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미래의 이야기다’ 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SF가 물론 예언서는 아니지만 미래를 논하는데 있어 점쟁이나 예언가들보다 훨씬 낫다. 그러면 SF에서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을까? 오늘은 그 얘기를 꺼내본다.아무리 해도 풀 수 없는 과학적 문제가 그들 앞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미래 세계의 사람들은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 예지자들을 만나기 위해 타임머신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그들이 만나고자 한 사람은 20세기 초반부터 급증했다가 사라졌다는 바로 SF 작가였다. 그리고 그들은 충분히 예지자로서 자격이 있다.
SF의 고전이라 해도 좋은 ‘걸리버 여행기’에서 조나단 스위프트는 화성에 2개의 달이 있고 그들이 아주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다고 썼고(물론 망원경도 없던 시절이었다.)
‘우주전쟁’의 작가인 H.G.웰즈는 핵폭탄의 가능성을 작품에 시사하기도 했다. 게다가 컴맹이었던 윌리엄 깁슨은 전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가상 현실을 처음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렇듯 SF 속의 미래는 다 맞지는 않더라도 참고할 가치가 있다.
최소한 가까운 미래의-혹은 먼 훗날의- 세상 얘기라면 점쟁이에게 복채를 갖다 받치는 것보다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가. 이를테면 1999년 세계가 멸망한다는 얘기로 신경을 끌었던 프랑스의 노~모 풍자 시인보다 말이다.
미래에 과학이 발달하면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들은 더 살기 좋아질 것이다.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유토피아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모든 것은 과학으로 해결된다.
전쟁? 당연히 없다. 질병? 잊혀진 지 오래다. 조금 지루하긴 하겠지만 영원히 살고 싶다면 그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암 따윈 주사 한방으로 치료되고, 에이즈니 조류 독감이니 하는 건 ‘환상 속의 그대~~’ 누구나 평등하게 행복을 누리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어~~♪’라는 노래가 절로 흘러나올 듯한 그런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바로 SF 속의 미래 세계에서 말이다.조금 오래된 영화지만, 실버스타 스탤론의 ‘데몰리션맨’을 보자. 여기서 냉동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주인공은 황당한 미래를 경험하게 된다. 종이 한 장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는 말 한마디면 다 해결되는 자동차가 멋대로 굴러다니고 있고, 거리를 돌아다니면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사람들이 친절하게 말을 걸어온다.
욕설 한마디 들을 수 없는 데다 칼조차 찾을 수 없는 평화로운 세계. 얼마나 평화로운지 고대(?)의 무기들은 모두 당장이라도 쓸 수 있는 상태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여기의 안내원은 이걸 강탈하려는 범죄자에게조차 친절한 미소로 응대한다. 그야말로 천사 아니, 바보라고 해야 할까?
범죄가 없는 것이 유토피아라고 한다면,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어떨까? 이 작품에는 경찰들이 꿈꾸었던 가능성 바로 범죄율 제로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초능력자들을 이용해서 미래를 보고 ‘앞으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사전에 발견해서 체포해 버리는 것이다.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 사라져 버리니 범죄율 제로는 당연하지 않은가. 그 뿐인가, 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이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거리를 걷기만 해도 그에게 맞춘 광고나 정보가 흘러나오고 최적의 인터페이스가 그들을 맞이한다. 키보드를 두드릴 필요도 없고 마우스를 움직일 필요도 없다. 오죽하면 자동차조차 수직으로 벽을 올라갈까.
‘아이! 로봇’이나 ‘우주소년 아톰’은 어떨까.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로봇’들은 힘든 소리 하나 없이 우리들을 도와준다. 다리 아픈 노인(그런 노인이 있다면 말이지만)들도 걱정할 필요없다. 길을 건너려 하면 어디선가 아톰이 나타나 건네줄 테니까.
