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식 경영이 국내 IT업계에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유명 기업들과 달리 불황 속에서도 독특한 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정보기술과 관련된 대안 경영방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전자신문은 대표적인 교토식 기업의 경영 방식을 국내에 소개하고 교토식 경영의 현장을 직접 방문, 현지르포와 함께 사토 겐이치로 로옴 사장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본지는 ‘교토식경영에서 배운다’라는 기획의 마지막으로 관련 전문가들을 초청, 교토식 경영방식에 대한 토론과 함께 국내 산업에 대한 적용효과 등을 검토, 분석해 본다.
◇참석자
김중언 <로옴전자코리아 사장>
이덕근 <한국부품소재산업진흥원 기술지원본부장>
양준호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경제실 수석연구원>
※사회=이경우 <전자신문사 디지털산업부 차장>
△사회(이경우 전자신문사 디지털산업부 차장)=교토식 경영이 올 들어 전자정보통신업계의 경영진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교토식 경영이란 무엇이고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양준호(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경제실 수석연구원)=교토의 기업들은 일반적인 일본식 경영과는 상당히 다른 조직관리, 기업지배구조, 자금 조달 형태를 갖고 있다. 연공서열, 장기고용 등 일본의 전통적인 정서와 다른 철저한 성과주의를 지향한다. 자금 조달도 은행차입이 아니라 증시를 통한 직접 금융에 의존한다. 무라타제작소가 소니보다 빨리 홍콩 증시에 상장한 것은 이미 유명한 사례다. 증시 상장은 자금조달 측면뿐 아니라 시장에서 감시를 받는다는 면에서 선진적이다.
△사회=교토식 경영의 대표기업인 로옴은 어떻게 운영이 되는가.
△김중언(로옴전자코리아 사장)=로옴은 매출규모가 4조원이 되는 상장회사다. 로옴은 상식적으로 떠오르는 일본회사와는 달리 상당히 선전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외국인의 지분율이 50%를 넘어가는 걸로 알고 있다. 국제적으로 개방된 회사라는 말이다. 창업자인 사토 겐이치로 사장은 창업 당시부터 자금 흐름과 주주이익을 우선시했다. 본사나 지사 차원에서도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또한 이익 관리를 잘해 많은 자금을 연구개발에 투여하고 있다. 또 로옴은 제조설비를 자체 제작하고 있다. 수직적인 통합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제품 자체의 가격도 낮추고 납기도 신속하게 맞추는 등 힘의 원천이 되고 있다.
△양준호=로옴, 무라타제작소 등 교토식 기업은 차입금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통 일본식 경영 기업들은 부채비율이 높다. 교토기업들의 자기자금 비율이 60%를 넘는 데 비해 마쓰시타는 30% 정도다. ‘현금 흐름 중시’는 교토식 경영의 특징 중의 하나다. 또 로옴은 설비를 자체 조달한다. 교세라와 무라타는 소재를 직접 생산한다. 원재료부터 일괄 생산체계를 갖는다는 것이 교토식 기업의 또 다른 특징이다. 타 기업인들이 볼 때 부러움의 대상이다. 무라타제작소는 어떤 주문이 오더라도 카탈로그에 없는 상품까지도 만들어낸다. 세라믹 소재를 자체 생산해 내기 때문이다. 즉 호환성의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유연성도 높아지게 된다. 이는 모든 것을 다해내는 교토의 문화적 구조와도 일맥상통한다. 일에 ‘혼’을 담아낸다는 의미다.
△사회=교토식 경영에 대해 국내 기업이 어떤 점을 유의해서 보아야 하나.
△이덕근(한국부품소재산업진흥원 기술지원본부장)=교토식 기업들은 차별화되고 독특한 점이 있다. ‘혼(魂)’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기술 기업에 혼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꾸준히 오랜 기간 동안 기술을 개발해 왔다는 것이다. 교토식 기업의 또 다른 특징은 ‘혼’이 담긴 물건을 만든다는 것이다. 여기에 ‘화(和)’라는 클러스터 개념이 있다. 로옴은 연관되는 기업들이 부도위기에 처했을 때 이들을 도와, 같이 성공할 수 있었다. 국내 세트제조업체들은 현재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부품 공급업체들의 경영상태는 영세하다. 하지만 부품 산업의 지원이 없으면 세트업체는 한순간 무너진다. 즉, 교토식 경영에서 배울 점은 나름대로 기술을 갖고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확보했다는 점이다.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해외시장에서 먼저 성공하고 자국시장으로 다시 들어왔다는 점이다. 우리 부품업체들은 대기업에 납품을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는 성공할 수 없다.
△사회=교토식 경영이 주는 주요 키워드 중의 하나는 클러스터 개념이다. 국내와는 어떻게 다른가.
△ 이덕근=우리나라는 산업단지를 클러스터화 하는 작업이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사실은 기존의 공단을 클러스터화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조달이다. 기업만 모인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포항이든, 울산이든 주요 클러스터에서 우수 인재를 공급해주고 선도해주는 구조가 없다. 교토에는 인재조달 시스템이 잘돼 있다.
