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의 최고 로망은 바로 ‘지존’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여러가지 의미를 둘 수 있겠으나 일단 게임에서는 ‘지존’이라고 하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 고수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 유저들은 레벨업과 좋은 아이템에 끝없이 목말라 한다. 하지만 게임 내에서는 ‘지존’도 두려워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게임마스터(GM)다. 한편으로는 두려움의 대상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한없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GM은 게임 내에서는 ‘신’으로 통하기 마련이다. 항상 게임 속 어딘가에서 유무형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그들의 존재가 유저들의 눈에는 못할 것이 없을 것만 같다.
온라인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의 눈에는 GM의 존재야 말로 ‘절대 지존’ 바로 그 자체인 때문이다. GM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그들의 세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어렵사리 어레인 서버의 ‘메티스’ 박호용(31)씨의 얘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 서버장애 없을땐 `흐뭇`
[AM 7:30] 연휴 같지 않을 정도로 짧은 추석 연휴였다. 그나마 이번 2주에 한번꼴로 돌아오는 당직자 명단에 올라 있지 않았던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지만 오늘은 일어나기가 힘들다. 7시 반. 자명종이 시끄럽게 울려댄다. 10시까지 출근하면 되니 러시아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지만 사무실에 가서 오늘 할 일을 정리하려면 최소한 8시반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전철을 타고 회사까지 출근하는 동안 MP3에서는 SG워너비의 ‘살다가’가 흘러나온다. 졸며 음악을 들으며 달려온 출근길, 사무실에 도착해 보니 9시 20분이다. 그런대로 여유있게 도착했다.
[AM 9:20] 커피를 한잔 타 들고 앉아 메일함을 열었다. 연휴기간동안 올라온 사내 메일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연휴기간을 무사히 보냈는지 별다는 사안이 없다. 곧바로 서버를 체크해 본다. 연휴가 끼어있었으니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게다. 특히 추석이벤트에 따른 아이템 변화가 눈에 띈다.
2차에 걸친 이벤트 아이템인 ‘더블릿’이 대력 1000건 정도 다음단계로 발전해 있다. 이정도면 이벤트 반응이 무척 좋다는 증거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서버장애도 없다. 흐뭇하다.
희귀 아이템 변화도 살펴봤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다. 희귀 아이템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면 버그로 봐야하기 때문에 세심히 살펴야할 데이터다. 연휴가 끼어서 그런지 보통때 같으면 30분이면 되는 분량이 오늘은 한시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AM 11:00] 어느새 11시다. 늦었다. 점심시간까지 고객 메일을 확인하고 답변까지 해주려면 시간이 빠듯하다.보통때 같으면 20통 정도일 고객 메일이 오늘은 2배로 늘었다. 이벤트에 대한 항의 메일이 많았다. ‘이벤트 내용을 늦게 알아 1차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1차를 못하니 2차도 3차도 할 수 없으니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럴 경우가 가장 마음이 아프다. 개인적으로는 모두 들어주고 싶은 내용이지만 전체를 고려하면 해줄수 없는 일이다. 자동사냥에 대한 제보 메일도 5건이나 들어왔다. 요즘 가장 중점을 두고 단속하는 부분이라 이에 대한 회신은 오후에 단속을 한 후에 보내기로 하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AM 12:30] 평소 같으면 그냥 구내식당에서 먹을 수도 있지만 오늘은 추석 기분을 살려서 동료들과 함께 외식을 하기로 했다. 동료 GM 5명과 함께 베트남 쌀국수집을 찾았다. 오랫만의 외식이라 그런지 전에 비해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점심시간은 하루 일과 가운데 유일하게 쉴틈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다.
서둘러 점심을 마치고 돌아와 탕비실표 커피한잔을 나눠들었다. 이런 저런 잡담이 오갔다. 짧은 추석 연휴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의 주제였다. 하지만 동료들 모두 연휴동안 쌓여있을 업무량을 의식한 듯 하나 둘 자리를 떴다. 그동안 쌓인 잡무가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PM 1:30] 나도 마음을 다잡고 앉아 웹서핑을 시작했다. 게임웹진이며 팬사이트, 홈페이지 게시판 등이 주 대상이다. 역시 이벤트 내용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명절이면 진행하는 이벤트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벤트는 언제나 즐거움을 주는 행사다. 유저들은 물론 그렇겠지만 GM들에게도 이벤트가 주는 기쁨은 항상 이렇게 뿌듯한 기분으로 다가왔다.
# 오후는 불법프로그램과의 전쟁
[PM 2:30] 그러다 보니 어느새 오후 2시. 이제 본격적으로 유저들 사이로 뛰어들 시간다. 아침에 출근하면서부터 접속해 놓은 게임이지만 요즘 집중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자동사냥 및 불법프로그램 단속을 벌이거나 유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지금부터 서너시간 동안이다.
오전에 제보를 받은 캐릭터부터 찾아 모니터링을 했다. 그 가운데 접속해 있는 캐릭터는 3개. 확인을 해보니 자동사냥이 확실했다. 소환해 이유를 설명해 준 뒤 제재를 가했다. 자동사냥 프로그램이 주로 출몰하는 요주의 지역을 집중 관찰했다.
