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면 중간고사가 실시된다. 학생들은 그동안 연마한 실력을 발휘할 정당한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학문적 저술의 정당한 평가와 관련해 가끔 내 머리를 아프게 하는 고민거리가 하나 있다. 우리네 대학 주변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불법복사본 홍수에서 언제쯤이나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하는 점이다.
지난달 문화관광부가 저작권보호센터·대한출판문화협회·한국복사전송권관리센터와 함께 3주 동안 전국 대학가 및 주변 복사업소를 대상으로 합동단속을 실시한 결과 총 156개 불법복사업소가 적발됐고 1060종, 6482부의 불법복사물이 수거됐다. 수거된 불법복사물은 대부분 신학기를 맞아 수업에 채택된 대학교재로, 외서가 779부(약 12%)를 차지했다. 신학기 대학가의 출판물 불법복사 실태는 여전히 심각하다.
심지어 이번 합동단속에 참여한 저작권보호센터 관계자는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불법복사업체가 기업화·대규모화되고 불법복사물 유통 및 연락망을 갖추는 등 조직적으로 불법복사가 자행되고 있어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 같은 불법복사물 유통은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어야 마땅한 불법적 관행이다. 출판계는 그동안 지속적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대학가 불법복사가 오히려 해마다 늘어나고 있어 대학교재 출판사 대부분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물론 불법복사 행위 주체는 실제로 복사를 하는 업자들이지만 그들에게만 잘못을 돌릴 수도 없다. 만약 불법적인 복사를 요청하거나 구입하는 고객이 없다면 이러한 관행은 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위법행위에 동참하는 고객이 우리의 소중한 학생들이라는 사실이다. 학생들은 복사하는 것이 원본보다 가격이 싸다는 아주 단순한 동기에서 책을 단체로 복사하거나 개인적으로 복사본을 구입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행위가 민사 혹은 형사책임이 동반되는 위법행위일 뿐만 아니라 저작자 재산권을 침해하고 장기적으로는 우리 학문 기반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인식이 아직 미진하다.
대학가 주변에서 이 같은 반복적인 위법행위가 자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먼저 경찰력을 동원해 대학교재 복사라는 불법행위를 엄중하게 단속, 금지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의 단속행위를 보면 국가가 단속 의지가 있는지 의심될 정도로 비조직적이고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컴퓨터 SW에 대해 검찰과 경찰이 합동으로 단속했던 예와 비교해 보면 더 분명해진다. 이제부터라도 불법복사와 관련된 범죄행위는 발본색원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조직적이고 강력하게 단속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속도 중요하지만 저작자 권리의식이 변해야 한다. 서적 복제에 대한 단속이 미진했던 것은 컴퓨터 SW 권리자들이 힘있는 다국적 기업인 데 비해 복사된 교재의 권리자들은 힘없는 저술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학문적 노작을 펼쳐온 권리자들이 겸양지덕에서, 혹은 불법복사업자들과 그 위법행위에 동참한 학생들의 처지를 동정해 자신들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불법복사 단속에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소극적 권리의식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후덕함이 실제로 젊은 세대를 불법에 둔감하게 만드는 나쁜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 훌륭한 저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정당한 대가를 주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또 그 자신들도 언제든지 저작자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평가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향후 기회가 닿으면 우리 소중한 학생들에게 ‘올바름’을 위해서 ‘편리함’을 극복해야 하는 당위와 지혜를 전해주고 싶다.
◆권대우 한국복사전송권관리센터 부이사장, 한양대 법대 교수 kdw@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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