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리스트]손노리 - 이정술 개발팀장

“예전 패키지 게임 시절에는 중독성이 있어야 좋은 게임이고 성공할 수 있었는데 이젠 이 단어가 나쁜 의미로 사용되더라고요. 전 아직도 젊은데 참 세월 많이 변했습니다. 하하하….”

손노리의 핵심 멤버 이정술(31) 개발팀장의 말이다. 그는 손노리 설립때부터 입사해 ‘화이트데이’ ‘카툰레이서’ ‘몬스터 꾸루꾸루’ 등 숱한 작품에 참여했고 최근에는 스타이리아의 메인 작품 ‘러브포티’와 ‘훕스’를 담당하고 있다. 이원술 대표와 이름까지 비슷해 혹시 형제가 아니냐는 말도 많이 듣지만 결코 아니라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란 사이일 뿐이라고 못을 박았다.

# 게임과 동고동락한 어린 시절

그의 생애는 게임과 한시도 떨어진 적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오락실을 학교 삼아 다니며 아케이드 게임을 즐겼다. 같은 동네의 한 살 많은 형이자 친구인 이 대표와 함께 오락실에서 살았다고 한다. ‘갤러그’ ‘제비우스’부터 게임이라면 안 해 본 것이 없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보내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게임과 더불어 살던 어느날 동네 오락실이 50원에서 100원으로 인상됐다. 경제가 어렵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갑자기 두 배나 오르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오락실을 가지 않았다. 일종의 반기인 셈이다.

“또 이런 일도 있었어요. 10원 동전에 노락색 테이프를 감으면 기계가 100원으로 인식을 해요. 그렇게 하다가 주인 아저씨한테 걸리고 말았지요. 신나게 혼나고 있는데 옆에서 원술이 형은 팔짱끼고 실실 웃으면서 가만히 구경만 하는 거에요. 그 때의 배신감이란….”

하지만 오락실을 가지 않았던 이유가 또 있었다. 친 형이 아르바이트를 해 콘솔 게임기 메가 드라이브를 구입했던 것이다. 용돈을 짬짬이 모으지 않아도 집에서 공짜로 매일매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곁에는 이 대표가 항상 함께 있었다.

“메가 드라이브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처음으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 이전에는 남자 애들이라면 으레 할일 없이 오락실에 가서 노는 수준이지요. 게임이란 참 대단하구나 하고 느꼈던 시기였습니다.”

# 청소부터 시작해 개발팀장까지

그가 손노리에 입사한 것은 1998년 2월. 손노리가 법인을 세우자마자 들어갔다. 그 전에는 건설회사에서 설계 담당으로 잠시 외도를 했다. 그렇다고 손노리에 들어가 연줄을 토대로 게임을 만들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정식으로 게임과 관련된 교육을 단 한번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손노리에서 그가 처음 한 일은 말 그대로 ‘잡일’이었다.

바닥 청소하고 개발자들 라면 끓여주고 심지어는 벽에 페인트 칠까지 했다. 그렇게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하며 틈틈이 게임 공부를 했고 드디어 ‘화이트 데이’의 시나리오 작업을 맡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게임 시나리오를 하기 위해서는 게임 디자인도 해야 한다며 이것도 배웠다.

“화이트 데이는 20대 청춘을 바친 작품입니다. 유저와 매체의 반응은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9·11 테러가 터지고 불법 복제로 인해 10배는 팔려야 할 게임이 얼마 나가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죠.”

그가 만든 ‘화이트 데이’는 국내 PC패키지 게임사에서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호러 장르를 표방하고 그 어떤 해외 게임을 따라 하지 않았으나 ‘학교’를 배경으로 독특한 공포를 선사한 훌륭한 작품이었다. 특히 사운드의 음산함은 공포 영화의 수준을 훨쩍 뛰어 넘었고 ‘수위’ 캐릭터는 지금도 회자되는 뛰어난 개성을 지녔었다.

이 작품을 위해 개발진은 실제로 고등학교를 3번이나 몰래(!) 방문했으며 2번은 일부러 새벽에 잠입해 으스스한 분위기를 느꼈다. 참고로 ‘팡야’를 만든 엔트리브의 서관희 이사가 당시 ‘화이트 데이’의 프로듀서였는데 무서운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많은 부분을 순화시켰다고. 또 학교의 수위라는 직업을 너무 부정적으로 묘사해 혹시 전국수위연합회라는 곳이 있어서 항의가 오지 않을까 걱정까지 했었다고 털어놨다.

# 개발자는 욕심을 버려야 성공

“개발자는 자신의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하죠. 게임을 잘 만든다는 것은 욕심을 버리고 목표한 의도를 정확히 구현하는 것입니다.”

바닥부터 시작한 개발자답게 경험에서 우러 나오는 진실한 말을 했다. 남들이 3D 그래픽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할 필요도 없고 자신이 만들고 있는 게임과 같은 종류의 타이틀이 다른 곳에서 동시에 개발되고 있어도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이상한 게임이 탄생한다고.

그럼 그의 개인적인 욕심은 무엇일까? 기자의 질문에 이 팀장은 ‘화이트 데이 2’를 언급했다. 자신의 청춘이 담겼고 많은 아이디어가 아직도 생생히 머릿속에 살아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패키지 게임으로 ‘화이트 데이 2’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화이트 데이’의 팬이었던 관계로 이 팀장의 욕심이 구체화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김성진기자@전자신문 사진=한윤진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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