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로봇업계에 시장의 관심과 투자가 몰리면서 업체들은 신규채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원하는 조건의 인력을 확보하는 비율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사람을 구하려 연구소장 등이 개인적 인맥을 총동원해 스카우트전을 벌이는 것은 업계의 흔한 일이 됐다. 로봇업계서 주목받는 한 중소기업의 경우 시스템 설계 전문가 단 한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가 회사를 옮길 경우 제품개발에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된다. 한 자동화 관련 부품업체는 개발을 담당해온 부장급 연구원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제품 개발이 6개월 정도 지연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한 중소벤처 사장은 “대기업에서 인력을 싹쓸이하는 바람에 작년에 비해 지원자의 수와 수준이 크게 떨어졌다”며 “결국 전문지식과 무관하게 성실해 보이는 사람을 뽑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사례2. 로봇시장 규모에 대한 국내 집계와 세계 시장조사기관의 집계 오차 등이 전체 시장규모의 40%까지 들쭉날쭉하다. 이에 따라 기업은 정확한 시장 분석과 사업계획 작성에 어려움이 많다. 한 회사는 돈이 안되는 로봇사업을 접다시피 했다가 로봇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자 다시 사람을 뽑아 로봇사업을 재개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트렌드에 따라가는 주먹구구식의 사업행태다. 2013년 정부의 목표로 설정된 총 생산 30조원, 수출 200억달러를 전망하는 일도 쉽지 않다. 지능로봇산업협회와 로보틱스연구조합 등이 지난해 말 산업실태 조사를 벌이며 2010년 시장전망을 내놓기로 했지만 1차 집계후 한달 넘게 재조사를 벌이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직 시장이 구체적인 형태를 나타내지 않은 가운데 지능형서비스로봇 시장의 미래규모를 전망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지적이다.
사례3. 기술수준을 보여주는 각종 전시회의 꽃으로 로봇이 화려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세계각국 정상의 눈길을 사로 잡았던 휴머노이드 알버트 휴보의 얼굴 부분이 미국 헐리우드의 전문회사에서 제작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망신을 당했다. 정통부와 산자부가 공동개최한 한 행사에서는 국내 대표 휴머노이드인 휴보와 마루가 악수하는 장면을 연출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사람이 잡고 흔드는 힘을 줘야했던 것. 결국 사람이 가운데서 양손으로 두 로봇의 손을 잡고 흔드는 것으로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다.
로봇이 차세대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가과제로 부상하면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대책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로봇에 대한 장밋빛 전망과 보여주기식 로봇 문화로는 오히려 시장의 기대수준만을 높여 지능형서비스로봇의 상품화와 로봇산업의 혁신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김성권 산업기술대 교수는 “로봇산업은 실제 상품을 만들어본 경험을 가진 프로(pro)다운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실과 기대수준의 괴리로 캐즘(초기진입장벽)을 헤쳐나가지 못하는 대표적 분야로 음성인식을 꼽고 있다. 과거 음성인식 기술은 첩보원으로 분한 안성기씨가 ‘본부! 본부!’를 외치며 전화를 연결하는 한 휴대폰 광고로 시장의 궁금증을 끌어올리는데 까지는 성공했지만 실제 성능이 크게 못미친다는다는 점 때문에 시장의 실망만 키우는 결과를 빚었다. 아직까지 음성인식 분야에 꽃망울이 터지지 않는 것은 진입초기 기대수준이 허물어진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로봇분야도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며 시장을 만들어야 21세기 로봇강국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커졌다. “보여주기식, 드러내기식 로봇정책은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정확한 현실파악에 이어 요소기술 개발지원, 상품화 모색을 위한 시범사업, 통계·법제 등 인프라 구축으로 체력을 다져야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산자부 유정열 로봇산업팀장의 말이다.
