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들어 통신·방송 시장에 강도 높은 규제의 칼을 들이댔던 공정거래위원회의 허선 사무처장이 처음으로 각종 세부 현안에 대해 ‘규제철학’을 밝혔다. 허 처장은 그동안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던 통신·방송 규제정책에 관여한다며 중복규제·영역침탈 등 비판적인 시선도 받았지만, 준사법기관이자 공정거래 전문감시기구로서 나름의 확고한 원칙을 표명했다.
올해 통신사업자 요금담합 및 유료방송 시장 실태조사를 진두지휘하며 공정위의 위상과 역할을 강조했던 허 처장을 직접 만나 통신·방송 규제정책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이동통신 단말기 보조금 지급금지 법 연장안에 대한 생각은.
▲당초 3년 한시법으로 만들어졌으면 일몰되는 것이 맞다. 도입될 당시 명분으로 내세웠던 자원낭비 등의 우려도 지금은 사라졌다. 보조금 규제가 실효성이 없으니까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고 이는 대규모 과징금을 양산해왔다.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이 차단되는 것이다.
-KT의 시내전화와 SK텔레콤의 음성통화 요금인가제는 바람직한가.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약탈적 요금 설정을 우려한 정책이라면 이제는 시장환경에 맞지 않다. 산업 초기 공공재 성격이 강한 서비스라면 몰라도 이제는 성숙할만큼 했으니, 당연히 시장경제 원리에 맡겨야 한다. 가격 경쟁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당연한 경쟁원칙이고 그것이 또한 소비자 편익에도 맞는 이치다. 완전한 민간 시장인 통신서비스 요금에 강력한 사전규제 장치인 인가제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인가제 철폐 후 약탈적 요금행위가 우려된다면 단계적으로 요금상한제 등을 도입하면 된다. 요금규제는 완전히 풀어야 한다.
-현재 진행중인 이동통신 요금담합 여부 조사는.
▲조사가 진행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 다만 음성통화·SMS요금 담합 여부가 중점 조사 대상이며, 현재로선 ‘합리적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통상 조사를 벌이다가도 자료가 미흡하거나 혐의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되면 사건을 종결 처리하지만, 이 사안은 그렇지 않다는 점만 말할 수 있다. 연내 조사 결과가 마무리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나 최대한 이른 시일 내 마무리하겠다.
-유선전화·이동통신 요금담합 여부가 정통부의 행정지도에 따른 것이라면.
▲분명히 밝히지만 지난 유선전화 요금담합 행위에 대한 판단이나 조사 진행중인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담합 혐의도 정통부의 행정지도와 무관하다. 행정지도의 타당성 문제와는 별개라는 뜻이다. KT와 SK텔레콤 등 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요금인가제와는 무관하게 사업자들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른 ‘카르텔’ 여부가 문제다. 또한 공정거래법에 우선하는 행정지도는 있을 수 없다.
-정통부는 현재 KT의 시내전화와 SK텔레콤의 이동전화에 대해 결합서비스 판매를 규제하고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시장 경쟁원리나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 보면 원칙적으로 규제가 없어야 한다. 규제를 하더라도 사후규제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KT와 SK텔레콤의 시장지배력 전이에 대해 우려하는데, 이 또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충분히 사후 규제로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필수설비 접근이 더욱 확대돼야 할 것으로 보나.
▲필수설비 공동이용을 강제하는 방식의 규제는 시장 환경과 공정경쟁 원리 측면에서 사안별로 해석돼야 한다. 일률적으로 규제 확대 또는 축소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다. SK텔레콤의 이동통신망에 대한 강제로밍은 필수설비로 규정하지 않더라도 집행할 수 있는 사안으로 본다.
-통신사업자 간 접속료 규제에 대한 견해는.
▲정통부가 결정할 사안이나 시장 경쟁상황이 충분히 성숙하면 해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사업자 간 협의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사후인가제로 바꾸고 사업자 간 차별대우 금지제도 등을 통해 간접 규제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KT·SK텔레콤 등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타 사업자 인수합병(M&A)에 대한 견해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갖고 있는 특정 시장의 ‘지배력’이 M&A 허가여부의 관건일 수는 없다. 시장의 공정경쟁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사업자들이 경쟁력을 높이고 소비자 편익도 증대된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과거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합병 사례처럼 KT가 KTF를, SK텔레콤이 다른 유선사업자를 M&A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통신시장에 대해 추가 조사할 계획은 있나.
▲지난번 KT 등 유선전화 사업자의 요금담합건과 현재 진행중인 이동통신 사업자 요금담합건 모두 충분히 경종을 울릴 만하다고 본다. 만약 또다시 부당행위가 나타난다면 조사하겠지만 지금으로선 통신사업자들의 자발적인 개선 노력이 이뤄질 것으로 판단한다.
-정통부의 통신시장 비대칭 규제정책에 대한 견해는.
▲초기 산업 육성을 위해 도입된 정책인만큼 시장환경 변화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기본적으로 법에 명시된 규제에만 최소한으로 적용돼야 하며, 이제는 산업이 충분히 성숙한만큼 시장친화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통신·방송 융합시대에 맞는 공정위의 새 규제철학은 있나.
▲현재 통신·방송산업이 빠르게 융합, 발전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해 관련 시장획정 등 기초 작업을 진행중이다. 기존에 별개로 획정됐던 통신·방송 시장을 어떻게 정의하고 특정사업자의 시장 지배력도 어떻게 판단할지 포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통신사업자에 대한 특정 조사사안을 인지한 시점부터 정통부와 사전 협의하는 방안은 어떻게 판단하나.
▲지금도 각종 업무협약이나 법령 혐의를 통해 충분히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다만 양 부처 간 업무분장이 명확이 이뤄진만큼 특정 사안을 인지한 시점부터 사전 협의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각 부처 직원들이 서로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실질적인 정보교환을 촉진하기 위해 직원들 간 인사교류는 긍정적이다.
-유료방송 실태조사의 배경과 결과는.
▲SO·PP 등 최근 들어 유료방송 시장이 크게 확대되면서 각종 불공정 행위도 늘고 있다. 이미 올 초부터 공정위는 언론이나 문헌, 설문조사 등을 통해 사전조사를 진행한 바 있으며 이를 토대로 현장조사를 벌였다. 공정위는 이번 유료방송 실태조사를 계기로 관련 시장의 불공정 관행을 대대적으로 개선할 계획이며 현재 조사결과 보고서를 마무리했다. 주요 조사 내용은 SO·PP 간 불공정거래행위 및 일부 SO의 수신료 담합행위다. 조사결과 법 위반으로 드러나면 내년 초 위원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내년에도 유료방송 시장 조사계획이 있나.
▲유료방송 시장의 공정 거래질서 정착을 유도하기 위해 내년에도 서면 실태조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 또한 법 위반 혐의가 나타나면 현장확인 조사를 통해 시정조치 등 후속작업을 벌일 생각이다. 이번 기회에 유료 방송시장의 질서를 바로잡겠다.
서한기자@전자신문, hse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