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공이건 외공이건 무협에서는 기본공으로 분류된다. 즉, 실전을 위한 무공을 배우기 전에 익혀야 할 기본이라는 것이다. 이 외에도 기본으로 분류되는 것에 보법과 경공이 있다. 이 둘은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몸 가누기라는 성격이 공통적이기 때문에 같이 언급되는 경향이 있다.
보법이란 걸음 옮기는 방법이라고 직역할 수 있겠는데 무협에서는 ‘피하기’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소위 미종보니 건곤미리보니 하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보법이 그런 것이다. 정해진 순서대로 걸음을 옮기면 적의 어떤 공격이라도 피해낸다는 것이다. 꽤나 과장된 묘사이긴 하지만 헛소리인 것만은 아니다.
실제의 보법은 공격과 방어에 있어서 공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권투의 스텝도 일종의 보법이라 할 수 있는데 중심 이동과 회피 동작의 기본이 스텝으로부터 시작되지 않는가.중국 무술에서 보법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삼재보와 반삼재보다. 삼재란 철학적으로는 천, 지, 인의 셋을 가리킨다. 삼재보는 이 이념을 담은 세 박자 걸음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삼재보의 방식으로 걸으면 어느새 적의 옆에 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적의 공격은 회피하면서 적의 사각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는 걸음법인 것이다. 삼재보가 전진하면서 걷는 방법이라면 반삼재보는 후퇴하면서 걷는 방법, 즉 뒷걸음질이라 할 수 있다. 이것 역시 세 걸음 걷고 나면 전진해온 적의 옆에 서게 된다. 마술 같지만 알고 보면 지극히 과학적인 걸음법이다.
보법은 중국의 도교 문화와 관련되어 주술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 소위 우보(牛步), 혹은 칠성보(七星步)라고 불리는 게 대표적인 보법이다. 이건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보법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현실세계에서 영적인 세계, 귀신 혹은 신들의 세계로 넘어가는 보법인 것이다.
때문에 도교의 제사의식에서는 반드시 우보가 등장한다. 제문을 읽으며 지정된 방식으로 일곱 걸음을 옮김으로써 신들에게 직접 기원하는 말을 전하는 것이다. 무협에 나오는 보법의 과장된 효능은 이런 주술적 의미의 보법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경공은 달리 경신술(輕身術)이라고도 하는데 한자 의미 그대로 몸을 가볍게 하는 법을 말한다. 그럼으로써 빨리 달리고, 멀리, 혹은 높이 뛰고, 또 혹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60년대에 미국에서 인기를 얻은 드라마 ‘쿵푸’라는 게 있다. 나중에 영화로도 리메이크 되었는데, 여기 등장하는 주인공이 소림사에서 수련하는 장면 중에 물 뿌린 한지 위를 맨발로 걸어가지만 종이가 찢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있다.
그 뒤에는 고르게 다듬어 놓은 모래 위를 걸어가지만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는 장면도 있다. 경신술을 표현한 것이다. 무협식으로 말하면 초상비(草上飛), 풀잎을 밟으며 달리고, 답설무흔(踏雪無痕), 눈을 밟아도 발자국이 남지 않는 경지라고나 할까.
이건 원래 드라마 방영 당시 주인공이 서부의 사막을 걸어오지만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는 등장신으로 동양 무술의 신비함을 보여준 것이 미국의 시청자들에게 대단한 임팩트를 주었기 때문에 영화에도 살아남은 경우인데 ‘레모’라는 영화에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레모’는 가이 해밀튼 감독, 프레드 워드 주연으로 1985년 제작된 영화인데 원래는 ‘디스트로이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레모 윌리암스라는 평범한 경찰이 특수조직에 선발되어 한국인 전노인(영화에서는 치운이라고 부른다)에게 동양 무술을 배운 후 활약한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치운은 한국의 신안주(가상의 땅이다)에 전해진다는 무술을 익힌 명인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 치운에게 배우는 과정에서 젖은 모래 위를 맨발로 걷되 발자국을 남기지 않도록 하는 게 나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프로그램에 간혹 나오곤 했던 계란 위를 걸어가도 계란이 깨어지지 않는 동양 무술 시범 같은 것의 과장된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초상비나 답설무흔 보다도 더 과장된 형태의 경신술로는 일위도강이나 등평도수 같은 것이 있다. 물 위를 걸어가는 것이다. 일위도강이란 달마가 양자강을 건너갈 때 갈대 잎 하나를 타고 건넜다는 전설에서 전해지는 무공이다. 실제로는 물 위에 널판자, 혹은 나무토막을 여러 개 던져두고 그걸 징검다리 삼아 건너는 것을 말하는데, 물론 이것도 쉬운 것은 아니다.
