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담:양승욱 디지털산업부장(부국장대우)
정세균 장관이 이끄는 산업자원부의 키워드는 ‘질 좋은 성장’이다. 멈출 수 없는 성장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분배, 그 어느 것도 버릴 수 없는 카드다. 그래서 정 장관의 고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는 환율·유가 등 위기의 한국경제 성장을 책임지고 있다. 한편으로 참여정부의 핵심인 분배도 고려해야 한다. 그가 고심 끝에 내린 산업정책의 결론은 ‘질 좋은 성장’이다.
“취임 전에 산업정책을 공부하고 여러 가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올해 정부 정책의 핵심인 양극화 해소의 해답은 결국 ‘성장의 질’을 챙기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국민경제 전체로 봤을 때 성장이 없으면 안됩니다. 청년 실업자 처지에서 일자리 창출 없는 경제성장은 무의미합니다.”
정 장관의 ‘질 성장’은 ‘도자기론’이다.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과 경쟁력 있는 몇몇 대기업이 산업을 장악하는 ‘호리병형’ 구조에서 개발력과 재무능력이 탄탄한 중견기업이 허리역할을 하는 ‘항아리형’으로 전이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정책 총론은 정해졌다. 이제 각론인 세부 시행계획과 운용이 남아 있다. 정 장관의 일성(一聲)처럼 견조한 수출과 활발한 내수, 동반성장을 통한 사회 양극화를 해소 할 수 있는 절묘한 분배의 구조가 이루어질지 주목된다.
-신임 장관으로서 산업정책을 이끌 큰 방향을 제시한다면.
△우선 환율하락, 고유가 등으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대응해갈 것입니다. 동반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통해 2만달러 국민소득을 조기에 달성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경제는 지표상으로 양적인 성장을 해왔지만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고 성장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지 못하는 등 질적인 면에서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과거 물량위주의 성장에서 벗어나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가능케 하는 산업구조를 만들어나갈 계획입니다.
-중견기업 육성을 강조했는데 구체적인 육성방안은.
△‘호리병형’ 산업구조를 ‘항아리형’ 산업구조로 만드는 핵심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대기업 45%, 중소기업 40%인 데 비해 중견기업은 15%에 불과합니다. 즉,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돼 있는 2분 구조를 대·중견·중소 기업의 3분 구조로 만들어갈 것입니다. 중견기업이 산업의 허리역할을 해야만 성장과 분배를 모두 실현할 수 있습니다. 기본 방향은 중소기업 가운데 고속성장하는 혁신주도형 기업을 집중 육성하고, 현재 중견기업군에 있지만 혁신역량이 취약한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적극 지원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부품·소재 중핵기업 등 기존 육성책을 차질없이 추진하면서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한 다양한 지원책을 펼쳐나가겠습니다.
-환율하락이 중소 수출업체들에 견딜수 없는 무게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환율하락과 관련돼 산업연구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환율 5% 하락시 수출산업의 채산성은 3∼5% 정도가 악화됩니다. 따라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 환변동보험을 무제한 공급하고 수수료도 중소기업에는 40% 인하합니다. 또 원자재 구매자금 대출 및 원자재에 할당관세를 적용해 기업 부담을 덜어주고자 합니다. 각종 해외마케팅 지원도 병행하고, 특히 산업별 ‘수출현장 애로해소 지원단’을 전국 주요 중소 수출업체에 파견해 현장 애로사항을 찾아내고 지원해나갈 것입니다.
-양극화 해소와 관련, ‘대·중소 상생협력’이 화두입니다. 이를 구체화할 방법들은.
△대기업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상생은 불가능합니다. 대기업 경영에 대해 말이 많은데 그들이 내는 법인세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또 대기업이 기업활동으로 내는 근로소득세는 얼마인지 아십니까. 정부는 기업활동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받을 세금은 받고 공정한 경쟁은 보장해야 합니다. 재벌체제라고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안됩니다. 따라서 상생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황을 서로 고려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제도로 시작해 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앞으로 국내외 성공사례를 기반으로 ‘상생협력 발전모델’을 개발해 확산하는 데 역점을 두겠습니다. 상생이 기업문화로 정착되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되므로 단기적으로는 협력 우수기업에 세제·금융·조달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마련해 지원하는 한편 성과공유제, 기술·인력·마케팅 등 유형별로 실효성 있는 상생협력 프로그램을 대폭 확충해나가겠습니다.
