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많은 팬들은 SF(Science Fiction)를 ‘과학 소설’이라 부른다. 필자는 찬성하기 어렵지만 이것은 SF라는 장르가 그만큼 소설과 관련이 깊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게임이나 영화, 애니메이션 등 수많은 SF 작품을 소개했지만 사실 SF는 무엇보다도 글로 시작됐다. 때문에-어렵다는 인식이 강하긴 하지만- SF에 대해서 알고자 하면, 그리고 나아가 SF를 만들어 보고자 한다면 우선은 SF의 시초인 소설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하늘에서 번개가 친다. 과연 번개는 왜 칠까? 오랜 옛날 사람들은 그들을 놀라게 하고 때로는 그들을 해치기도 하는 번개의 위력에 두려워하면서도 그것의 정체를 궁금해 했고, 나름대로 과학적인 추리를 거쳐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웠다.
가령, 번개가 칠 때는 폭풍이 밀려온다는 것을 기준으로 그들은 ‘폭풍신이 분노한 것’이라고 하기도 했고, 위대한 천신의 무기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한편으로 폭풍의 정령들이 춤을 추는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허황되기 이를데 없는 일이었지만, 18세기에 이르러 벤자민 플랭클린이 목숨을 걸고 ‘번개는 전기’라고 입증하기 전까지 세상의 모든 이들은 그런 가설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가설을 바탕으로 번개신이나 정령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노래로서 부르곤 했다. 신과 정령에 대한 설화. 바로 신화와 전설의 시작인 것이다. SF는 과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며,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세상의 질서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탄생시킨 신화나 전설 역시 SF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화나 전설은 SF만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문학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으니 조금 비약적인 말이 될까?
하지만, 그렇게 수많은 전설이나 설화 속에서 초기 SF라고 보아도 좋을 만한 작품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오늘날에도 흔히 회자되곤 하는 ‘아틀란티스의 전설’이다.
그것은, 그리스 시대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과학자인(당시엔 철학과 과학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플라톤에 의해 창조된 이야기이다. 혹자들은 그 이야기는 창작이 아니라 진실의 기록이며 아틀란티스는 실재했다지만, 적어도 플라톤이 기술한 그대로의 아틀란티스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없다. 그것이 진실에 기인했건 아니건 여하튼 플라톤은 그 나름의 상상력을 결합시켜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플라톤은 “헤라클레스의 기둥 너머 멀리 떨어진 곳에 아틀란티스라는 대륙이 있었다. 철학자들에 의해 지배되는 그 세계는 오리하르콘이라는 독특한 물질로 번성했지만 세계를 지배하려했기 때문에 신의 분노를 사 멸망했다.”고 기술했다.
대화편 중 일부에서 출현되는 이 내용의 뜻은 뭘까? 이를 그대로 보면 ‘아틀란티스라는 대륙이 있었고 멸망했구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철학자에 의해 정의롭게 다스려지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플라톤은 이 내용을 통해서 자신이 항상 주장하고 있는 이상향을 그려나가고자 했다. 하지만 단순히 “철학자가 다스리면 좋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법. 그래서 그는 당시 지중해에 잘 알려진 여러 세계의 멸망 이야기를 뒤섞고 자신의 상상력을 더하여 ‘아틀란티스 전설’이라는 것을 창조한 것이다. 말하자면 정치적 주장을 보다 알아듣기 쉽게 소설로서 각색한 것이라 할까?
플라톤 만이 아니다, 16세기의 학자 토머스 무어도, 그리고 18세기의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도 각각 ‘유토피아’와 ‘걸리버 여행기’라는 작품을 통하여 당시 세태를 풍자하는 한편, 독특한 세계관을 선보였다. 특히 ‘걸리버 여행기’는 국내에선 동화로만 인식되었지만 조나단 스위프트는 안데르센이나 그림 형제가 아니었고, 그 작품 역시 정치 풍자를 위해 쓰여 졌다.