하루 일과 중에 가장 어렵고 힘든 시간이다. 모니터링을 하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사라져 버리거나 접속을 끊는 경우도 있어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더구나 이처럼 자동사냥을 하는 유저들을 보면 분노가 치민다.
제재 대상임을 확인하고 소환해 “불법프로그램 사용으로 제재를 가합니다”라고 설명해 줘도 끝까지 부인하는 유저가 있는가 하면 “나는 계속 할테니 막을테면 막아보라”며 욕을 해대거나 놀려대는 유저도 적지 않다. 기분 같아서는 같이 욕을 해주며 싸우고 싶지만 GM의 입장이 그렇지 못하니 답답하고 속으로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그래도 꾹 참고 정중하게 이야기를 해야하는 것이 GM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예전 기억이 절로 난다. 예전 같으면 이 때가 하루 일과 중에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힘들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답답한 문서를 보거나 툴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게임에 직접 들어가 유저들과 어우릴 수 있었다.
때로는 귓속말로 초대하는 유저의 아지트에 놀러가 재미있는 모습으로 변신을 시켜주거나 아주 가끔이지만 ‘용’을 살짝 소환해 보여주기도 했다. 자칫 유저가 눕기라도 할까봐 아주 짧은 시간 조심조심 소환해야 했지만 이를 보고 기뻐하는 유저들을 보는 것도 큰 낙이었다.
하지만 요즘엔 워낙 많은 불법프로그램이 나타나고 있어 이 시간을 단속위주로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기만 하다. 하루속히 불법프로그램을 근절시켜 예전의 즐거움을 되찾고 싶은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서 요동을 치는 것이 느껴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로운 에피소드가 업데이트되기를 기다리는 유저들이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업데이트 이전까지는 당분간 오늘과 같은 힘든 싸움이 지속될 것 같다.
# 피곤해도 이일이 즐겁다
[PM 5:00] 얼추 단속을 마치고 나니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제보를 해 준 유저였다.
서둘러 결과를 알리는 메일을 보냈다. 오늘 단속에 실패한 2명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화장실을 다녀오는 둥 마는 둥하고 오늘 하루를 정리하기 위한 마무리 작업에 돌입했다. 퇴근시간까지 끝내려면 서둘러야 한다.
아무래도 요즘에는 업데이트가 예정돼 있다보니 이와 관련한 Q&A 업무량이 늘었다. 여기에 변화된 아이템 관련 데이터를 모아 정리하고, 새로 들어온 메일을 확인하고 처리하다 보니 어느덧 시침이 6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PM 6:30] 퇴근시간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퇴근 시간을 좀 늦춰야 할 것 같다. 요즘에는 자동사냥캐릭터를 육성하는 속도가 빨라져 2∼3일만 지나도 새로운 자동사냥 캐릭터들이 다시 등장하니 저녁 이후에는 잠시 야근을 해야 할 것 같다.
[PM 10:00]결국 오늘도 9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PC를 켰다. 이제는 GM ‘메티스’가 아니라 일반 유저로 돌아가 ‘리니지’를 즐길 시간이다. 지금 키우고 있는 49렙 다크엘프로 접속을 했다. 요즘 다크엘프가 힘들어 예전에 키우던 49렙 요정을 다시 키울 요량으로 다엘 아이템을 파는 중이었다.
아이템이라고 해봐야 이제 겨우 8이도에 45방 정도의 장비에 불과하지만 모두가 내 손으로 하나 하나 맞춘 아주 귀중한 아이템이다. 오늘은 웬지 평소보다 더 피곤하다.
평소 같으면 2∼3시간 정도 즐기는데 오늘은 한시간 정도 접속해 있다 보니 피곤이 밀려온다. 자야겠다. 내일 또다시 치러야 할 불법프로그램과의 전쟁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어깨가 뻐근해 오는 듯하다.- GM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 사소한 일에 보람을 많이 느끼는 스타일이다. 나름대로 정성을 담아 답변을 해주었는데 유저가 ‘메일 받아보니 이해된다’며 고맙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올 때는 감동의 물결이 밀려온다.
- 가장 곤란한 순간은.
▲오해를 받을 때다. 언젠가는 한 유저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했는데 그 유저가 헛소문을 내 버리는 바람에 다른 유저들로부터 오해를 받은 적이 있었다. 정말 난감했다.
- ‘이럴 때 지엠을 이용하라’는 팁이 있다면.
▲ 안되는 부분에 대해 무리한 요구를 하기 보다는 GM이 알고 있는 지식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좋다. 예들 들자면 레벨업과 관련한 노하우라던가 아이템 선택 등 게임 내용과 관련한 문의라면 얼마든지 답변해 줄 수 있다.
- 지엠도 못하는 것이 많을텐데.
▲ 아주 간단한 것이라고 해도 GM이 자의적으로 지급할 수 있는 아이템은 없다. 가끔 게임 내에서 기념품을 달라는 유저들이 많다. GM은 항상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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