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펀드들이 최근 한국 게임 사냥에 혈안이다. 온라인게임은 물론 모바일게임 개발사들까지 직접 찾아다니며 좋은 ‘사냥감’ 물색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단순투자에서 직접 경영권 인수까지 그들이 제시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글로벌 펀드의 ‘러브콜’이 가시화되면서 게임업계는 돈 가뭄이 풀릴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선 최근 SK를 적대적 M&A하려했던 소버린과 KT&G를 인수하려 했던 칼 아이턴의 예로 들며 외국자본의 의한 전도유망한 개발사가 해외로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이 적지않다. 글로벌 펀드, 그들이 노리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싱가포르, 홍콩, 유럽, 미국, 일본 등을 거점으로 전세계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와 M&A를 단행하는 글로벌 펀드들이 한국 게임 개발사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 부터다.
엔씨소프트, 웹젠 등 한국산 온라인게임이 해외서 부각되면서 글로벌 펀드들이 한국 개발사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웹젠 등 국내업체와 중국 샨다 등 나스닥에서 게임테마군이 형성되면서 소위 미국시장에서 통할 수 있거나 나스닥 상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가 본격화됐다. 컴투스, 엔도어즈 등이 대표적인 곳이다.
그러나 글로벌 펀드들은 자신들의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연계해 기업가치를 제고하고, 이를 통해 자본이득을 창출하는 본래의 방식에서 벗어나 단기에 치고빠지기식 ‘머니게임’화할 움직임이 나타나 적지않은 후유증이 우려된다.
특히 외자유치를 명목으로 개발사들의 정보와 기술을 유출, 국내업체들의 적지않은 피해를 보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국내 게임업체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외국계 펀드는 동남아에 거점을 둔 다국적 펀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현재 크고작업 온라인 및 모바일게임사들을 대상으로 물밑접촉이 활발해 올해만도 20개 이상의 국내 게임업체가 글로벌펀드로부터 투자를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몇몇 유망기업 막바지 절충중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온라인게임을 개발한 A사. 이 회사는 최근 글로벌 펀드 3곳로부터 투자 제의를 받고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이 회사의 게임이 중국서 ‘대박’을 터트리자 글로벌 펀드들이 지분 투자를 하겠다고 경쟁적으로 나선것이다.
1년전만해도 자금난에 허덕이며 생사를 걱정했던 A사사장은 갑작스런 글로벌펀드들의 ‘구애’에 달라진 위상을 절감하고 있다. 이 회사 사장은 “앞으로 나올 게임들에 대한 마케팅이나 향후 나스닥 진출을 위해 외자를 수용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온라인게임 업체인 B사는 요즘 미국 글로벌 펀드와 막후 협상중이다. 이 펀드의 제안 조건을 받아들일경우 비록 경영권은 넘겨줘야할 형편이지만, 1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을 유치한다면 올해 목표로 하고 있는 게임포털 사업을 원활히 전개할 수 있어 긍정적으로 딜에 응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 글로벌 펀드와 물밑 교섭을 진행중인 국내 게임 개발사들이 적지않다. 특히 비단 온라인게임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바일 등 다양한 게임개발사들에 글로벌 펀드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모바일게임 업체인 C사도 최근 일본의 모 글로벌 펀드와 외자유치를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펀드측가 워낙 적극적이어서 구체적인 인수 금액까지 나올 정도다.
# 글로벌 펀드, 무엇을 노리나
글로벌 펀드들이 이처럼 한국 게임 개발사에 대해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게임 자체가 투자대비 수익률이 높은데다 나스닥 등 해외 증권시장에서 게임주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온라인게임의 경우 영업 이익률은 다른 산업에 비해 무척 높고, 프로젝트 투자가 일반화돼 투자 이후 매출이 발생하게 되면 곧바로 회수가 가능해진다.
국내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이 글로벌 게임으로 정착돼 가고 있다는 점도 글로벌 펀드들이 한국 게임개발사에 관심을 갖게 된 또다른 이유로 해석된다. 여기에 자신들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더욱 시너지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복안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게임산업이 다른 산업에 비해 구조적으로 취약해 인수·합병이 쉽다는 점이 이들을 유혹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게임 개발사들 중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회사가 드물고 산업적 기반이 취약하다. 특히 M&A에 대한 인식이 낮아 글로벌 펀드의 의도대로 딜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점도 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교보증권 김한성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펀드가 한국에 유입되는 것이 해외 시장 개척에는 도움을 주겠지만 산업적인 관점에서 보면 시장 성장에 꼭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는 보진 않는다”며 “글로벌 펀드들의 ‘돈벌이’용으로 전락되지 않도록 업계의 신중한 처신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 독일수도 약일수도 있다
글로벌 펀드에 의한 외자유치는 게임 국제화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견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외국 자본이 국내에 유입됨으로써 자금 흐름에 숨통을 터주고 시장 파이를 키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매력적일 수 있다. 또 해외 시장 진출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과 나스닥 등 해외 증시 상장 추진시 적지않은 지원 사격을 받을 수 있는 잇점도 있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선 우려의 시각도 적지않다. 최근 외국계 펀드의 잇따른 한국기업 사냥의 연속 선상에서 국내 힘없는 개발사들이 선진 자본주의식 기업사냥에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에서 불거져나왔듯이, 해외 펀드의 자본부풀리기에 한국 게임사들이 놀아날 수 있다”는 곱지않은 시선을 보냈다. 마치 재주는 곰이넘고 돈은 외국펀드가 몽땅 가져가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전문가들은 “게임의 산업화를 가속화시키기 위해선 건전한 산업자본이 더 많이 유입
돼야 한다”고 전제하며 “외국계펀드는 태생적으로 산업적 기여보다는 단순 케피털 게인(자본이득)에만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게임펀드 활성화 등 업계, 정부, 관련기관의 시스템적인 접근과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희찬기자 chani71@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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