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물등급위원회의 전신인 공연윤리위원회가 ‘맹위’를 떨치던 시절이 있었다. 70년∼80년대의 일이다. 그 시절, 박정희 유신정권과 전두환 군사정권의 힘을 받은 공륜은 말 그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문화계를 휘둘렀다. 철권 정치의 말기에도 공륜은 바뀌지 않았다. 얼마나 권위적이고 위압적이었는지 기자의 취재접근 마저 어려웠던 기억이 새롭다.
일반 민원인들에게는 오죽 하겠나 싶어 말로도 전하고 글로도 지적했지만 그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런 공륜이 철퇴를 맞게됐다. 공륜의 사전 심의가 국가의 검열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체 위기에 처한 것이다.
영등위의 태동은 이같은 배경에서 시작됐다. 명실공한 민간기구를 출범 시켜 심의는 맡되 작품에 대해 콩놔라 팥놔라 하지 않고 공연 및 관람 등급만 정하도록 한 것이었다. 그래서 위원들의 임명권도 문화부장관에서 대통령으로 상향조정 했다.
따라서 엄격히 말하면 영등위의 전신이 공륜은 아닌셈이다.
그러나 작금의 영등위가 공륜의 전신이 아니라는 데 공감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검열 같은 심의가 늘고 있고 권위적인 행정은 공륜의 그 것을 꼭 빼닮았다.
또 권력화하려는 영등위의 행보가 이쪽 저쪽에서 엿보인다. 정부가 규제 완화책으로 도장을 던지고 있는 마당에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고 자신들의 궤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려고 하는 시도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를 테면 등급 적용이 지켜지지 않는다며 이를 감시하겠다고 만든 사후관리위원회도 그렇다. 이는 당초 등급만 부여하도록 한 영등위의 설립 목적에도 걸맞지 않는 것이다. 하다보니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다는 식으로 한다면 사법권마저 가져가야 한다. 그 이면에는 이를 통해 문화계를 옥죄고 한편으론 영등위의 권력화를 시도하려도 음모가 숨어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간다.
여기에는 문화계와 국민들의 책임도 있다. 그 첫번째는 영등위가 저작권 보호단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며 문화의 척도를 그들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면 영등위는 공연 및 관람 등급만 부여하는 곳일 뿐이다. 따라서 더이상도 더이하의 기관도 아니다. 어찌보면 영등위가 이런 대중들의 심리를 이용해 몸통을 더 늘려 나가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영등위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공공성과 윤리성, 그리고 민주적 기본 질서에 걸맞는 심의 와 등급만 잘매기라는 것이다. 그 것 마저도 힘이 되고 권력이 된다면 가감없이 버려야 한다. 일반 대중과 업계를 위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자신들의 힘과 권력을 늘려 나가려는 시도는 이미 식상한 것이고 이 시대에도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
영등위는 이 시점에서 공륜의 전철을 밟지 말고 단절해야 한다.
<편집국장 inm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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