대개 소인국 편만 알려졌지만 원작에는 그 밖에도 거인국, 하늘을 나는 나라, 그리고 말의 나라 등이 존재하고 있는데 그들 세계에 대한 매우 사실적인 묘사와 신랄한 비판은 사회과학적인 면에서 살펴보아도 충분한 완성도를 보여준다(4개 왕국 중 하늘을 나는 나라의 이름은 라퓨타. 바로 미야자키 하야호의 명작 ‘천공의 성 라퓨타’는 여기서 이름을 따 왔다).하지만 이들 작품을 SF라 부르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다. 그것은 여기에 ‘인문계’로서의 과학은 포함되었지만 아무래도 ‘이공계’의 과학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기술에 나오는 ‘오리하르콘’은 그후 수많은 작품에 영감을 주었지만 역시 이공계의 과학이라 하기는 부족하고 다른 작품들도 그런 면에서 부실하다. 생각에만 빠져 현실을 살아가지 않는 라퓨타의 주민들은 가상현실을 연상케하지만 컴퓨터는 고사하고 전기조차 없는 상황에서 SF라면 어딘지 어색하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전기에 의해서 태어난 인조인간을 다룬 ‘프랑켄슈타인’이라면 SF의 시초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1818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당시 유행하던 생체 전기라는 것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당시엔 생물은 전기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견해가 있었는데(죽은 개구리 다리에 전극을 연결하면 뛰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죽은 시체에 전기를 흘려주면 되살아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이 작품을 탄생시켰다.
완벽한 인간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시체를 모은 프랑켄슈타인 박사. 그러나 번개에 의해 살아난 것은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 살인귀의 뇌를 가진 괴물이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신의 영역에 손을 대려는 인간에 대한 응징을 다룬 작품이라 할까? 이러한 견해는 후일 초기의 로봇물에 영향을 주었고 ‘터미네이터’ ‘쥬라기공원’ 등에도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괴물의 이름으로 잘못 알려진(이 작품 속의 괴물에는 이름이 없다) 이 작품의 제목은 알고 있어도 이걸 SF라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건 ‘과학적인 상상’이라는 목적으로 쓰여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과학과는 거리가 멀었던 평범한 숙녀가 썼다는 점도 감점 대상이 될지 모른다. 역시 SF는 과학자가 써야 한다는 엉뚱한 견해를 가진 이들도 많으니 말이다.
이 흥겨운 이야기도 앨런 포의 모험물에서 시작되었다.
그런 점에서 애드거 앨런 포라면 SF작가로서 불평이 없을 것이다. 뒤팽이라는 탐정을 탄생시키고 ‘검은 고양이’ ‘모르그가의 살인사건’ 등으로 유명한 이 사람은 탐정 소설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다양한 과학 논문을 발표했으며 지구 공동설(지구가 비어있다는 견해)이나 기구를 이용한 달 여행, 그리고 기구를 이용해서 대양을 횡단하며 통신이 보편화된 놀라운 미래를 그려 나가는 SF의 창시자이기도 했다.
지나치게 기구에만 얽매여 있긴 했지만 인간이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또한 우주까지 갈 수 있다는 진보된 발상은 그 후 쥘 베른이나 H.G.웰즈, 그리고 코난 도일 같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80일간의 세계 일주’나 ‘15소년 표류기’ ‘해저 2만리’ 등의 작가인 쥘 베른, 그리고 ‘우주전쟁’, ‘타임머신’, ‘투명인간’ 등을 만든 H.G.웰즈라면 몰라도 ‘코난 도일이 SF 작가?’라는 말에는 이견이 있을지 모른다. 여하튼 코난 도일이라면 ‘주홍색 연구’를 시작으로 셜록 홈즈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니까.
코난 도일의 상상력은 후일 ‘킹콩’ 등의 작품에도 계승되었고 ‘쥬라기 공원’을 낳기도 했다.
이에 대한 의문은 ‘쥬라기 공원 2’의 제목인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가 그의 작품 중 하나에서 따 왔다는 말로 대신해 보자. 현대적인 범죄 과학을 제창하여 ‘CSI 과학수사대’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코난 도일이지만, 그는 동시에 ‘잃어버린 세계’, ‘마라코트 심해’ 등의 작품으로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는 가능성을 연출한 SF작가이기도 했다.
이렇듯 플라톤을 시작으로 애드거 앨런 포, 그리고 쥘 베른이나 코난 도일, 그리고 HG 웰즈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이야기를 그대로, 혹은 환상을 섞어서 쓰기보다는 보다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상상력을 통해 예측하여 써 나갔던 이들. 한때 예언자라고까지 불리었던 그들의 노력 속에 이른바 SF라 불리는 작품들은 탄생했고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며 새로운 가능성을 낳았다. 하지만, 당시 이들은 SF라 불리지 않았으며 그 이름은 이들의 후계자들에 의해 만들어져 계승된다. 바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수많은 SF 작가들에 의해서….SF 칼럼리스트. 게임 아카데미에서 SF 소재론을 강의 중이며, 띵 소프트에서 스토리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SF WAR 클럽(www.joysf.com)이란 팬 페이지로 유명하다.
<전홍식 pyodogi@sfw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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