등평도수란 갈대니 나무토막 같은 것도 필요 없이 그냥 물 위를 뛰어가는 것을 말한다. 소금쟁이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이야기겠지만 ‘와호장룡’에서처럼 대나무 꼭대기에도 서는 세계에서 물위를 뛰는 것은 왜 불가능하다고 하겠는가.
실제로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에서는 임청하가 호수 위를 뛰어가는 것이 나오고, 장이모 감독의 ‘영웅’에서는 이연걸이 검으로 호수 물을 튀겨 가며 날아다니는 것도 나오지 않는가. 무협이라는 상상의 세계에서 가능한 경신술의 한 경지를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이보다도 더 과장된 경신술의 경지도 있다. 축지성촌, 즉 축지법이다. 육지비행, 혹은 어기비행이라는 것도 있다. 이건 서극 감독의 촉산에 나온 것처럼 날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이형환위라는 것은 순간이동을 말한다. 일종의 텔레포테이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보다 더 나아가면 분신술 역시 경신술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는데, 위치 이동과 멈춤을 반복해서 동시에 여러 개의 잔상을 남기는 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니 그렇다.
내·외공을 비롯한 기공수련과 보법, 경신술이라는 기본공을 익히면 비로소 본격적으로 실전을 위한 무공의 단계로 들어간다. 여기에는 무기술과 맨손 무술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무기술은 사용하는 무기에 따라서 검법이니 도법이니 하는 것이 나누어지니 따로 말할 것이 없다.
맨손 무술은 그냥 권법이라고 통칭할 수도 있겠지만 무협의 세계에서는 훨씬 더 세세한 분야로 나눠진다.
우선 금나술이 있다. 금나란 손으로 잡는다는 뜻이다. 합기도처럼 잡아서 던지거나, 비틀거나, 관절을 꺾거나 하는 것인데, 사실 이것이야 말로 최초의 무술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고대 무술로 알려진 각저나 수박이 금나술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각저란 중국식 씨름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씨름도 잡아서 던지는 것이니 일종의 금나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알고 보면 어느 문화에나 씨름처럼 잡아서 던지고 조르는 무술이 있다고 한다. 중국의 각저, 몽골의 부흐(몽골씨름), 러시아의 삼보, 일본의 스모 같은 게 이런 류에 속한다.
넓게 보면 레슬링도 바로 이런 무술의 하나가 아닌가. 유도와 합기도, 레슬링은 이런 종류의 무술 중 최고도로 발전된 형태고 현대의 이종격투기에서 성가를 높이고 있는 브라질리안 주지쯔도 같은 계통이라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는 권법과 장법이 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구분하기 애매하다. 권법이라고 해도 주먹만 사용하지는 않는다. 발차기도 물론 들어가지만 손을 사용하는 방법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이걸 주먹을 위주로 한다고 권법, 손바닥을 위주로 한다고 장법이라고 분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실 대표적인 장법이라고 할 수 있는 태극권도 이름은 권법이잖은가.
그러니 사실은 권법이라는 커다란 분류 속에 내공 사용을 중시하는 장법이라는 특화된 무술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옳을 것 같다.
무공의 분류 중에는 이 외에도 점혈을 위주로 하는 점혈법, 독을 사용하는 독공, 전통적인 정종무술에 상대되는 개념으로서의 사공, 마공 등도 있지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무협작가로 ‘대도오’, ‘생사박’, ‘혈기린외전’ 등의 작품이 있다. 무협게임 ‘구룡쟁패’의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제작하는 인디21의 콘텐츠 담당 이사로 재직 중이다.
[사진설명 : 사진 순서대로..]
◇ ‘와호장룡’ 중 대나무 위의 두 사람.
◇ 영화 ‘레모’의 포스터.
◇ 각저총의 각저(씨름) 벽화.
◇ 이연걸의 ‘태극권’
◇ 삼재보의 걸음 옮기는 방식.
◇ 우보로 걷는 방식. ‘천지교태우보법’ 이라는 그림이다.
◇ 이종격투기의 그라운드 기술 중 하나인 암바.
<좌백(佐栢) jwabk@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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