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투신 박성준과의 대전의 날이 돌아왔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저그 게이머인 그와 대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박 선수와 대전에 있어서 얼마만큼 연습했느냐는 승부의 변수가 되지 않겠지만 이렇다할 연습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지더라도 프로 선수를 진땀나게 하면 폼 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곧 이 같은 생각은 혼자만의 망상(?)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이고시스 POS 선수단 숙소의 문을 열자 박성준 선수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소리내 인사를 했지만 알은 척도 안한다. 알고 보니 그는 지난 경기 비디오를 분석하고 있었는데 업어 가도 모를 지경이다.
“경기에 앞서 연습 좀 해볼께요.”
대전을 위해 자리를 준비하던 박 선수에게 먼저 연습부터 하겠다고 자청했다. 손도 풀 겸 빌드오더도 다시 되새길 요량에서 였다.
“손 움직임이 그렇게 느려서는 안돼요. 손이 빨라야 생산이 제대로 이뤄지죠.”
기자가 연습하는 광경을 지켜보던 박 선수는 또 다시 기본에 충실할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일인가. 어쨌든 박 선수를 마냥 기다리라고만 할 수 없어 인공지능을 상대로 연습을 한 후 지도대전을 부탁했다.“프로토스·테란 빌드오더를 위주로 알려드렸으니 저는 프로토스로 할께요.”
드디어 대망의 지도대전이 시작됐다. 박 선수는 프로토스, 기자는 저그를 각각 종족으로 선택했고 맵은 그동안 연습해오던 로스트템플이었다.
그동안 배운대로 열심히 빌드오더를 따라 12드론 후 멀티기지를 건설하고 스포닝풀을 건설한후 저그를 뽑았다. 멀티에서 드론을 생산하던 중 본진을 확인하는 데 프로브가 휘젓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곧이어 질럿 한 마리가 멀티를 무시하고 본진으로 들어와 드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본진에 성큰을 밖고 멀티에 나가 있던 저글링을 본진으로 불러 질럿을 잡아 일단 급한 불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초장부터 빌드오더가 꼬였으니 이를 어쩐다. 예상했던 대로 멀티기지의 성큰이 완성될때쯤 질럿 4마리와 드래군 2마리가 멀티 기지로 쳐들어왔다. 불가항력이었다. 첫판은 허무하게 GG를 선언할 수 밖에 없었다.
첫판에서 배운 교훈은 역시 박 선수의 말대로 빠른 손놀림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기자의 빌드오더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워낙 느리게 진행되다 보니 질럿과 성큰을 이용한 멀티 기지의 방어전선이 구축되기도 전에 러시를 허용한 것이었다.
어찌 이리도 매몰차게 몰아붙일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중에 리플레이를 확인하면서 알게 됐는데 그는 멀티기지 러시를 할 당시 이미 본진에 상당수의 질럿과 드래군이 놀고 있었다. 나름대로 하수를 배려한 것이었다.
[사진설명]
<그림01> 첫 대전. 멀티가 채 완성도 되기 전에 박성준 선수의 질럿이 단기 돌입해 왔다.
<그림02> 질럿은 멀티를 무시하고 본진으로 들어가 드론을 잡기 시작했다. 급하게 심은 성큰과 멀티에 있던 저글링으로 가까스로 막아냈다.
<그림 03> 질럿과 드래군 조합의 본격적인 러시가 시작됐다. 성큰 하나와 저글링 몇마리로 막기에는 역부족.“이번에는 핸디캡을 좀 주고 하죠. 인공지능 하나를 제 편에 붙이고 할께요.”
“그것보다 제가 일꾼을 모두 죽이고 시작할께요.”
도저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박 선수와 대결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기자는 박선수에게 핸디캡을 요청했다. 그런데 박성준 선수는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핸디캡을 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일꾼을 모두 죽이려면 시간이 만만치 않게 걸리는 데다 미네랄 0부터 시작해서 언제 다시 일꾼을 뽑고 언제 유닛을 뽑는다는 말인가. 자존심은 상했지만 어쩌겠는가 투신 박성준 선수가 하는 말인데….
다시 대전이 시작됐다. 기자의 위치는 8시방향. 그동안 연습해온 빌드오더를 되내이며 차근차근 순서를 밟았다. 12드론 후 멀티를 나가고…. 아뿔사! 핸디캡을 믿고 방심한 탓일까. 저글링을 뽑아야 했는데 가스전을 먼저 뽑는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박 선수는 이제야 일꾼 뽑고 있을텐데 사소한 순서 하나 틀린 게 대세에 큰 지장이 있겠냐는 생각에 위안을 삼았다.
