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드’의 정지우 감독이 6년 만에 만든 두번째 작품 ‘사랑니’는 멜로 영화다. ‘사랑니’의 주인공 조인영은 두 사람이다. 30살 김정은이 연기하는 조인영은 학원의 수학 강사다. 그리고 17살 정유미가 연기하는 조인영은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여고생이다. 김정은의 13년전 과거 모습이 정유미일까? 그러나 그들은 한 공간에서 만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랑 이야기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시간대가 파괴되며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교감하는 ‘동감’과 ‘시월애’를 보았으며, 타임머신을 타고 간 것처럼 과거의 삶 속에 현재의 인물이 공존하는 ‘인어공주’를 경험했다. 그러므로 서사적 전개에 있어서 시간파괴를 모티프로 한 ‘사랑니’의 내러티브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충격을 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랑니’는 다르다.
정지우 감독은 ‘사랑니’에서 정교하고 섬세한 연출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30살 학원강사 조인영과 그녀에게서 수학을 배우는 17살 고등학생 이석의 만남이, 17년전 조인영이 경험한 첫사랑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며 과거와 현재의 교차편집으로 전개된다. 영화의 첫 장면은 30살 조인영의 이상한 행동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석을 유심히 바라보는 조인영, 그녀는 비오는 날, 자신의 승용차로 이석을 집까지 바래다준다. 이석을 내려놓고 돌아 나가다가 충동적으로 이석의 집까지 뛰어가 벨을 누른 뒤 다시 계단을 내려온다.
30살 여자 선생이 어린 제자를 보고 가슴을 설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욕정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조인영은 함께 동거하는 자신의 고교 시절 친구 김영재에게 말한다. 너무나 닮았다고, 이름까지 같다고. 그리고 그녀의 17살 첫사랑 이야기가 교차편집으로 전개된다. 어머니까지 ‘울프’라는 이름의 흰 털이 복실복실한 강아지를 기르지 못하게 하자 실망한 조인영은 강아지를 안고 뛰쳐나온다. 그녀가 마주친 사람은 학교 동창인 이수. 그녀 대신 강아지를 길러주겠다고 데려간 이수는, 도로를 마주하고 조인영과 걷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지금까지 우리가 과거라고 믿었던 부분은 현재와 동등선상에서 조우한다. 17살의 조인영은 도시로 이사를 간 이수의 쌍동이 동생 이석을 찾아오게 되고 이석이 다니는 학원에서 30살 조인영과 만난다. 이성적 해석을 따르자면, ‘사랑니’는 조인영과 이석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들이 똑같은 경험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사랑니’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과거는 현재와 이어지고 다시 현재는 과거에 반추된다.
성적 욕망과 섹스에 대한 솔직한 감정은 30살 조인영을 통해서 표현되지만, ‘사랑니’는 풍부한 울림을 갖고 있다. 이석과 처음 키스를 한 17살 조인영이 세탁기 앞에 앉아 있는 신은, 그녀가 이석과 첫 경험을 했음을 암시한다. 밤에 빨래를 하느냐고 핀잔하는 어머니에게 어린 조인영은 ‘속옷은 직접 빨아 입으라면서’라고 혼자 말처럼 대답한다.
30살 조인영이 이석을 데리고 모텔로 갈 때도 그들의 행동 속에는 성적 욕망의 관능 대신, 사랑의 갈증을 해소하려는 설레임이 강하게 묘사되어 있다. 결국 모텔 앞에서 망설이는 이석을 보고 30살 조인영은 다시 돌아 나온다. 차 안에 오래 앉아서 망설이는 그들에게 모텔 종업원이 빨리 차를 빼라고 말하자, 화가 난 조인영이 모텔 입구에 있는 난 화분을 들고 나오는 장면은, 그들의 순수함이 세상에 대해 저항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특히 17살 조인영 역을 맡은 정유미의 연기가 좋다. 그녀는 섬세한 감정의 떨림을 본능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 13년 전의 이수와 이석, 그리고 현재의 이석 역을 맡은 1인 3역의 이태성은 아직은 불안하지만 풋풋한 매력이 있다. 그 사이에서 김정은은 한때 코믹 퀸으로 불리웠던 모습을 완벽하게 삭제한 채, 여인으로서의 완숙한 매력을 드러낸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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