동시에 우리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 살려야 하는 시점이다. 로봇개발, 각종 시범사업을 통한 로봇 생활문화 가시화, 비즈니스 모델 도출, 로봇 조기상품화의 과정을 앞당겨 IT에 이어 제2의 성공신화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오상록 정통부 지능형 로봇 PM은 “로봇을 아톰과 같은 수준이 아니라 가전제품으로 인식하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로 사람들이 로봇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PM은 “올해 사업으로서의 로봇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며 “향후 외국기업의 진입시 우리기업의 포지셔닝, 일본과의 경쟁에서 우리가 보여줄 무기를 차차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로봇산업의 현황
우리나라 로봇산업 구조는 제조업용 로봇중심으로 편성돼 있다. 3500억원의 세계 6위 수준 규모중 3000억원 가량이 제조업용 로봇이고 나머지 서비스로봇 중에서도 교육용과 완구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미래 대형시장이 될 것으로 판단되는 지능형서비스로봇의 경우 중소기업 위주로 진용이 짜여졌다. 대기업들이 전자제품 제조용·자동차 제조용 로봇에 집중하는 반면 중소기업이 서비스로봇에 주력하는 양극화 구조를 갖추고 있다. 특히 80년대 말∼90년대 중반까지 자동화산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대부분의 대기업이 로봇산업에 뛰어들었으나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LG산전, 대우중공업, 기아정공 등 대기업의 로봇사업 철수가 줄을 이었다. 이에 따라 로봇 수출은 2003년 609억원, 수입은 1102억원 규모로 99년 이래 매년 수입비중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서비스로봇 분야는 기술의 깊이와 응용분야가 제한적이다. 제조업용 로봇의 경우 그나마 로봇설계·제작 등에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전문서비스용 로봇은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전체 기술수준은 선진국 대비 80%. 원천기술은 3∼5년의 기술격차를 경험하고 있다. 37개의 중분류 기술중 23개 분야에서 선진국에 비해 경쟁력이 미흡하고 14개 분야만 동등 이상의 기술력을 갖췄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특히 모듈별 전문화가 부족하고 기업간 기술 연계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받고 있다. 또 구동기·감속기·베어링과 같은 핵심기술·핵심부품의 국산화율이 20% 이하로 제품 가격 경쟁력이 취약한 상황. 산자부는 “센서·시각·음성인식 등 첨단기반기술에 대한 기초연구와 모듈화가 미미하고 부품 국산화율이 저조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반면 산업용 로봇으로 쌓아온 로봇시스템 기술 경쟁력과 세계 최고 수준의 IT 및 생산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점은 강점으로 꼽힌다. 또한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라 다양한 로봇관련 잠재시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국내 로봇산업에 기대를 걸 부분이다.
◆인터뷰-김종형 서울산업대 교수
김종형 서울산업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는 로봇의 정의를 빨리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아직 로봇상품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을 못하고 있는데 미래의 큰 시장을 목표로 정책을 세운다는 것부터 상식적으로 모순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실행가능한 목표별로 단계화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2013년 달성 목표와 현재의 역량이 아직 매칭이 되지 않습니다. 기업들이 구체적인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중간목표를 제시해야 합니다.”
김 교수는 우리의 기술 수준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했다. “현재 개발되는 로봇은 로봇기술보다는 시스템 통합(SI) 기술의 결과물입니다. 부품·소재·소프트웨어 등 각 분야의 핵심기술을 진화시키는 것이 당장 로봇을 만드는 일만큼 중요합니다.” 이와 함께 시장을 끌어당길 수 있는 킬러애플리케이션, 기술표준화, 인력양성, 타 산업과의 연계 등 산적한 과제를 차근차근 밟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력양성 위한 교육도 문제점이다. 그는 “로봇 관련학과는 많은데 로봇으로 집중이 안되는 양상”이라며 “학문적 의미보다는 제품의 개념으로 접근하기 위한 표준화된 교과과정을 만들기가 어렵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부분기술보다는 시스템 엔지니어를 양성할 수 있는 질 높은 엔지니어 양성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10여년전 삼성전자에서 로봇R&D를 담당하고 이후 수년 째 로봇 분야 후학을 양성해온 로봇전문가. 지능형 서비스로봇의 상품화는 3만달러 이상의 국민소득 등 경제적 환경과 생활문화, 시장환경 등이 뒷받침돼야 하는 일. 따라서 이를 앞당기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로봇은 특히 소비자의 역할이 큽니다. 로봇이 문화로 정착될 수 있는 성숙된 환경이 필요하죠.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게 아니라 신산업을 창출하는 메커니즘이 면밀히 검토돼야 합니다.” 결국 이같은 한계로 대기업들이 로봇사업 참여를 여전히 꺼리고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따라서 기업, 소비자, 정부가 서로 정보의 균형을 맞추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장이 하루 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석기자@전자신문, y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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