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는 한국이 ‘세계 특허’를 받아야할 문화상품이다. 우리가 종주국인 만큼 잘만 프로모션하면 그 미래는 매우 밝다. 비록 ‘스타크래프트’(스타크) 등 일부 종목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국제 대회에서 발군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e스포츠에 직접 발을 담그고 있는 선수들의 생각 역시 e스포츠의 미래에 대해선 상당히 낙관적이었다.
한국 e스포츠의 앞날에 대한 질문에서 조사 대상 프로게이머들의 무려 90%가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특히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45.7%는 ‘매우밝다’고 응답했다. 지금을 위기로 보는 e스포츠계 주변의 우려와 달리 당사자인 선수들은 미래에 대해 매우 희망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선수들은 그러나, 문제 의식에 대해서도 적지않은 관심을 표명했다. 현 e스포츠의 최대 문제점에 대해서는 무려 58.6%가 ‘병역 문제’를 가장 심각한 과제로 지목했다. 현재 e스포츠계에서 임요환·강민 등 스타급 플레이어들이 군입대 문제가 핫이슈다. 당사자인 선수들도 문제지만, 구단·방송 등 e스포츠 전체가 이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상황을 데이터로 증명한 셈이다.
다음으로는 팀간 형평성 문제가 17.1%로 두번째 해결해야할 문제로 꼽혔다. 이는 SK, KT, 삼성, 팬택 등 대기업들의 잇따른 참여로 대기업 구단과 비스폰서 팀 소속 선수간의 ‘부익부 빈익빈’이 날로 심화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결과로 해석된다. 이 밖에 선수들 처우문제와 e스포츠 인식 부족을 지적하는 선수들도 적지않았다.
프로게이머들은 빠른 두뇌 회전과 정교한 컨트롤을 필요로한다. 때문에 선수의 정년이 다른 오프라인 스포츠에 비해서 짧다. 당사자인 선수들이 생각하는 프로게이머의 정년은 ‘25∼30세’로 조사됐다. 무려 75.7%의 지지율을 보였다. 현재 최고령 선수는 27세의 임요환이다. 그러나, 결코 만만치않은 20% 정도는 프로게이머는 ‘나이와 상관없다’고 응답해 눈길을 끌었다.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다양한 견해를 나타냈다. 통상적으로 오프라인 스포츠의 프로선수들은 은퇴루 지도자나 관련 행정 및 방송계로 진출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프로게이머들은 가장 많은 31.4%가 e스포츠계가 아닌 게임관련 회사에서 일하고싶다고 답했다.
반면 은퇴 후 방송이나 스태프로 일하고 싶다는 선수는 각각 20%와 18.57%에 그쳐 대조를 보였다. 게임과 무관한 직장을 갖고 싶다는 선수도 12.86%로 적지않았다. 이는 아직은 e스포츠계의 안정적인 직업군을 형성할만한 시장 파이가 되지 못한다는 것의 방증이기도 하다.
선수들은 또 대부분이 프로게이머가 주위로부터 부러운 시선을 받았다고 응답해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젊은층에서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입증했다.보통 아마추어 게이머들이 스타리그 중계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나도 얼마나 하면 저정도 실력을 갖출까?”하는 점이다. 그렇다면 현역 프로게이머들은 언제부터 ‘스타크’를 하기 시작했으며, 얼마나 준비기간을 거쳐 공인 선수가 됐을까.
조사 결과는 프로게이머들은 중학교 1학년때 부터 ‘스타크’에 입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70명의 선수들이 ‘스타크’를 접한 시기는 평균 14.37세로 나타났다. 결코 쉽지않은 키보드 및 마우스 컨트롤을 필요로하는 게임 특성상 중학생은 돼야 접근하기 쉽다는 얘기. 무려 9세에 입문했다는 선수와 19세에 입문했다는 선수도 있어 충격적이었다.
그렇다면 게임을 접한 후 프로게이머가 되기까지는 보통 얼마나 소요될까. 답은 의외로 긴 3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집계됐다. 조사 결과 ‘스타크’ 입문에서 프로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2.94년으로 나타났다.
프로 선수들의 현란한 손동작을 보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는 경우가 있는데, 평균 3년간 공을 들어야 프로가 된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빠르게는 6개월 길게는 7년까지 걸렸다는 선수도 있어 절대적인 시간보다는 누가 얼마나 집중적으로 연습을 많이 했는가가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프로선수가 되는데는 적지않은 운도 필요하다는게 e스포츠 관계자들의 설명이다.화려한 테크닉과 수려한 외모로 오빠부대를 끌고 다니는 프로게이머들. 그들은 어떤 동기로 프로게이머의 길로 접어들었을까. 돈을 많이 벌어서? 명예가 따라다녀서? 아니다. 정답은 단순하지만, 명쾌하다.
