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팅업계 "영원한 텃밭은 없다"

 컴퓨팅 업계에 윈백 경쟁이 불붙었다.

 윈백(Win Back)은 경쟁 제품을 들어내고 자사 제품을 공급하는 것을 일컫는다. 경기 침체 장기화로 신규 고객 확보가 어려워지자 국내 컴퓨팅 업체들 간에 경쟁 업체의 고객 뺏기가 한창이다. 외국계 기업의 경우 본사 간 인수합병(M&A)으로 공중에 뜬 고객들을 잡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특히 국내 컴퓨팅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멈추고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기업 간 윈백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1위를 잡아라=윈백은 1위 업체들의 고객사에 집중되고 있다.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의 고객 사이트가 규모가 크고 업그레이드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의 경우, 국내 부동의 1위 오라클을 IBM, 마이크로소프트가 협공하는 형국이다. ‘DB2’ 대중화를 선언한 한국IBM은 무상 공급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오라클 고객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한국IBM의 박정화 전무는 “지난해는 DBMS 제품의 장점과 윈백 프로그램 내용을 알려서 고객들의 마이그레이션 의사를 확인하는 단계였다면, 올해는 본격적으로 윈백하는 수순으로 들어갈 것”이라며 “DBMS 윈백은 1위 업체인 오라클에 맞추었다”고 말했다.

 전사자원관리(ERP) 1위 업체인 SAP코리아도 경쟁업체들의 집중적인 공략을 받고 있다. 한국오라클은 최근 국내 SAP의 ERP 고객중 업그레이드나 애플리케이션을 재구축해야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오라클 ERP 솔루션으로 마이그레이션하는 프로그램인 ‘오프 SAP’를 실시중이다.

 한국오라클 이교현 본부장은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한 SAP 고객에게 초기 6개월 애플리케케이션 라이선스와 유지보수 비용에 대해 무이자 2년 거치 상환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며 “SAP코리아를 겨냥한 윈백 마케팅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메인프레임 시장을 석권한 한국IBM도 한국HP 등 유닉스와 인텔아키텍처(IA) 서버 진영의 윈백 공세를 받고 있다.

 ◇임자없는 고객 노린다=지난해부터 잇따른 컴퓨팅업체 간 M&A도 윈백 경쟁을 가속화했다. M&A에 따른 인수기업의 고객들이 경쟁업체들의 표적에 그대로 노출됐기 때문이다. 피인수기업이 인수기업의 집중적인 고객관리가 어렵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한국오라클은 본사 차원에서 애플리케이션 사업 강화를 위해 JD애드워드와 피플소프트를 잇따라 인수하자, 윈백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SAP코리아 등 경쟁업체들이 양사 고객을 겨냥한 윈백 프로그램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한국오라클이 이에 맞서 SAP 윈백 프로그램을 내놓으면서 ERP업계는 윈백 전쟁에 돌입하게 됐다.

 SAP코리아 관계자는 “SAP로 마이그레이션하는 피플소프트 고객에게 유지보수와 플랫폼 확장 서비스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실시중”이라며 “일부 고객들은 SAP 솔루션 도입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1월부터 이달 말까지 자사 ERP 제품으로 교체하는 피플소프트 고객들에게 라이선스와 유지보수 가격을 25% 할인해 주고 있다.

 본사 간 인수합병으로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은 한국스토리텍 고객들도 테이프라이브러리업체들의 윈백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잘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국IBM, 한국EMC 등 대형 컴퓨팅업체들이 인수한 중소 솔루션업체들의 고객들도 고스란히 윈백 표적으로 남게 됐다.

 ◇윈백 상시 마케팅 전략으로=최근 윈백은 과거와 달리 상시 마케팅 활동의 일부가 되고 있다. 윈백은 특정 시점에 특정 제품을 알리거나, 전략적으로 뺏을 고객이 있을 경우 한시적으로 가동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장기적인 마케팅 활동으로 전환되는 추세다.

 경기 침체와 시장 침체로 신규 고객 발굴이 어려워지자 경쟁업체 고객을 자사 고객으로 전환하는 마케팅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완연한 경기회복을 보이기 전까지는 컴퓨팅업계의 윈백 경쟁은 ‘바늘의 실’처럼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서버업체들은 이미 유닉스와 IA 서버을 앞세워 메인프레임 고객을 노린 지 오래고, 최근에는 하이엔드 IA서버를 내세워 유닉스 고객까지 넘보고 있다. 이를 둘러싼 업체간 윈백이 상시 마케팅으로 자리잡았다. 소프트웨어업계도 윈백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IBM은 지난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려했던 DBMS 윈백 마케팅을 연기했고, 한국오라클도 시간을 정해놓지 않고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때까지 윈백 프로그램을 가동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시장이 뻔하기 때문에 윈백의 성과에 따라 업체간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며 “불황기에는 윈백만큼 효과적인 마케팅도 없다”고 말했다.

 <소박스>

 윈백에도 룰은 있다. 컴퓨팅업계의 윈백 경쟁이 가속하면서 이를 우려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윈백 경쟁은 자칫 잘못하면 가격 경쟁으로 이어져 시장의 가격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치열한 윈백 경쟁을 벌였던 서버 업계는 최근 윈백 경쟁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유닉스 서버로 메인프레임을 윈백한다든지, IA서버를 내세워 유닉스 서버 고객을 공략하는 경우는 있지만, 과거처럼 윈백에 사력을 다하지는 않는다. 지난 몇 년간 윈백 경험을 통해 무리한 출혈경쟁이 남긴 후휴증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한국HP 전인호 상무는 “경쟁업체 고객을 뺏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면, 경쟁업체가 고객을 지키기 위해 이에 버금가는 조건을 제시, 결국 공급사만 손해를 본다”며 “어렵사리 윈백을 통해 경쟁업체 고객을 빼앗아 오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도 윈백에 실패할 경우 후속 대책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점도 윈백 마케팅을 짤 때 고려해야 한다. A사는 지난해 경쟁업체를 겨냥해 무상공급 등 업계가 혀를 내두를만한 윈백 마케팅을 실시하고도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해 담당자들이 인사조치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국내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본사의 정책에 따라 무리하게 윈백 마케팅을 펼친 것이 아쉬웠다”며 “올해는 경쟁업체 고객들을 철저하게 파악해 윈백 전략을 치밀하게 짜 다시 시장 공략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경쟁업체들의 윈백 마케팅에 시달리는 한국오라클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동안 한국IBM DBMS 고객 10여곳을 윈백했다고 밝혔다. 한국오라클 관계자는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로 다운사운징하는 고객들의 대부분이 기존 IBM의 DBMS을 오라클의 DBMS로 전환했다”며 “특별한 윈백 프로그램을 가동하지 않았어도 고객들이 오라클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업계 전문가들은 윈백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반드시 지켜야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사이베이스 이성순 상무는 “아무리 욕심나는 사이트라도 내부적으로 정해 놓은 최저 가격은 반드시 지킨다”며 “가격 경쟁만 일삼을 경우,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업체들이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윈백 경쟁으로 시장의 가격 질서가 무너지면 이를 다시 정상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생의 윈백 경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윈백은 기술이 뒷따라야 한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호웅기 부장은 “윈백도 시장의 판도를 바꿀만한 기술이나 상품에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 김근 전무는 “기술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아무리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더라도 윈백은 통하지 않는다”며 “기술적으로 경쟁업체를 앞서지 못하면 윈백 마케팅을 시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익종기자@전자신문, i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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