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파행 조짐 보이는 프로게임 상설경기장

작년 12월 세계 최초 e스포츠 전용 구장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문을 열었던 e스포츠 상설경기장이 파행 위기에 처했다. e스포츠협회가 상설 경기장과 관련된 기본 계획조차 수립하지 못한 상태인데다 급기야 운영권마저 게임방송쪽에 넘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협회 주관의 프로리그가 방송중계권 배분문제로 올 시즌 일정에 막대한 차질이 불가피해 이레저레 상설경기장 운영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e스포츠계의 최대 숙원 중 하나였던 상설 경기장이 불과 몇달만에 문을 닫게될 지경에 놓인 것은 한국 e스포츠계의 총체적 부실을 다시한번 증명한 쑥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한다.

한국e스포츠협회(회장 김신배)는 e스포츠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선 e스포츠 전용 상설 경기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높이며 지난해 개장을 적극 추진했다. 이에 현대로부터 3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아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 상설경기장을 만들었다. 당시 협회측은 “상설 경기장이 프로게임 대회는 물론 복합 e스포츠 문화의 중심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후 상설 경기장 운영과 관련해 협회와 방송사의 지리한 줄다리기가 시작되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이는 상설 경기장 개장과 관련, 방송사나 각 구단들과 협의조차 하지 않았음을 대외적으로 증명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협회는 결국 모든 e스포츠 리그를 상설 경기장에서 진행할 것이라고 못박고 방송사와 협의를 진행했지만, 온게임넷과 MBC게임등 양대 방송사는 상설 경기장 내에 시설이 미흡하고 교통이 불편하다는 이유를 들어 협회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양측의 대립이 지속되면서 프로리그조차 파행될 위기에 처하는 등 e스포츠계가 술렁이기 시작했으며, 여기에 프로리그 메인 스폰서인 SK텔레텍마저 끼어들면서 상설 경기장 파행을 부채질했다. 결국 협회는 애초 상설 경기장 개장의 의미를 축소시키며, 방송사에 운영권을 넘겨주는 협의를 물밑 진행중이다.

# 운영권 왜 넘기나

협회가 상설 경기장 운영권을 방송사측에 넘기려는 것은 무엇보다 자금 문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 한 관계자는 “방송 장비와 유지비, 관리비 등을 위해서는 대략 16억원에 달하는 재원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여러 업체들에 투자 등을 제의했지만 모두 무산됐다”며 부득이하게 운영권을 넘길 수 밖에 없음을 시사했다. 상설 경기장을 제대로 가동하려면 기본적인 비용이 수반되는데, 이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얘기이다.

협회측이 상성 결기장 건립 당시 현대와 아이파크몰측과 한달에 최소 3번 이상한 이곳에서 경기를 진행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는데, 이 조건에 만족시키는 것이 쉽지않아 결국 운영권을 넘길 수 밖에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즉, 당초에 아이파크몰측이 e스포츠 경기 유치를 통해 자연스럽게 청소년들을 유인해 마케팅 효과를 볼 것으로 생각, 공간을 제공했지만 협회가 이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게됐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협회가 애초부터 상설 경기장 운영과 관련한 기본적인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한채 무리하게 경기장을 개장, 화를 자초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e스포츠계 한 관계자는 “e스포츠 활성화라는 거창한 이슈를 내세워 만든 상설 경기장이 4개월만에 파행을 맞는다는 것만으로도 협회의 무기력과 e스포츠계의 총체적 부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 e스포츠계 미칠 파장은

현재 협회의 상설 경기장 운영권 이양에 대한 협상은 상당히 진척된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와 방송계에선 ‘협의중’이라고만 할뿐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최대 게임방송인 온게임넷과 막판 조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스포츠계 한 소식통은 “2006프로리그가 시작되기 전에 상설 경기장 운영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조만간 결론이 날 것”이라며 “e스포츠 시장에서의 헤게모니 등을 감안할 때 온게임넷이 유력하다”고 강조했다.

만약 온게임넷이 용산 e스포츠 상설 경기장의 운영권을 확보하게 되면 적지않은 파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e스포츠계의 중심축을 자처하는 협회가 주관하는 전용 경기장이 없어지는 데다 온게임넷의 영향력이 더욱 높아질 것이란 점 때문이다.

일각에선 협회가 온게임넷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으며, 향후 협회가 e스포츠계의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하는데 막대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e스포츠계 한 관계자는 “현재도 방송사들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 협회가 상설 경기장 운영권까지 넘긴다면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 근본적인 대안은 없나

현실적으로 협회의 운용 시스템을 감안할 때 상설 경기장을 종전처럼 끌고 가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자금도 문제지만, 프로리그의 주도권을 둘러싼 방송사와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협회가 힘이 달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e스포츠 발전을 위해선 상설 경기장 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한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이를 위해 우선 상설 경기장에 대한 기본적인 마스터플랜을 다시 짜야한다. 결국 이번 상설 경기장 문제도 행정편의적 졸속 정책이 낳은 결과물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장기적 안목에서 경기장의 입지조건은 물론 향후 운용 방안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전략과 전술 수립이 선행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e스포츠계 한 관계자는 “경기가 매일 열리는게 아니기 때문에 월드컵 경기장과 마찬가지로 다른 콘텐츠와 연계한 복합 문화센터 형태로 이용 방안을 다변화하는게 중요하다”면서 “궁극적으로는 경기장 자체적인 수익모델까지 고려한 대응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e스포츠 전용 경기장은 e스포츠의 종주국이자 게임산업의 글로벌 리더를 꿈꾸는 대한민국 의 미래를 위해서도 어떤식으로든 발전적으로 해결 방안을 찾아야할 문제”라며 “방송사의 헤게모니 싸움과 협회의 무기력함에서 오는 시행착오를 더이상 겪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안희찬기자@전자신문 김명근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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