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8·15 이산가족 상봉과 6자회담 타결로 ‘남북화해 무드’가 다시 조성되고 있다. 특히 최첨단 광통신망을 이용한 이산가족 영상상봉의 성공은 남북의 통신기술자들이 상호 긴밀한 협력을 통해 양방 간 기술적 장애물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처럼 정보통신은 남북 교류협력과 통일분위기 조성을 앞당기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협력분야임이 틀림없다. 지난 2002년 6월 남북은 ‘남북통신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교환한 이후, 국제·정치적인 요인과 서해교전, 북핵문제 등으로 인해 남북 IT협력사업 자체가 한동안 교착상태였던 것을 생각하면 IT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 당장 북한에 시급한 것은 쌀과 비료지만 장기적으로 에너지·물류운송·통신인프라가 중요하다”며 “이 시점에서는 우리 정부에 체계적인 협력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남북 IT협력의 체계화를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남북 IT교류의 조속한 활성화를 위해 남북 IT교류협력위원회를 설치하고 단계적으로 통신·우편 분야 협정체결 등을 서둘러야 한다는 제안을 즉각 내놓았다. 그만큼 남북 IT교류협력은 정부·민간의 공통된 관심사라는 방증이다.
생각건대 IT가 남측의 앞선 IT기술을 북한지역에 보급하고 북한에도 실질적 도움이 되는 측면에서 민족적 상생협력수단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전략물자화될 수 있는 IT의 특수성에 기인한 현실적 제약으로 남북 협력의 시급성만을 강조할 수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협력의 목적, 방법과 기대성과에 대한 치밀한 전략수립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남북 IT협력에 대한 각계의 정책적 아이디어들이 수렴될 수 있는 협력 채널을 우리 내부에서부터 먼저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기업의 북한진출 지원, 낙후된 북한의 정보통신 인프라 현대화를 위한 초기 지원, 남북을 연계한 IT산업의 세계경쟁력 강화방안까지도 아우르는 단계별, 규모별 중장기 교류협력 방안들이 도출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현안으로 바세나르협약이나 미국의 전략물자통제 및 수출관리규정(EAR)에 의한 제약으로 대부분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북한으로 반입되지 못하는 실정에 대해 미국에 EAR 완화를 촉구하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약을 피해 가면서도 남북 간에 조기 추진 가능한 것이 공개SW 공동 이용활성화 방안이다. 이는 남북한 IT표준화를 꾀할 수 있고 국산 SW제품·솔루션의 보급에도 효과적으로 보인다. 또 금강산·개성 등 방북 관광객들이 현지에서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우리 통신서비스가 북한 내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방안도 상징적인 효과를 거두기에 충분하다.
통일 독일을 보면 경제적 통합에 앞서 동·서독 양국 정부는 서신·스포츠 등 민간교류를 통해 동족간 이질감을 줄이는 데 노력했기 때문에 통일을 앞당길 수 있었다. 우리도 이러한 동·서독의 서신 교류, 스포츠 교류, 경제 교류 등 통일 준비과정의 노하우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더불어 세계 IT산업을 선도하며 유비쿼터스시대의 테스트 베드로 일컬어지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장점을 잘 활용하는 ‘IT 통일정책’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동북아 IT협력 체계구축 및 세계적인 IT 허브로서 한국의 역할 증대 등 국가 간 협력체계의 완성도 면에서도 남북 협력은 선결 과제로 재조명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T분야의 국가 간 협력사업은 신흥개발국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 인프라가 갖춰진 선진국에서조차도 오랜 시간과 많은 투자가 요구되는 것이 경험된 사실이다. 본격적 남북 경제협력을 위한 기업의 기대와 통일에 대한 국민의 염원 앞에 기다림의 미학을 말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체계적 남북 IT협력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과정이 치밀할수록 우리의 바람은 더 빨리 실현될 것이다.
◆김선배 (한국정보통신수출진흥센터 원장) sbkim@ic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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