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문서 새 시대가 열린다’
현대해상·삼성화재·LG화재·동부화재 등 국내 4대 메이저 보험사가 연간 쏟아내는 종이 문서량은 어느 정도일까. 자그마치 1억3600만장에 달한다. 종이를 쌓으면 그 높이만도 무려 13㎞로 여의도 63빌딩 54배 높이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이들 4개사가 종이문서를 보관하는 연간 비용만도 88억원에 이른다.
보험사의 이런 상황은 은행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모 은행이 1년에 사용하는 종이문서량은 2억4000만장으로 4대 보험사를 합한 것보다 70%나 더 많다. 현대자동차는 5톤 트럭 30대 분량의 세무관련 증빙문서 보관을 위해 1000평의 창고를 두고 있으며 삼성전자의 연간 문서발생량은 5000만장에 이르는 등 제조업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자문서관리시스템(EDMS) 도입 등 10년 이상 ‘종이없는 사무실 구현’으로 사무혁신을 이룬 지금에도 여전히 기업이 종이문서 보관과 활용에 많은 노력과 비용을 투입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 동안 기업과 관공서에서는 내부 업무를 혁신해 전자문서로 상당 부분 업무를 진행하고 있으나 세금계산서, 의료비청구서, 각종 증빙서류 같은 법률이 요구하는 문서는 보관이 반드시 필요하다.
산자부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2004년 국내 기업 전체의 종이문서 비용은 25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들 종이문서를 전자문서로 대체하고 전자문서를 안전한 곳에 보관해 생성·활용·보관·폐기에 이르는 문서 라이프사이클을 제대로만 구현한다면 시간·비용·노력의 절감과 이에 따른 생산성 향상의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바로 공인전자문서보관소 사업의 출발지점이다. 올 하반기부터 공인전자문서보관소 사업이 본격화된다. 주무부처인 산자부는 이달 고시안을 확정하고 향후 6∼7개월 동안 고시-사업자 신청접수-심사-사업자 선정을 진행할 방침이다. 따라서 올 4분기쯤이면 산자부가 지정한 공인전자문서보관소 사업자가 등장해 전자문서 관련 사업이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산자부는 지난 1년 동안 공인전자문서보관소에 보관된 전자문서 법률적 효력 인정 및 진정성 추정을 위해 전자거래기본법 개정과 시행령 마련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이를 통해 전자문서 효력을 부인하는 28개 법률, 56개 조항이 새롭게 다듬어졌다.
공인전자문서보관소가 등장하면 보관소에 등록된 모든 문서는 법률적으로 종이문서와 똑같은 효력을 갖게돼 이제까지 기업 및 공공기관 내부에서 전자문서를 종이문서로 따로 출력·보관하는 작업이 필요없어진다. 진정한 의미의 ‘페이퍼리스 업무’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다. 세금계산서를 오프라인으로 처리했을때 연간 1억9000만원의 비용이 소요됐지만 전자적으로 처리한 이후 연간 72만원으로 264배가 절감된 사례는 전자적인 문서활용의 생산성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정동희 산자부 전자상거래과 과장은 “공인전자문서보관소는 그 자체로는 완벽한 페이퍼리스 업무를 지향하고 있지만 이 시장이 정착되면 민간과 공공부문 모두에서 유비쿼터스 업무처리가 가능해지는 등 산업과 사회 전반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공인전자문서보관소의 수요처는 종이문서가 많이 쌓여있는 은행·카드·보험·증권 등 금융권은 물론 각종 신청서류, 전표 및 지급서류, 업종 특화서류, 회계 및 증빙관련 서류를 취급하는 통신·제조·의료·무역·유통·공공기관 등 모든 업체가 포함된다. 특히 초기에는 전자문서 보관·송수신 서비스 시장이 먼저 열리겠지만 보관소의 신뢰성·효용성이 검증된다면 각종 부가서비스가 다양하게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보관소 시장은 수요처뿐만 아니라 사업자측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일각에서는 공인전자문서보관소에서 창출되는 초기 시장규모가 5000억∼7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펴고 있다.
산자부 한 관계자는 “보관소의 사업 잠재성으로 보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초기 1200억∼1300억원가량의 시장규모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공인전자문서보관소 관련 업체 협의회에는 금융권을 비롯해 SI업체, 솔루션사, 스토리지 업체, 공인인증기관 등 60여개 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아직 고시안이 확정되지 않아 탐색전 성격이 강하지만 사업성과 향후 장래성을 놓고 물밑에서 치열한 저울질을 벌이고 있다. 이들 업체는 주사업자 혹은 컨소시엄 참여 이외에도 공인전자문서보관소에 SI 및 솔루션을 제공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
이 가운데 금융권에서는 금융결제원·우리은행·신한은행·농협중앙회 등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KTNET·LG CNS·데카소프트·한국전자문서 등도 초기시장 선점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물론 아직 초기 단계인만큼 해결과제도 많다. 업계 일각에서는 현재 공인전자문서보관소 논의가 금융권 위주로 진행되는데다 업종간 인식 편차도 커 자칫 반쪽짜리 사업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인인증 시장의 경우 초기 기술중심·공급자 위주로 논의가 진행되면서 비즈니스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보관소 시장도 산업육성과 수요자 관점에서 더욱 활발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전자문서의 진본성 유지방안과 보안 등 기술·절차상의 문제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법조항에 대한 지속적인 개정 등은 조속히 해결해야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함께 수요자 측면에서는 제3의 기관에 중요한 전자문서 보관을 위탁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없애고 업무 프로세스 재구축(BPR)을 통해 종이문서 위주의 업무관행을 개선하는 것이 요구된다.
산자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담회·공청회 등 의견 수렴의 장 확대 △장기 로드맵 수립 △부처간 협의를 통한 관련법령 정비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조인혜기자@전자신문, ihch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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