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기획]한·중 아이템 불법유통조직 적발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던 한·중 합작 기업형 아이템 거래조직의 실체가 처음으로 드러나 게임업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2003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중국인 수천명을 국내 L게임 사이트에 접속하게 해 대량으로 아이템을 만든 뒤 국내 게이머들에게 1000억원어치를 팔고 이 중 605억원을 중국으로 유출한 일당 50명을 적발했다.

특히 이들은 이를 위해 한국인 5만3000명의 주민등록번호를 해킹하는 한편 수백개에 달하는 중국내 아이템 생산 작업장을 운영한 것으로 나타나 온라인게임이 사이버범죄의 주요 표적으로 떠올랐음을 입증했다.

경찰청은 1조원대로 급성장한 국내 게임 아이템시장의 95%가 중국산으로 추정하고 있어 개인정보유출이나 한화유출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게임업계도 중국산 게임 아이템 불법 유통이 기승을 부리면서 게임 밸런싱이 무너지는 것과 함께 게임이 해킹·돈세탁 등 사이버범죄의 온상으로 전락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과 업계가 게임 아이템 불법유통조직 소탕을 위한 특별수사대를 운영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번에 적발된 게임 아이템 불법유통조직은 중국에서 만들어낸 아이템을 1005억원어치 팔아주고 이중 605억원을 환치기 수법으로 중국업자들에 송금해줬다. 한마디로 605억원에 달하는 거금이 중국으로 불법으로 유출된 셈이다.

국내 게임업체들은 이같은 불법을 막기 위해 그동안 계정관리를 통해 외국인이 국내 온라인게임 서버에 접속하는 것을 차단해왔으나 주민번호 해킹에 고스란히 보안망이 뚫린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중국인 아이템 유통업자들이 국내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해킹하거나 여행사에서 확보한 5만3000여개의 주민번호를 도용해 12만개의 게임아이디를 만들어 국내 게임사이트에 접속했다.

# 온라인게임 해킹 표적 부상

그러나 게임업계는 이번 사건이 터지자 중국인들이 국내 게임 접속을 위해 보다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해킹을 시도하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특히 지난 6월 이미 중국 해커들이 ‘리니지’를 비롯해 국내 온라인게임 이용자를 겨냥해 국내 관련사이트에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또 올들어 한국MSN, MBC ESPN, 오마이뉴스를 비롯해 엠넷, 스포츠조선, 조인스닷컴 등 대규모 사이트가 중국 해커들에 공격을 당한 것도 이번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경고한다. 5만3000여개의 주민번호 유출은 이같은 대규모 사이트 해킹을 통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인기 게임 아이템의 경우 국내에 여러개 중개사이트가 성업중인데다 수요도 끊이지 않아 얼마든지 현금화 가능한 사이버 재화”라며 “이름과 주민번호만 알면 어디서나 게임계정을 만들 수 있고, VPN 등을 통해 국내 IP인 것처럼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점을 고려해 게임접속을 위한 해킹이 크게 늘어나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온라인게임 서버 자체를 해킹해 게임속에서 아이템을 무단으로 복제하는 최첨단 신종 해킹에 대한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엠게임 관계자는 “몇몇 게임에서 특정 아이템이 갑자기 늘어나 아이템 거래사이트에서 시세가 급락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며 “사람이 게임을 통해 생산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많아 게임 자체를 해킹했다는 의혹까지 일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 국내 아이템시장 95%가 중국산?

이번 사건으로 중국내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는 게임 아이템 생산 작업장도 사회적 문제로 등장할 전망이다. 국내 게임 아이템시장이 1조원대로 커졌지만 순수 게이머들에 의해 형성되기 보다는 중국의 기형적인 작업장에 의해 형성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 박창규 경위는 이에 대해 “중국의 임금이 한국보다 훨씬 낮은 점을 이용해 게임 작업장이 1000여곳 가까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연간 1조원 규모의 아이템시장에서 95%가량이 중국산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실제 이번에 적발된 중국 작업장의 월급은 8만원으로 그동안 국내 작업장 아르바이트생들이 받던 50만원∼100만원의 월급보다 최고 10배나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게임업계에서는 중국에서 대규모 게임 아이템 생산으로 인한 게임 밸런싱 파괴 등 게임성 훼손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국회에서는 아이템 거래를 양성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어 자칫 국산 온라인게임이 중국산 아이템 거래장으로 전락할 우려마저 고조되고 있다”며 “게임 수출로 번 국부가 아이템 불법 유통으로 고스란히 유출될 판”이라고 우려했다.

# 기업형 아이템 매매꾼 등장

아이템 거래가 대형화 기업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번에 적발된 조직도 한국과 중국에서 50여명이 활동하며 수백개의 작업장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실제 주요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는 거래 회원들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거래 성사율과 선사건수를 표시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사이트는 우수회원들을 별도로 표시해 거래를 권유하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이 아이템을 전문적으로 벌어들여 사고파는 기업형 조직들이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기업화된 아이템 유통조직은 일부 아이템이나 사이버머니를 매점매석하거나 ‘작전’을 통해 시세를 조정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게임업계는 이번 사건이 터지자 보안팀을 개설하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 계정이 해킹을 통해 국내 계정으로 둔갑하더라도 해킹에 대한 직접 조사권이 없어 뾰족한 묘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도 중국 작업장이 광범위하게 퍼진 것을 감안할 때 비슷한 아이템 불법유통조직이 많을 것으로 보고 수사망을 확대할 계획이지만 게임업체의 협조없이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게임업계와 경찰 등이 아이템 불법유통을 적발하는 공동수사대를 수시로 운영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우선 1개의 IP에서 1개의 게임계정 접속만 가능토록 제한, 타인의 주민번호를 도용한 대량의 게임계정 결제 및 IP를 감추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는 VPN 차단할 예정”이라며 “향후 게임주무부처인 문화부에 수사결과를 통보하고 지속적인 수사를 위해 협력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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