멀티에 성큰 2개를 심고 저글링 6마리까지 배치해 놓은 상황에서 질럿 2마리가 러시를 들어왔는데 쉽게 막아낼 수 있었다. 이때즘 스파이어의 건설이 완료되고 뮤탈이 나오기 시작했다. 박 선수에게 시간을 주면 줄수록 불리해질 것은 자명한 사실.
뮤탈 몇마리를 이끌고 2시방향에 위치한 박선수의 진영에 대한 공습을 감행했다. 역시 일꾼을 모두 잡고 시작한다는 핸디캡은 큰 것이었다. 박 선수의 본진은 뮤탈의 공습에 괴멸 직전으로 몰렸다.
[사진설명]
<그림 04> 성큰이 무너지고 남은 질럿은 한마리. GG를 선언하는 이외에 다른 방도는 없었다.
<그림 05> 사실 박선수는 전력투구한 것이 아니었다. 본진 입구서 놀고 있는 질럿과 드래군.
<그림 06> 박 선수가 일꾼을 모두 죽이고 시작하는 핸디캡이 적용된 두번째 대전. 박 선수가 이를 위해 브로브들끼리 강제 공격을 시켜 열심히(?) 일꾼을 없애고 있다.“어! 지겠는데요.”
비록 핸디캡을 둔 대전이지만 ‘프로를 잡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긴장의 끈을 놓게됐다. 본진의 게이트웨이 공격을 멈추고 박 선수의 앞마당 멀티에 대한 공습에 나섰다. 하지만 드래군과 캐논을 이용한 박 선수의 저항은 예상 외로 거셌다.
본진이 쑥대밭이 다됐는데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드래군이 끊임없이 나오기 시작하고 전세는 어느덧 뒤바뀌기 시작했다.
“이제는 뮤탈 말고 다른 유닛도 좀 뽑으세요. 그리고 아까 게이트웨이를 끝까지 공격했어야 했는데…”
보다 못한 이고시스 POS 소속 선수 하나가 기자에게 훈수를 두면서 응원해주기 시작했다. 간간히 박 선수의 병력 동원 내용에 대한 정보까지 흘려주면서….
전세가 뒤바뀌고 박 선수가 진영을 정비한 후 물량이 쏟아져 나오면서 더 이상 게임을 진행할 이유가 없었다. 또 다시 GG를 선언하고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꾼을 모두 죽이는 핸디캡은 어느정도 되는 것일까. 리플레이를 통해 확인한 결과, 박 선수는 처음에 주어진 프로브 4마리를 서로 강제 공격시켜 1마리만 남기고 새로 나온 프로브로 마지막 한마리까지 모두 처리한 후 남은 한마리로 다시 미네랄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기자가 멀티를 위해 앞마당에 드론을 내보낼 때가 되서야 처음 상태인 프로브 4마리를 겨우 확보할 수 있었다.
[사진설명]
<그림 07> 박 선수는 기자의 멀티가 시작될때가 돼서야 다시 4마리의 프로브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림 08> 핸디캡은 큰 것이었다. 기자의 본진 해처리가 레어로 변신할 때 박선수는 게이트웨이 2개 뿐.
<그림 09> 성큰 2기와 저글링 6마리로 질럿 2마리의 러시를 여유있게 막아냈다. 이후 뮤탈의 게릴라 공습으로 박 선수의 본진을 유린했지만 멀티기지를 제압하는데 실패, 또 다시 GG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사실 단 세번의 배움을 통해 ‘스타그래프트’를 제대로 배운다는 것은 어쩌면 애초부터 무리였다. 실제 그동안 박선수에게 배운 것을 바탕으로 동료 기자들과 대전을 벌여봤지만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비록 박 선수를 만나 자잘한 기술은 배우지 못했지만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은 큰 소득이었다. 모든 배움의 길이 그렇듯이 스타크 역시 기초가 중요하고 꾸준한 연습만이 고수로 이르는 길이며 왕도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박 선수가 스타크 최고수로 군림할 수 있는 것도 다름아닌 그의 성실함과 꾸준한 노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황도연기자@전자신문 사진=한윤진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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