프로게이머들은 대다수가 ‘그저 게임이 좋아서’라고 응답했다. 무려 81.1%에 달하는 압도적인 지지율이다. 적지않은 지지율을 예상했던 ‘멋있어 보여서’란 문항엔 단 1명만 응답했다.
게임을 직업으로하는 프로선수들로서 수익을 고려하지 않았을까란 의구심이 들었지만, 역시 이 항목에서도 단 3명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새로운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마치 신세계를 개척하는 프론티어들처럼 과감하게 뛰어드는 21세기 디지털 세대의 전형을 다시한번 보여준 것이다.
게임이 좋아 프로게이머가 된만큼 선수들의 연습량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 선수로서 프로게이머들은 평소에 평균 10시간 이상 연습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TV속에 비치는 화려한 모습 뒤에 남모를 각고의 노력이 숨어있었던 것.
설문에 참여한 선수들은 하루 평균 10.07시간이나 연습에 몰두하며, 심지어는 밥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15시간을 연습에 투자하는 게이머도 있었다.
많은 연습량을 소화하다 보면 아무리 좋아하는 게임이라도 누구나 스트레스가 쌓이기 마련이다. 프로게이머들이 경기나 연습이 없는 여가시간에 가장 많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혈기 왕성한 시기에 많은 욕구를 참아내며 프로가 된 선수들도 여가시간에는 다른 평범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보거나 기타 다른 취미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약 38.6%의 선수들이 자신들만의 취미를 즐긴다고 답했다. 합숙생활을 하며 자주 볼 수 없었던 친구나 애인을 만난다고 답한 이들도 21.71%로 비교적 높게 나왔다.
그렇다면 역으로 이들 선수가 만약 프로게이머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고 물었다. 이 항목에선 나이가 나이니 만큼 학교를 다니고 있을 것이라는 답이 51.1%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e스포츠 특성상 어린 나이에 프로선수의 길로 접어들었기에 다른 것은 생각해 보지 못했다는 프로게이머들도 15.7%나 나왔다.
프로는 실력으로 자신을 입증해야한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고 다른 요소로 인기몰이를 한다고해도 반짝 인기를 누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선수들은 프로게이머로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75.7%라는 절대 다수가 ‘실력’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여성팬들이 유독 많은게 e스포란 점에서 ‘외모’를 지지하는 선수가 적지않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로 단 한표도 나오지 않았다. 외모가 충분조건이긴 하지만,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 결과다. 대신 ‘스타성’이라는 응답자가 17.1%에 달해 기본적인 실력에 스타성을 겸비한 선수가 되고싶은 욕망을 내비쳤다.프로 스포츠의 세계는 참으로 냉정하다. 잘 할때는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그렇지 못할때는 팬들의 외면과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고개를 들지못한다. 그러나, 반대로 프로이기 때문에 적지않은 보람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명 경기로 선수들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스타크래프트 선수들 중에는 유독 효자가 많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프로게이머로서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냐는 질문에 무려 47.1%가 ‘상금을 타서 부모님을 기쁘게 했을 때’라고 답했다. 비교적 어린 나이지만, 부모들에게 효도를 했다는 뿌듯함이 더없이 즐거운 일이란 의미이다.
비디오세대인만큼 ‘TV중계에 나왔을 때’ 보람을 느꼈다는 선수들도 27.14%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과거에 자신의 우상이거나 높게만 바라봤던 유명 선수를 이겼을때 보람을 느낀다는 응답자도 5.7%에 달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게 마련. 프로게이머로서 가장 괴롭고 힘들 때는 언제인가란 질문에 절반이 넘는 58.6%가 ‘열심히 준비하고도 경기에 패했을때’라고 응답했다. 경기에 대비해 잠을 줄이면서까지 피나는 노력 했는데도 실전에서 패배를 맛 보았을 때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이 엄습해온다는 뜻이다.
10대 후반에서 20대초반에 이르는 혈기 왕성한 나이라서 그런지 미팅을 못하거나 애인을 자주 보지 못할때 괴롭다는 선수들도 31.4%나 돼 눈길을 끌었다. 타이트하게 짜여진 스케쥴과 합숙훈련 등으로 인한 외로움이 만만치않다는 얘기다.
이 밖에 ‘부모님이나 친구를 자주 못봐서’라는 응답자도 5.7%에 달해 프로게이머들이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대상을 자주 보지 못하는 아품이 적지않다는 것을 대변했다.
<김명근기자 dionys@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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