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과학기술과 가치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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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에 맞서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불패신화는 완벽한 전투 준비, 치밀한 정보 수집, 뛰어난 전략 전술이 큰 몫을 담당했다. 이와 더불어 남해안 지형에 맞는 판옥선과 무적의 돌격함 거북선(龜船) 등 뛰어난 전함을 보유한 것도 승리의 견인차였다. 임진왜란 훨씬 이전에 이미 거북선의 초기 형태가 존재했으나, 왜란에 대비하여 실제 전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실용화한 것은 이 장군의 큰 업적 중 하나다. 이렇듯 아무리 우수한 기술이라도 실용화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면 한낱 무용지물이라 할 수 있다.

 IBM은 루이스 거스너가 CEO로 취임하면서 전략적 기술은 자신들이 상용화하는 대신 자사에서 중요도가 낮은 비전략 기술은 다른 기업에 적극적으로 이전한 결과, 현재 매년 2조원 이상의 기술료를 거두어 들이고 있다. 특허와 라이선싱을 통해 고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기업만이 아니다. 미국의 스탠퍼드대학과 프랑스의 파스퇴르연구소는 기술료만으로 연간 500억원을 상회하는 수입을 거두고 있다. 이는 자칫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는 R&D 성과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상용화 개발(BD:Business Development)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 온 결과다.

 대학과 공공 연구기관이 상용화 개발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기술이전과 기술료 성과를 올린다는 것은 단순히 R&D 재투자를 위한 재원 마련을 떠나 국민의 세금으로 개발된 기술이 산업계에 활용됨으로써 국가경쟁력 향상과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다는 측면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KIST에서도 창의적 원천기술의 개발과 확산에 큰 관심을 가지고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 R&D에서 성과 확산의 개념을 포함한 R&BD(Research and Business Development)로의 변화를 의미하며, 그 핵심은 R&D의 직접적 산물인 과학적 지식을 산업 전반으로 파급시킴으로써 국민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일환으로 KIST에서는 선 기획단계(pre-planning stage)에서부터 기술적·시장적 타당성을 면밀히 검토하여 세계적 경쟁력 확보가 가능한 기술개발 어젠다를 발굴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연구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공공 연구기관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R&D 기획모델 개발과 시범사례 적용, 전문화된 교육 프로그램 운용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또 개발된 R&D 성과의 대외 확산을 촉진하기 위한 전략적 특허관리와 역량 있는 상용화 파트너를 찾아가는 타깃 마케팅과 같은 제도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상용화의 가장 큰 걸림돌인 원천기술과 제품 사이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서 원천기술 상용화를 위한 추가 R&D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과학적 지식의 개발과 보급을 위한 R&BD 시스템 속에서 태어난 기술들은 우수한 유전 형질과 강한 체력을 가진 생명체와 같이 상용화 개발의 험난한 고비인 죽음의 계곡을 건너 기술 사업화라는 다윈의 바다에서 적자생존할 수 있는 확률을 높여줄 것이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과학기술을 창출하기 위한 산고를 감내하고, 변화의 노력을 기울이는 게 21세기 기술강국 도약을 이룩하고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앞당기는 첩경이 된다.

◆ 김유승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yosekim@kis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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