술 가치를 알리는 장기 캠페인도 많아졌고 온라인을 활용한 e마케팅도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각국 지사 규모도 확대할 계획이다. 올브라이트 부사장은 “한국 지사의 경우 3년 내 3배 이상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 최고의 기술 미학, ‘단순함’ = 넷앱이 창업부터 지금까지 버리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단순함(Simplicity)이라는 기술 철학이다. 넷앱에서 기술력은 가장 중요한 척도다. 창업자이자 기술 부사장 데이브 힛츠와 제임스 라우가 네트워크에 연결하기만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스토리지를 만들자고 착안한 것부터 SAN· NAS· iSCSI 등 다양한 네트워크 스토리지를 자유자재로 구현할 수 있도록 한 싱글 아키텍처까지 모두 단순함의 미덕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온도 따위에 신경 쓸 필요도 없이 꾹 누르기만 하면 나오는 ‘토스트’ 기기처럼 말이다.(토스트(T.O.A.S.T)는 넷앱의 신입 사원 오리엔테이션 명이기도 하다.) 단순할수록 고장도 적다. 넷앱 본사 고객 서비스 담당 직원은 “시스템 잔고장이 거의 없어 넷앱 명령어를 잊어버렸다는 고객 사연이 접수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기술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넷앱 기술 담당자는 무엇을 주문할까.
줄리아 신 마케팅 담당은 데이브 힛츠 부사장의 블로그를 보여줬다. 힛츠 부사장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서 ‘닥터 데스(Doctor Death)’라는 음료수 탄생 비화를 소개했다.(http://blogs.netapp.com/dave/ThinkingOutLoud/2006/02/17/A-Doctor-Death-Moment.html)
여러 명의 실수와 우연으로 ‘얼룩진’ 닥터 데스의 탄생 비화를 통해 그는 “혁신과 발명은 실수와 우연의 과정까지 모두 포함한다” 라며 “중요한 것은 정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허물없는 브레인 스토밍과 팀워크”라고 강조했다.
써니베일(미국)=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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