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유저)들은 IT공급자(벤더)를 항상 사시(斜視)를 갖고 본다.
필요 이상으로 시스템 교체를 부추긴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유저들 눈에 벤더들은 시도 때도 없이 각종 새로운 개념(컨셉트)을 만들어 현혹하는 마케터일 뿐이다. 또 그래도 망설이면 마치 이 ‘패러다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금새 도태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수완 좋은 장사꾼들이다. 이들의 말을 듣고 투자를 감행했지만 기업의 수익으로 연결될 만한 것이 별반 없었다는 게 사용자들의 공통된 불만이다. 이 와중에 가장 곤란을 겪는 이들은 바로 수요업체의 CIO다. 결과에 따른 책임은 사용자들의 활용마인드에 문제가 있어도 그저 시스템 성능과 이를 선택한 CIO에게 돌아가기 일쑤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같은 유저와 벤더 간의 신뢰 부재는 의외로 넓게 퍼져 있다. 그들 눈엔 기업 아키텍처(EA), 서비스지향아키텍처(SOA) , 실시간기업(RTE) 등의 개념은 거기서 거기다. 여전히 비슷 비슷한 마케팅용어일 뿐이다.
요즘 유행하는 IT거버넌스도 마찬가지다. 언뜻 보면 앞선 개념들의 연장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틀부터 다르다. 무엇보다 IT거버넌스는 그동안 기업의 인프라 내지 툴로서 역할을 해왔던 IT가 당당히 기업지배구조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용어 자체도 공급자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수요자들이 먼저 제기했다는 것도 다르다. IT쪽 비용이 많이 들어가면서 사용자 측면에서 자꾸 비용이 들고, 이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관심을 가지면서 IT거버넌스가 부각됐다는 것이다.
“기업의 비용 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인건비고, 그 다음이 IT투자금액이다. IT투자비용을 대충 썼다가는 기업 재무 쪽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아 진행해야 하고, 또 추후 모니터링되는지가 중요하다.”(금융권 CIO)
“요즘처럼 환경이나 회계 등 투명성을 강조하는 각종 규제준수(컴플라이언스) 이슈가 기업을 옥죄는 상황에서는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해야 기업 존속이 가능하다.”(IT서비스 업계 CIO)
기업투명성, IT투자성과 관리를 위해서라도 IT거버넌스는 이제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됐다. IT투자를 단순한 인프라 차원에서 결정하기에는 내용이나 규모 면에서 회사의 영속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는 CIO의 몫이다. IT거버넌스가 또 하나의 마케팅 용어가 되지 않으려면 공급자들의 책임의식 못지않게 CIO의 주인의식이 중요하다. 종전처럼 그저 현업에 필요한 솔루션을 벤더들에게서 사다가 공급하는 식의 역할로는 IT거버넌스 시대에 버틸 수가 없다. 기업현장에서 무엇이 먼저 필요한지를 간파하고 IT전략을 회사 전체의 사업전략과 연계할 줄 아는 탁견을 지녀야 한다.
CIO도 이젠 기술보다는 경영의 용어로 말할 줄 알아야 한다. 단순히 남들보다 기술이나 솔루션을 좀더 아는 임원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기술을 더 빨리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IT시장을 창출할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누구보다 급변하는 외부 환경을 민감하게 받아들여 변화 관리와 투자성과 관리를 고민하고, 이를 통해 회사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IT거버넌스는 침체된 시장의 활성화를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기회다. 또 CIO에겐 경영 전면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다. IT의 기운이 시장과 조직으로 속속 스며들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다. 곳곳에서 CIO의 목소리가 더 커졌으면 좋겠다.
김경묵부장@전자신문, k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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