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팀장님, 서울의 김 팀장입니다. 어제 보내주신 게임의 주인공 캐릭터가 너무 평범한 것 같습니다. 이대로는 유저들 입맛을 맞추기가 힘듭니다. 우리 기획팀 회의에서는 좀더 과감하게 4등신으로 가고 표정도 다채로워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검토해 보시고 바로 회신해 주시기 바랍니다.’-오전 10시 서울
‘김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평양의 박 팀장입니다. 점심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우선 캐릭터가 마음에 안 드신다고 하니 죄송합니다. 우리 쪽에선 좀 현실감 있게 디자인해 보려고 했는데 기획의도와 어긋난 것 같습니다. 다시 작업해서 내일 시안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참, 지난주 개성에서 있었던 기술교육에 대한 우리 직원들의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다음에 다시 한 번 좋은 자리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오후 2시 평양
믿기 어렵겠지만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 간 게임산업 교류의 한 모습이다. 남북의 기업이 계약을 하고 도장을 찍고, 인터넷을 통해 회의와 정보 교환을 하며, 대면이 필요할 경우 서울에서 승용차를 몰고 개성까지 달려가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한다. 이렇게 탄생한 남북 합작 게임은 수십종에 달하며, 이미 10여종이 서비스중이다.
21세기의 시작은 한반도 정세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분단 50년 만에 멀기만 해보였던 남북 관계의 변화가 실현되기 시작했고, 보이지 않던 철책 너머의 초점이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이 금강산 관광, 남북 경협, 6자 회담 등 큼지막한 이슈들로 구체화되며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을 때, 남북 게임산업의 교류가 자발적인 민간주도로 조용히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아시아의 한류 열풍에 드라마와 영화·음악이 큰 공헌을 하며 고무되기 수년 전부터 세계 각국은 한국의 게임에 매료되었고, 어느덧 전세계의 1억이 넘는 인구가 한국의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점은 게임산업이 남북교류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데 기대를 걸게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남북 간 게임산업 교류의 중요성을 몇 가지 살펴보자. 먼저, 우리는 우수한 인력 수급이 절실한 상황이다. 현재 대다수의 게임기업은 게임개발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각 대학에서 게임관련 학과를 신설하고, 게임교육기관이 설립되고 있지만 국내 게임산업이 발전하는 속도에 비하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이나 동남아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긴 하나, 기술수준의 격차와 국내 기술의 해외 유출이라는 반대급부가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낮은 인건비와 수준 높은 고급 인력의 확보라는 점에서 북한은 매력적이다.
둘째, 북한의 상황을 살펴보자. 북한은 우수한 기초과학과 탄탄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조금의 지원만 이루어진다면 수준 있는 게임을 개발할 수 있다. 게다가 타 산업과 달리 이념의 장벽에서 많은 부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앞서 밝혔던 국내 기술의 해외 유출이라는 점에서 중국에 비해 한결 걱정이 덜하다. 김정일 위원장이 정보통신 산업이 경제회복을 위한 ‘단번 도약’의 중심고리라고 강조한 점이나 최근에 중국을 방문했을 때 경제 특구에 큰 관심을 보였다는 개혁·개방의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게임산업이 남북관계에 기여할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남북이 손을 잡고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다. 향후 세계 게임시장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이며 2007년에는 757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남북이 공통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모바일게임 시장의 성장률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돼 주목할 만하다. 단순히 교류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외화 획득이라는 실질적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가치있는 일이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남북 간 문화 격차 해소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재 북한을 통해 게임을 공급받는 국내 기업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기술력과 예술창작력은 충분하나 최신 유행에 떨어지는 점이 많다. 김일성대학·김책공업종합대학 출신 같은 엘리트들이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북한 상황을 고려해볼 때, 이들이 게임 품질향상을 위해서는 남한 등의 글로벌 트렌드에 관심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미 우리는 게임을 통해 남녀노소가 하나되고, 세계가 친구가 되는 현상을 봐왔다. 남북이 공동으로 게임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즐기는 동안 어느덧 하나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우종식 한국게임산업개발원장 jswoo@kgdi.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