그래도 부족하면 미래에서 온 고양이 로봇은 어떨까? 하늘을 나르는 ‘대나무 콥터’에서부터 절대로 지각하지 않게 해 주는 ‘어디로든 문’에 이르기까지 뭐든 맘대로 꺼내줄 것이다. 병이 두렵다면 ‘아일랜드’가 있는 한 우리는 걱정할게 없다. 심장이든 뭐든 복제된 장기로 얼마든지 대체해 줄 수 있을 테니까.(가격이 조금 비싸다는게 흠이다)
심지어 ‘공각기동대’에선 뇌까지 기계로 바꾸어 준다. 남자가 싫다면 여자로, 그래도 귀찮다면 아이로…. 하지만 세상에 천국이 있으면 지옥이 있는 법이다. SF 세계에서도 그 반대의 세계는 등장한다. 바로 디스토피아라는 이름의 지옥이다.‘디스토피아’ 그것은 간단히 말하면 현실의 지옥이다. ‘유토피아’가 더 이상 좋을 수 없다를 연발한다면, ‘디스토피아’는 더 이상 불행할 수 없는 장송곡이 울려 퍼지는 세계다. 그야말로 죽지 못해서 사는 그런 세계의 이야기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조지 오웰의 ‘1984’를 보자. 이 작품은 공산국가나 전제국가에 대한 가장 노골적인 비판을 하며 가상적인 세계의 1984년을 무대로 한다. 국가에 의해 모든 것이 통제되는 가운데 사람들은 철저한 감시를 받는다.
사람이 돌아다니는 모든 곳-심지어 골목에도-에 선전 영상이 흘러나오는 대형 화면이 설치되고, 국민들은 이 화면으로 감시 당한다. 심지어 그 화면에 노출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세뇌에 세뇌를 거쳐 인간의 마음까지도 지배하는 절대적인 지도자 그것이 대형(Big Brother) 그리고 국민들에겐 대형에 대한 절대적 충성 외의 모든 감정이 용납될 수 없는 세계다.
끝없는 감시와 세뇌로 국민들을 통제하는 사회. 그것은 ‘배트맨 비긴즈’에서 열연을 보인 크리스챤 베일의 출연작 ‘이퀼리브리엄’에서 충실하게 계승되고 있다. 3차 대전으로 인해 멸망 위기에 몰렸던 인류는 이러한 오류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서 인류에게 악영향을 주는 요인 ‘감정’을 없애기로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매일 같이 지도자의 세뇌 영상을 접하게 되는 가운데 감정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약물을 맞으며, 이 조치에 반대하는 이들을 -설사 가족이라도- 가차없이 처단한다. 물론 그런 세계라고 해도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처럼 기계에 의해 모든 게 지배되는 미래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SF 속의 지옥얘기가 더욱 무서운 것은 ‘1984’ 속의 상황이 지금 실제로 펼쳐지고 있으며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천국과 지옥…. SF 속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군상들은 어떤 점에서 지금 우리의 현실, 그리고 미래를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우리에게 좋은 미래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데몰리션맨’에서 스탤론이 남긴 말이 있다. “당신은 좀 더 깨끗해지고, 당신은 좀 더 지저분해지시오. 그 중간은 나도 모르겠소.”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천국도 지옥도 아니라, 그 중간 쯤에서 적당히 만족하고 사는 게 아닐까. 물론 그 중간 역시 매우 다양하지만 말이다.SF 칼럼리스트. 게임아카데미에서 SF 소재론을 강의 중이며, 띵 소프트에서 스토리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스페이스 판타지(http:www.joysf.com)란 팬 페이지로 유명하다.
<전홍식 pyodogi@sfwar.com>
많이 본 뉴스
-
1
테슬라, 중국산 '뉴 모델 Y' 2분기 韓 출시…1200만원 가격 인상
-
2
'좁쌀보다 작은 통합 반도체'…TI, 극초소형 MCU 출시
-
3
필옵틱스, 유리기판 '싱귤레이션' 장비 1호기 출하
-
4
단독민주당 '과학기술정보통신AI부' 설립·부총리급 격상 추진
-
5
'전고체 시동' 엠플러스, LG엔솔에 패키징 장비 공급
-
6
헌재, 감사원장·검사 3명 탄핵 모두 기각..8명 전원 일치
-
7
모바일 주민등록증 전국 발급 개시…디지털 신분증 시대 도약
-
8
최상목, 14일 임시국무회의 소집..명태균특별법 거부권 행사 결정
-
9
구형 갤럭시도 삼성 '개인비서' 쓴다…내달부터 원UI 7 정식 배포
-
10
공공·민간 가리지 않고 사이버공격 기승…'디도스'·'크리덴셜 스터핑' 주의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