-대일 무역역조가 심한 부품·소재산업의 경쟁력 확보 방안은.
△대일 무역역조는 산업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따라서 품목별 현황을 면밀히 검토해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글로벌 소싱이 가능한 세계적인 부품·소재 중견기업 등의 육성을 통해 해결해나갈 계획입니다. 기술개발·도입·투자유치로 나눠 집적회로 반도체 등 68개 품목은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정밀베어링 등 21개 품목은 기술도입을 연계해 지원하겠습니다. 또 기어박스 등 11개 품목은 투자유치에 적극 나서겠습니다.
-국내 1위 산업으로 부상한 디지털전자산업의 발전방향은.
△국내 대표산업인만큼 세계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전후방 산업연관 효과가 크고 시장 폭발력을 가진 융합 신산업 분야 원천기술 확보에 R&D 역량을 집중하겠습니다. 또 국제 특허분쟁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우리 기술의 국제표준 반영률을 높여나가도록 힘쓰겠습니다.
-외국인 투자유치의 올해 목표는.
△대내외적인 여건을 고려해 작년과 비슷한 수준인 약 110억달러가 목표입니다. 올해 외국인 투자 유치의 특징이라면 질적 고도화를 위해 R&D센터, 물류센터, 지역본부 등 동북아 비즈니스허브 구축에 기여할 네트워크형 투자를 중점적으로 유치할 계획입니다.
정리=이경우기자@전자신문, kwlee@
◇정세균 장관의 ‘말말말’
“힘 센 장관이 아니라 힘 있게 일하는 장관이 되겠다.” “일을 하다 실수로 접시를 깨뜨린 경우에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일을 하지 않아 접시에 먼지가 쌓이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 산업자원부 장관 임명 이후 기자들과의 첫 오찬에서 장관직 수행에 심혈을 기울일 것을 강조하며.
“부품소재 산업의 대일 무역역조를 해결하는 실마리라도 만들겠다.” - 재임기간에 꼭 하고 싶은 일은 부품·소재산업의 자립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며.
“가운데가 부실한 호리병형에서 항아리형으로 만들겠다.” - 경쟁력 잃어가는 중견기업을 키워서 가운데가 튼튼해지는 항아리형 산업구조를 만들겠다며.
“일자리 창출과 세금 많이 내는 것 둘 다 잘하는 기업은 받들어모셔야 한다.” - 기업은 일차적으로 수익을 내야 하지만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내야 하는 사회적인 의무가 있다며.
“대기업이 돈이 없어서 투자 못하는 게 아닌데 산업자본이 왜 금융기관을 가져야 하나.” - 금융·산업자본 분리문제에 대해, 금융자본이 산업자본과 연계돼 잘못 운영되면 공정한 운영이 어렵고 국민 재산에도 위험이 생길 수 있다며.
“지역구가 워낙 멀어서….” - 장관 내정 이후 최근 6년 동안 70여건의 교통법규를 위반했다는 주장과 관련해, 지역구(무주·진안·장수)가 멀어 의정활동 시간을 맞추려다보니 불가피하게 위반한 경우가 있었다고 해명하며.
◇대담후기
정세균 장관은 대담시간 내내 거침없이 자신의 소견을 피력했다. 질 좋은 성장론이나 항아리론은 벌써부터 기업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철저하게 실물경제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설익은 정책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정치입문 전 18년 동안의 기업근무 경험과 의정활동 기간에 보고 느꼈던 자신의 철학을 녹인 것’이라고 간단히 일축한다. 으레 정치인 출신 장관에게서 볼 수 있는 쇼맨십도 안보인다. ‘대기업 발전없이 중소기업의 발전은 없다’는 식의 민감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소리없이 산업구조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그에게서 오히려 힘이 느껴진다. 한국경제를 이끄는 전자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해온 전자신문을 업어주고 싶다는 공치사도 잊지 않는다. 그의 환한 미소가 우리 산업의 미래를 밝게 비춰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