△김중언=로옴에서도 상시고용체제가 있다. 우수 인재는 언제든지 와서 일할 수 있다. 또 자금 및 각종 지원을 연구소 및 대학 등에 기증하는 방식이 잘 갖춰져 있다. 인재조달 시스템과 교토에서 일하고 있다는 ‘혼’, 즉 현대식 개념으로는 ‘프라이드’를 갖고 있고 이것이 잘 어우러져 있다.
△사회=교토식 경영이 일본에서 성공했다고 무조건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일이다. 우리가 배워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양준호=일본 사회가 요구하는 수직 계열화에 교토의 기업은 포섭되지 않았다. 결국은 일괄 생산체제가 자생적으로 필요했다. 수직 통합, 일괄 생산은 원칙적으로 탈 수직계열에서 생긴 것이다. 계열에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기술개발 노력과 남보다 앞선 제품출시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한국의 중소기업은 여전히 대기업 의존도가 높다. 자체 생산체제, 자기 완결형 생산체제가 필요성을 정실히 느끼지 못하고 있다. 수요를 외국기업으로 한다든지, 한국 대기업에만 국한한다든지 하지 말고 교토식 기업처럼 수요시장을 넓게 본다면 교토식 기업처럼 진화하지 않겠는가. 시장을 멀리, 글로벌한 관점에서 봐야 한다. 그래야만 시장과 기술의 중요성을 더 뼈저리게 인식하고 생산방식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김중언=일본도 원래부터 독창적인 기술이 있던 것은 아니다. 로옴 초창기 때는 일본 대기업이 물건을 안 사주었다. 그래서 외부에서 인정을 받아서 일본에 들어와서 유명해진 것이다. 기술력을 갖고 있다 보니 제조업체에 납품하긴 하지만 국내 업체들처럼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다. 우리 기업들은 아직 그렇지 않다. 대기업의 영향력에 휘둘리면 중기의 자생력이 적어진다. 분위기를 바꾸어나갈 필요가 있다.
△양준호=그렇다. 목표를 국내 대기업이 아니라 세계 시장으로 본다면 특화제품적인 측면에서 열세가 있더라도 시행착오를 통해서 기술을 배우는 동기가 생긴다. 교세라도 TI와 계약을 통해서 한계를 알게 되고 그를 통해 발전하고 그런 과정을 겪었다. 즉, 글로벌에 시각을 맞추는 것이 선순환 구조에 시발점이다.
△사회=한국 기업계가 교토에서 배워야할 점은 또 무엇이 있나.
△이덕근=사회 자체가 변해야 한다. 일본 부품업계에서는 세트기업들의 리드고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자금이라든지, 인력지원, 세계 시장으로 이끌어주기도 했다. 국내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생을 한다고 한다면 대기업이 자기 세트의 1위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부품의 1위도 그래야 한다. 도요타가 펀드를 만들어 부품 경쟁력을 강화했다. 대기업이 한다면 이제 시작이다.
△양준호=선배기업이 후배기업을 이끌어주는 ‘화’의 전통. 그런 것을 대기업과 중시도 선후배 같은 관계를 교토식에서 가져 와야할 부분이다.
△김중언=좀 길게 보는 기업으로 가자는 것이다. 길게 보는 것들이 우리나라 기업가 정신에도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로옴의 사토 사장도 남을 위해서 일하는 공인 정신이 강하다. 1000억원을 넘은 기업은 이미 사기업을 뛰어넘은 공기업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혼과 화를 포함하는 것이 공이지 않겠는가. 자기만의 기업이 아니다. 국내 기업들도 작은 것에만 집착하는 우를 버려야 한다.
△사회=내년에 한·일간에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다. 가장 영향받는 부분이 부품·소재기업이다. 교토식 경영 관점에서 봤을 때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
△양준호=한국기업이 한·일 FTA를 통해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일본의 영세 부품·소재회사지만 엄청난 기술을 가진 데가 있다. 이를 인수합병(M&A)하는 방식이 있다. 장기불황과 대기업 중심의 체제 때문에 우수 기술 기업이 아주 영세화되어 있고 후계자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FTA가 된다면 일본기업의 M&A 기회가 생긴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공격적으로 일본 기업을 매수하고 M&A하고 구체화하는 것이 유력하다고 본다. 기술력과 경영을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김중언=FTA가 이뤄지면,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다. 자극이 되고 경쟁이 된다. 단기적으로 타격이지만 그걸 통해서 다시 발전할 수 있다. 일본하고는 우리나라가 항상 무역역조다. 계속 기술 개발해야 한다. 도전과 응전이다.
△이덕근=단기적으로 보면 부품·소재 쪽이 취약하다. 이는 FTA를 안해도 마찬가지다. 그럴 것 같으면 좀더 능동적으로 해야할 것이다. 변화의 기회로 삼아야할 것이다. 늘 기술이라는 것은 높은 데로 낮은 곳으로 흘러온다.
정리=김규태기자@전자신문, star@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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